'국민의당' 문서는 하루 35번이나 편집 전쟁

입력 2016. 2. 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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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위키피디아 15년

주말이었던 지난달 16일 한국위키미디어협회가 서울시민청에서 위키피디아 프로젝트의 15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을 열었다. 80명가량의 편집자들이 참여해 위키 프로젝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위 작은 사진은 위키피디아의 로고. 지난달 15일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가 만들어진 지 15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위키피디아 제공

▶ 지난달 15일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설립된 지 15년째 되던 날이었다. 이날 밤 10시가 넘어 속보로 전해진 신영복 선생의 사망 소식은 지체 없이 위키피디아에 반영됐다. 통신사의 ‘1보’가 뜬 지 30분 만이었다.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누구나 참여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은 어느새부턴가 상업 사이트 못지않게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15살 집단지성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그간 얼마나 성장했을까.

지난 11일 새벽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기술된 영어판 위키피디아의 문서 일부 내용이 바뀌었다. 수정된 곳은 트럼프의 ‘사업 이력’ 부분. “추가 대출을 확보하고 이자 지급을 연기해 사업을 강화했음에도”라고 쓰였던 것을 누군가가 “추가 대출을 확보하고 이자 지급을 연기했음에도”로 고쳤다. ‘사업을 강화했다’는 다소 주관적 표현을 덜어내고 문장을 간략히 한 것이다. 별스럽진 않지만 트럼프 지지자에겐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구글을 비롯한 주요 포털이 위키피디아의 검색 결과를 상단에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4000회 이상이나 편집돼

갖가지 막말과 기행으로 화제를 몰고 있는 트럼프의 위키피디아 문서는 최근 매우 ‘핫’하다. 그의 문서는 2004년 이후 지금까지 4000회 이상 편집됐다. 출마 선언이 있었던 지난해에만 2590회 고쳐졌다. 편집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지난해 6월엔 문서 전체가 삭제되기도 했다. ‘공정히 하자면, 아무도 그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단 한 줄의 글귀만 남았다. 트럼프가 자신의 이름을 딴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난 얼마 뒤였다. 누구나(심지어 회원이 아닌 이도) 수정이 가능한 온라인 백과사전에선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특히 정치인이나 정치적 사안에 관한 문서가 그렇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편집된 문서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부시’의 문서로, 무려 4만5900회 가까이 고쳐졌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에서도 최근 정치 문서들이 뜨겁다. 특히 안철수의 ‘국민의당’ 항목이 수시로 고쳐진다. 국민의당 지지자들과 이에 반하는 이들은 주로 당의 정치적 지향이나 지지층에 대한 설명을 두고 대립한다. “주요 지지층은 중도주의 성향이며, 지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편, 특히 호남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설명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가 다시 덧붙여지기를 반복했다. 당의 지향은 “중도주의”에서 “급진중도”로, 다시 “합리적 개혁주의”로 바뀌었다. 11일 하루에만 이런 문제로 35회 고쳐졌다. 문서를 새로 고치는 이는 앞선 문서를 수정하며 “편향적 편집”, “출처 없음” 등의 이유를 든다. 이런 ‘편집 분쟁’이 과도하게 일면 위키피디아는 편집자 간 토론을 거쳐 해당 문서를 일정 기간 보호 조처한다. ‘의견 대립이 과열돼 있으니 냉각기를 갖자’는 것이다. 지난 대선을 앞둔 2012년 12월에도 한국어 위키피디아에선 대선후보였던 ‘문재인’의 문서가 악의적으로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 동영상 광고에 등장하는 의자가 고가 사치품이라는 ‘의자 논란’이나 ‘좌빨’, ‘김대중 개○○ 해봐’ 등의 원색적인 비방 글들이 문서에 포함된 것이다. 문서 훼손과 원판 복원이 잇따르자 관리자는 해당 문서를 선거가 끝난 12월22일까지 보호 조처했다. 집단지성의 대표 격인 위키피디아의 현주소다.

