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가능성에 온몸을 던졌다"..중력파 검출 한국인 주역들

김민수 기자 2016. 2. 1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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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12일 중력파 첫 검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 김민수 기자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운데)가 중력파의 개념에 대해 직접 몸으로 설명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이 결과에 비관적이었습니다. 중력파 검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지난해 9월 14일 유의미한 관측이 이뤄진 뒤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확신이 생겼습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의 김영민 연구원(부산대 물리학 박사과정)은 중력파 연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연구 결과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존재를 예측한 후 100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중력파의 존재가 쉽게 모습을 드러낼 리 없다는 게 당시 과학계의 중론이었다.

12일 새벽 0시 30분(한국시각) 미국·한국·독일·영국 등 15개국 과학자 1000여명으로 구성된 ‘고급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라이고) 연구단(LSC)’은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 이탈리아 피사 등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중력파 검출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우주 및 천체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알려줄 ‘최고의 발견’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역사적인 중력파 연구에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중심으로 20명의 한국인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 컨소시엄 KGWG도 참여했다. KGWG는 라이고 검출기에 잡힌 신호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미국 현지에서 신호 모니터링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KGWG 연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중력파 발견의 의미와 한국 연구진의 활동 등을 소개했다. KGWG를 이끈 이형목 교수를 비롯해 이창환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김정리 연세대 박사후연구원, 이현규 한양대 교수,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영민 부산대 물리학과 대학원생 등 KGWG 멤버들이 참석했다. 다음은 연구진과의 일문일답.

-이번 중력파 검출 성공의 의미는.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그동안 검증되지 않았던 중력파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력파 천문학 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우주 및 천체 연구는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빛을 관측하는 광학망원경, 전자기파를 관측하는 전파망원경으로만 이뤄졌다. 그런데 블랙홀 충돌 등 천체 현상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와 빛은 다른 물질과의 상호작용 때문에 뚫고 나오지 못해 광학망원경이나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없다. 이제 중력파를 이용한 천문학 연구가 가능해져 우주를 연구하는 ‘제3의 눈’이 생긴 것이다. 올해 7월 감도를 더욱 높인 라이고 검출기가 가동된다면 블랙홀 충돌시 나온 중력파를 일년에 수백개 이상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력파와 전자기파는 어떻게 다른가.

“전자기파는 전하를 띤 물체가 서로 가속하면 주위의 자기장이 파동 형태로 요동치는 것이다. 주변 물질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블랙홀 충돌과 같은 천체 현상에서는 전자기파를 관측하기 어렵다. 중력파는 중력이 센 물체 주위에서 질량을 지닌 물체가 움직이면 주위 시공간이 바뀌며 멀리 공간으로 파동 형태로 퍼져 나간다. 전자기파와는 달리 주변 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아 몇 십억 광년 떨어져 있어도 파동 형태로 도달한다.

-한국 연구진은 얼마나 참여했고 역할은 무엇이었나.

“이번 연구 결과는 물리학 저널 ‘피지컬 리뷰 레터’에 게재됐다. 이 논문에 이름을 올린 1000여명의 저자 중 한국인은 14명이다. 지난 2009년 LSC와 연구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참여했다. LSC 연구자 5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연구계획을 발표하고 현장에 있는 연구자 투표를 통해 연구단 가입이 결정되는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MOU에는 한국 연구진의 역할도 정의돼 있다. 중력파 데이터가 들어오면 3분 이내에 이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가동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진과 같은 잡음을 구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직접 미국 현지에서 검출기를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첫 중력파 신호 검출 소식을 언제 알게 됐고 느낌이 어땠나.

“첫 신호를 검출했다는 소식을 한국에서 제일 먼저 알았을 것이다. 지난해 9월 14일 저녁 8시쯤이었다. LSC로부터 ‘매우 흥미로운 이벤트(Very Interesting Event)’라는 메일이 왔다. 유의미한 신호라고 판단해 심장이 쿵쾅거리는 가운데 바로 소프트웨어를 가동했다.”

-연구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가장 힘든 점은 100년 동안 성공한 적 없었던 중력파가 과연 검출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미국에 있는 연구진과 화상 회의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시차가 맞지 않아 한국 시각으로 새벽 1~2시쯤에 진행했기 때문이다. 예산 지원이 부족했던 점도 애로사항이었다. 2011년부터 3년간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연간 1억원씩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지금은 예산이 지원되지 않는다. KGWG는 중력파 연구에 관심있는 국내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연구 컨소시엄이기 때문이다.”

-KGWG가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새로운 중력파 검출 장치를 설명해 달라.

“KGWG가 고안한 ‘소그로(SOGRO·Superconducting Tensor Gravitational Radiation Observatory)’라는 이름의 검출기다. 소그로는 라이고 검출기가 탐지하지 못하는 낮은 주파수 대역의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장비다. 라이고 검출기는 10~1000헤르츠 주파수 대역의 중력파를 탐지할 수 있다. 소그로는 이보다 낮은 0.1~10헤르츠 주파수 대역의 중력파를 탐지하기 위해 고안됐다. 블랙홀은 질량이 커질수록 중력파의 주파수가 낮아지는데 소그로는 낮은 주파수 대역의 중력파가 발생하는 중간질량 블랙홀의 충돌이나 백색왜성을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전망이나 계획은.

“이번에 중력파 검출에 성공한 ‘어드밴스드 라이고’는 원래 목표로 했던 감도의 3분의 1 수준에서 검출한 것이다. 지진과 같은 주변의 잡음을 제거하고 당초 예상했던 감도를 높인 어드밴스드 라이고가 오는 7월부터 가동된다. 이탈리아의 피사에 있는 또다른 중력파 검출기인 ‘비르고(VIRGO)’도 하반기 가동된다. 이와 함께 2019~2022년 건설이 완료될 예정인 검출기 ‘라이고 인디아(인도)’, ‘카그라(일본)’가 가동되면 총 5개의 중력파 검출기가 동시에 중력파 탐지에 나선다. 블랙홀 충돌과 같은 현상이 충분히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1년에 수백~수천개의 중력파를 탐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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