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주말기획①] 작은 우연이, 기적으로..한국 썰매의 모든 것

김용일 2016. 2. 1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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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 서영우가 지난달 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드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4차 대회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맬컴 로이드 코치를 추모하는 스티커를 붙인 채 스타트 준비하고 있다. 제공 |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지난 5일(한국시간)스위스 생 모리츠에서 끝난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7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국 스켈레톤 기대주 윤성빈. 제공 |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그간 한국 겨울 스포츠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 등 빙상 종목에서만 두각을 보였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유독 빙상에서 메달이 나왔는데 ‘효자 종목’으로 불리면서도, 종목 편중으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2년 앞둔 새해 초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을 대표로 한 썰매 종목에서도 ‘금빛’ 소식이 전해졌다.

봅슬레이 2인승의 원윤종(31) 서영우(25)와 스켈레톤 기대주 윤성빈(23)이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대회에서 차례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나란히 2010년대 들어 썰매에 입문, 이제 갓 유망주 꼬리표를 뗀 이들이나 단숨에 세계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빙상에 이어 썰매까지 빛을 보면서 2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에서 금메달 8개를 목표로 하는 한국에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도 늘었고,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나서 장비 후원에 나서는 등 썰매 보급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썰매 종목에 대해 알쏭달쏭한 게 현실이다. 평창에서 ‘금빛 레이스’를 꿈꾸는 봅슬레이, 스켈레톤을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스포츠서울은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이정표를 쓰고 있는 ‘빙판 위의 F1’ 썰매 두 종목을 집중 조명한다.

◇차에 타는 봅슬레이, 엎드려 타는 스켈레톤

얼음으로 덮인 트랙 위를 달리는 썰매. 그중 봅슬레이는 2인 또는 4인이 앉은 채 자동차를 몰듯 조종하는 게 특징이다. 선수들의 몸이 앞뒤로 끄떡거리는 모습(Bob)과 썰매(Sled)가 합쳐진 이름이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초대 대회에서 4인승이 열렸고,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2인승이 채택됐다. 여자 2인승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처음 열렸다. 평균 시속 130~140㎞에 달하는 속도로, 코스 길이는 1200~1500m에 달한다. 경기장별로 14~19개의 커브 구간이 있다. 앞에 앉는 조종수(파일럿)가 썰매 안쪽 조종 로프를 이용하고, 제동수(브레이크맨)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결승선 라인에서 썰매를 정지해야 한다.

반면 1인승으로만 치르는 스켈레톤은 머리를 정면으로 향하고 엎드린 자세로 경사진 트랙을 활주한다. 몸체엔 선수가 붙잡는 핸들과 충격을 흡수하는 범퍼가 붙었다. 사람의 갈비뼈를 연상하는 핸들 모양에서 스켈레톤(뼈)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특히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겨울에 짐을 운반하기 위해 썰매를 이용하던 것을 모태로 삼았다고 한다. 1928년 스위스 장크트모리츠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2회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나섰다가 안전상의 이유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부활했는데 여자 종목까지 추가됐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경기력 강화위원인 이세중 SBS해설위원은 “턱 보호대가 부착된 헬멧이나 팔꿈치 보호대 등 안전 장비가 과거엔 부족했다”며 “코스 이탈도 잦다 보니 썰매가 스포츠로 성숙해지기까지 고충이 있었는데,지금은 기술적으로 발전됐다. 주요 코스 안전장치도 잘 돼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 황철훈 기자
◇개척자 강광배로부터 시작된 작은 씨앗

국내에 썰매 종목을 알린 건 ‘개척자’로 불린 강광배(43) 한국체대 교수다. 10여년 전만해도 국내 썰매 등록 선수는 강 교수가 유일했다. 대학 시절까지 스키 선수로 활동하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한 뒤 썰매로 전향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며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혔고, 장비부터 대회 출전 비용까지 모두 자비로 해결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때 루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와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봅슬레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스켈레톤에 출전, 국내에서 유일하게 썰매 3종목에 모두 참가한 이력을 지녔다. 선수 은퇴 이후 국내 썰매 보급에 힘쓰며 유망주 육성에 나섰다.

현재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등록 선수는 합쳐서 84명이고, 등록 팀은 20개 팀인데 현실적으로 제대로 운영하는 건 강원도청과 한국체대, 상지대관령고 등 3개 팀뿐이다. 강 교수와 연세대 선후배 사이인 이세중 위원은 “10년 전 강 교수가 홀로 썰매 개척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게 안타까워 일을 돕게 됐다”며 “처음엔 대학에서 농구, 럭비 등 타 종목에서 뛰다가 부상 등으로 은퇴한 선수를 모아두고 훈련했다. 그렇게 섭외한 선수가 2006년 연세대 체육교육과 재학 중인 김동현(현 봅슬레이 국가대표)이다. 2010년 밴쿠버 대회 때 강 교수와 2인승에 출전했는데, 이후 김동현이 선수 수급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원윤종 서영우 등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은 우연이 하나,둘씩 뭉쳤고, 강 교수를 비롯한 썰매 개척자들의 진심 어린 노력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새 역사가 만들어진 셈”이라고 했다.

◇‘어벤저스’ 코치진이 일궈낸 한국 썰매의 기적

썰매 개척자들은 스피드와 어우러진 종목에 흥미를 느끼는 건 대륙 어디서나 마찬가지라며 가능성을 봤다. 이 위원은 “(썰매 보급률이 높은)북중미나 유럽에선 썰매 종목 시청률이 꽤 높은 편이다. 연간 벌어지는 대회를 보는 사람만 2억 명에 달한다더라. 중계방송도 80시간 이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초속을 다투는 종목인 만큼 재능 있는 선수들이 더 늘어나면 대중적인 관심도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정상을 밟기까지 봅슬레이의 원윤종 서영우는 6년, 스켈레톤 윤성빈은 3년 6개월에 불과했다. 이 위원은 우연하게 썰매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단 기간에 성과를 낸 비결을 묻자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의 엄청난 노력이다. 다음으로 꼽는 게 어벤저스 같은 드림팀 코치진”이라고 했다. ‘안 될 것’이란 주변의 시선에도 오로지 훈련에 매진한 이들은 썰매 코스를 잘 알고 있는 영국 출신 외국인 코치의 맞춤식 훈련으로 효과를 봤다. 봅슬레이는 얼마 전 사망한 맬컴 로이드, 스켈레톤은 리처드 브롬니 코치가 대표적이다.

썰매는 두려움을 버리고 코스를 통과하는 게 핵심이다. 초반 선수들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썰매를 타고 코스를 지날 때마다 고개를 들어올리는 등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자연스럽게 미세한 몸 동작에도 영향을 받는 썰매인지라 기록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현지 코스를 잘 알고 있는 외국인 코치의 상세한 지도로 몸만들기에 주력, 썰매에 편안하게 몸을 실었다. 이 위원은 “이용 봅슬레이, 조인호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의 유연한 사고도 큰 구실을 했다”고 평가했다. 흔히 일컫는 ‘꼰대’ 스타일로 자기 경험 속에서만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분야별 코치진과 소통하며 팀의 시너지를 일궈냈다. 선수부터 지도자, 썰매 관계자 모두 서로 의심을 버리고, ‘해보자’는 의지로 시작된 작은 움직임과 결정이 엄청난 결과를 내는 것이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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