위키피디아는 미국의 인터넷 사업가인 지미 웨일스가 2001년 1월 설립했다. 애초 ‘누피디아’라는, 전문가들이 작성한 온라인 백과사전의 초안을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가 2002년부터 비영리 프로젝트로 전환했다. 2003년부턴 비영리단체인 위키미디어재단이 운영하고 있고 전세계 287개 언어로 만들어진다. 한국어 문서들은 2002년 10월부터 제작됐다. 초기 위키피디아가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것은 2001년에 발생한 ‘9·11테러’ 때문이었다. 워낙 많은 소식이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쏟아지자, 정제된 언어로 일목요연하게 사안을 정리해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쓸모를 알게 된 이들에 의해 이후 위키피디아 콘텐츠는 무섭게 자라났고, 스페인어 위키피디아에서 처음으로 광고를 달자는 제안이 나왔다. 바로 반발이 일었다. 수많은 이들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만들어진 백과사전으로 돈을 벌 순 없다는 것이었다. 설립자 지미 웨일스의 기부금을 기초로 비영리재단이 세워졌고 이곳에서 서버 등 모든 관리를 맡게 됐다. 이만재(67)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이사장은 “위키미디어재단은 전세계 주요 아이티(IT) 기업을 비롯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 해 기부금만 약 3000만달러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한국어로 쓰인 위키피디아는 구분을 위해 ‘위키백과’라 부른다. 5회 이상 문서 편집을 한 편집자는 ‘활발한 편집자’로 분류된다. 위키백과 편집자 1000명가량이 이에 해당한다. 편집 횟수가 100회를 넘어가는 이들은 ‘매우 활발한 편집자’다. 100명쯤 된다. 편집자들은 강력한 권한을 갖는 20여명의 ‘관리자’들을 선출해 편집 분쟁에 대처한다. 이들은 문서를 보호조처하거나, 문제가 되는 편집자 차단, 문서 삭제 등의 수단을 통해 한국어 위키피디아를 운영한다. 모두 급여를 받지 않는, 자발적 편집자들이다. 이들은 2014년 10월 사단법인 ‘한국위키미디어협회’를 설립했다. 곧 한국 재단을 출범시키는 것이 목표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엔 12일 현재 34만2000여개의 문서가 수록돼 있다. 2008년 포털 ‘다음’이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범한)의 저작권을 사들여 위키백과에 기증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한국어판 위키피디아는 문서 수 507만개가 넘는 영어판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여러 언어판 중 27번째로 크다. 구은애(30)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사무국장은 “한국어는 수요층이 한반도에 집중된데다, 전문 언어로서의 지위도 약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영어에 익숙하다 보니 한국어판보다 영어판을 쓰면서 (한국어판에) 기여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이유”라고 말했다.

대선 앞둔 미국선 위키백과 ‘핫’
한국서도 총선·대선 앞두고 논란
비영리재단이 운영하는 실험
“편향편집”, “출처없어” 싸워도
‘중립기술’ 위해 토론 벌여

한국어판 위키는 영어판의 1/15
“수요 적고 전문가들 영어 익숙”
자발적 편집자들에 의존하지만
관심 줄고 사용자층 협소해져
“더 자유로운 정보 공유 필요”

‘총의’로 결정한다

위키피디아로 대표되는 ‘집단지성’의 개념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가 제안했다. 독립된 여러 개체들이 협동해 하나의 집합지능을 만들고, 그 결과물이 다시 독립된 지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이런 집단지성을 구현한 대표 프로젝트다. 누구나 손쉽게 백과사전의 내용을 열람하고 추가·수정·삭제한다. 덕분에 사전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성장하고 진화한다. 위키피디아에서 새 문서가 만들어져 수정되고 보완되는 과정은 생명 종의 탄생과 진화 과정에 견줄 만하다.

위키피디아의 기술적 기반은 위키시스템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문서를 작성하고 수정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새 문서를 만들기 위해선 계정이 있어야 하지만, 계정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만들어진다. 이메일 주소도 선택입력 사항이다. 새로 만들어진 문서엔 단락마다 ‘편집’ 버튼이 달렸다. 이를 이용해 새로 내용을 추가하거나 기존 내용을 수정하고 삭제한다. 문서 원저자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된다. 읽다가 틀린 부분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편집’을 눌러 고치면 그만이다. 위키피디아 계정이 없어도 문서를 수정할 수 있다. 작성자 구분을 위해 아이피(IP) 주소만 기록에 남을 뿐이다. 수정된 내용은 즉시 문서에 반영된다. 대신 이 문서를 ‘주시’하는 이들에게 수정 사실이 통보된다. 와서 보고 틀렸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도 쉽다. 문서 작성, 수정 과정이 모두 단계별로 서버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역사 보기’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과거 문서로 되돌리면 된다. 위키피디아에 올려진 문서는 출처만 밝히면 영리적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수많은 이들이 개별 저작권을 갖는 집단 창작물의 특성 탓에 저작권 문제를 이렇게 해소했다. 위키피디아에 자신의 저작물을 올리는 행위는, 제3자가 그 저작물을 (영리적 목적까지를 포함해) 어떠한 목적으로든 자유롭게 이용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키피디아 총의 과정의 순서도

