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발트너 기억나세요? 이제야 은퇴한대요

강호철 기자 2016. 2. 1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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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하나, 쉼없이 뛰었다] '탁구계의 모차르트' 은퇴 선언.. 김기택·유승민과 접전 끝에 敗 미혼.. "난 탁구와 결혼한 남자" 철저한 자기관리, 끝까지 전설로 김기택 27세·유승민 32세에 은퇴

12일(한국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스파르파겐과 BK레코르드의 탁구클럽 단체전. 체육관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한 선수의 움직임을 숨죽여 바라봤다. 전성기 시절 날렵했던 몸매는 사라졌고 배에는 중년살이 붙었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얼음 같은 표정은 여전한 인물. 얀 오베 발트너였다.

1988년(당시 23세) 서울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8강전에서 한국의 김기택과 풀 세트 접전 끝에 패했고, 2004년(당시 39세) 아테네올림픽 준결승에선 유승민에게 승리를 선사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올해 51세가 된 그는 상대인 안드레아스 퇴른크비스트(30)와 접전 끝에 1대3으로 패했다. 상대의 승리를 축하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38년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발트너는 경기를 마친 뒤 "올 시즌을 시작할 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등과 몸이 이제는 굳어지고 있다"고 은퇴 이유를 밝혔다. 아직 미혼인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난 탁구와 결혼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했다고 한다.

김기택은 발트너의 은퇴 소식을 전해 듣고 "아직도 그가 라켓을 놓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멋지고, 부럽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김기택은 발트너의 장수 비결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 있고, 공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도 오래 버틴 것"이라고 했다. "국제대회 때 만나 보면 발트너는 훈련을 할 땐 하고, 쉴 때는 골프까지 치면서 자유스럽게 행동했어요. 자기 관리도 워낙 철저했지만, 우리처럼 강압적으로 운동했으면 지금까지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탁구에선 뛰어난 반사신경과 손과 눈의 조화, 순발력이 필수적이다. 작은 공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크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까지도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한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발트너와 서울올림픽에서 맞붙은 김기택은 1989년 27세에 은퇴했고, 당시 20세로 한국 남자 탁구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유남규와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은 32세에 라켓을 놓았다. 여자는 선수 수명이 더 짧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세계 여자 탁구를 주름잡은 중국의 덩야핑은 24세, 양영자와 현정화도 20대 초중반에 선수생활을 접었다.

발트너는 16세 때 유럽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무대에 두각을 드러냈다. 침착한 경기 운영과 강약을 조절하는 템포 탁구로 '탁구계의 모차르트', '탁구계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찬사도 들었다. 올림픽에 다섯 차례 출전해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단식 챔피언, 2000년 시드니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세계 남자 탁구 사상 첫 커리어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월드컵 챔피언)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4명으로, 발트너에 이어 류궈량(1999년), 공링후이(2000년), 장지커(2012년) 등 3명이 뒤를 이었다.

탁구 왕국인 중국에선 발트너를 '상록수'로 부른다. 변치 않는 실력에 대한 칭찬이다. 베이징에 그가 차린 스웨덴 레스토랑 'W BAR'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2013년에는 현존 외국인 중 처음 중국 우표에 등장했다. 우표는 2000만 장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김기택은 "우리 선수들도 발트너를 선수 시절부터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진짜 탁구계의 '레전드'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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