물론 이런 과정이 마냥 자유롭게 이뤄지진 않는다. 무질서와 혼란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이 갖춰져 있다. 어떤 문서든, ‘백과사전’이란 위키피디아의 정체성에 걸맞은 제목과 내용이어야 한다. 출처가 명시돼야 하며 당연히 저작권 침해가 없어야 한다. 아울러 정치, 종교, 이념 등 이견이 있는 사안은 중립적 시각에서 기술돼야 한다. 중립적 시각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은 ‘총의’(consensus)라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총의’는 더 이상 이의제기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세계무역기구나 한국의 국회가 더러 이런 방식을 따른다. 편집 분쟁이 발생하면 편집자들은 토론을 벌인다. 더 이상 이의제기가 없어 잠정적이지만 문서 내용이 확정되는 경우 “총의가 형성됐다”고 본다. 편집자 공동체 내에 토론 내용이 충분히 알려졌다는 전제하에, 형성된 총의에 대한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 모든 이들이 이 상태를 최선이라 여기진 않지만 어떠한 이유로든 그것으로 결정하기로 동의한 상태. 총의의 수준은 사안에 따라 다양하다. 위키피디아의 운영정책 같은, 편집자 전체에게 예외 없이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높은 수준의 참여와 오랜 토론을 통해 총의를 형성한다. 이 과정은 모두 선출된 관리자들에 의해 관리된다. 관리자들은 ‘하루 3회’ 등 기준을 정해 특정 문서가 자주 과거 문서로 되돌려지면 분쟁 상황으로 판단한다. 해당 편집자들을 설득해 토론으로 이끌고 설득이 어렵거나 토론이 불가하면 문서를 보호조처하거나 해당 편집자의 계정을 차단한다.

‘첨단기술 해박한 30살 대학 학력 남성’

위키피디아는 편집자들의 높은 자발성에 의존한다. 이따금 대학이나 각종 공공기관, 박물관 등에서 자기 분야와 관련된 문서를 만들거나 수정하지만, 대개 이 일을 취미로 삼는 ‘활발한 편집자’들이 주축이 된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열정을 가진 이들이 해당 분야를 적극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위키피디아를 만든 지미 웨일스는 “사람들이 (돈이 안 되는) 소프트볼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7년께 편집자가 됐다는 구은애 사무국장도 위키피디아의 자유로운 편집에 반했다. 그는 “동아리 세미나 자료를 버리기 아까워 인터넷에 올려 공유했다. 위키백과는 누구나 내용을 바꿀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편집에 참여하는 이들의 커뮤니티와 백과사전 제작 과정을 알게 된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콘텐츠의 질이 좋아지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발성의 질과 양에도 한계는 있다. 모든 언어판을 합한 위키피디아 전체 편집자 수는 2007년 이후 감소 추세다. 수십만명에 이르는 전체 편집자 중 여성의 비율은 15%에도 못 미치고, 지역별 문서는 유럽이나 북미 내용이 80% 이상이다. ‘2011년 세계 위키피디아 사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전형적인 위키피디아 편집자’는 ‘무서울 정도로 첨단기술에 해박한 30살의 대학 학력 남성’이었다. 한국어판의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편집자층이 편중된데다 영어판 등에 견줘 전문가의 참여가 적어 문서 내용의 깊이가 얕거나 편향된 기술이 적지 않다. ‘중립 기술’을 위해 출처 표기를 의무화했지만 출처 자체가 편향돼 있거나 해당 문서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부족해 그대로 내버려두는 경우도 많다.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면 편집자뿐 아니라 단순 열람자도 위키피디아를 찾지 않게 된다. 찾는 이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부족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당장은 뚜렷한 방도가 없다. 위키피디아 편집자들은 ‘좀더 자유로운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만재 이사장은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저작물은 미국 시민이 세금으로 사용료를 낸 것이라 생각해 저작권이 아예 없다. 반면 한국은 정부 기관에서 공개한 정보는 대부분 비상업적 용도에만 쓰도록 한다. 내가 읽고 쓰는 건 상관없지만 누군가와 함께 쓰는 건 막는다는 뜻이다. 특히 사진 자료들이 문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진은 수십장인데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미국에서 찍은 걸로 쓴다. 미국 정부처럼 정부 저작물을 좀더 과감하게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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