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돈 깨워라..게젤의 '마이너스 금리' 100년 만의 부활

강남규 2016. 2. 12. 01: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금요일] 예금에 보관료 물리는 시대 왔다
실비오 게젤

그날이 왔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만기 수익률)가 9일 연 -0.025%까지 떨어졌다. 이 국채를 사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이자를 내야 한다.

선진국에선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시장 금리의 기준이다. 예금하거나 돈을 빌려주면 으레 이자를 받는 줄 아는 사람들에겐 ‘자연의 법칙’이 깨진 것과 같다.

 일본만 그런 게 아니다. 스위스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9월 이후 마이너스 상태다. 국채 10년물의 마이너스 금리는 의미가 크다. 공권력(중앙은행)이 아니라 시장의 힘(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돼서다.

게다가 1년 미만 단기 채권이 아니다. 10년물은 물가 상승(돈 가치 하락) 위험에 상당히 노출돼 있다. 톰슨로이터는 “일본의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란 점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전했다. 실제 10년물 금리가 0 밑으로 떨어진 일은 주요 7개국(G7) 역사상 처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간 돈 거래에서도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고 있다. 유로존·스위스·덴마크·스웨덴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이 맡기는 여윳돈(지급준비금을 넘어선 예치금)에 대해 이자를 주는 대신 ‘보관료(demurrage)’를 받고 있다.

 헤지펀드 전문매체인 알파는 “돈의 시계추가 크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는 펀드매니저가 많다”고 전했다. 벨기에 출신 경제이론가인 버나드 리테어가 말한 ‘화폐의 진자(Money of Pendulum)’ 움직임이다.

리테어는 『돈 그 영혼과 진실』에서 “늘 돈의 가치가 중시되는 것만은 아니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 돈의 가치가 희생돼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인플레가 발생하면 돈의 시계추는 돈의 질(통화 건전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1970년대 후반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고금리 정책을 실시해 달러 가치를 회복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런 시대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며 저물고 있다.

 왜 돈의 시계추는 반대로 움직일까.

 미국의 역사가인 아서 슐레진저 2세(1917~2007)와 영국 금융역사가인 글린 데이비스(1919~2003) 등은 ‘경제위기’를 분수령으로 꼽았다. 위기 이후 실물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 ‘돈의 학대(Abuse of Money)’가 발생한다. 저금리,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일반화하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경제이론가인 리테어는 “역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금리는 기원전 19~18세기 이집트에서 실시됐다”고 설명했다. 구약성경 속 인물인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된다.

그는 나일강 홍수와 가뭄이 일정 주기로 되풀이되는 점을 간파한다. 가뭄을 대비해 당시 화폐인 곡물을 창고에 저축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리테어는 “요셉은 저축된 곡물 대신 증서(점토판)를 내줘 다른 창고에서도 약속한 곡물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곡물의 지나친 저축 때문에 풍년기인데도 값이 뛰는 것을 막기 위해 요셉은 이자 대신 보관료를 물렸다”고 설명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영원하지는 못했다. 자본주의 시대가 본격화한 19세기 중반 이후 마이너스 금리는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1970년대 스위스가 서방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돈 가치가 만성적으로 하락한다)을 피해 알프스를 넘어 밀려드는 자금을 막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적은 있다.

금융역사가인 데이비스는 『화폐의 역사(A History of Money)』에서 “그때 스위스는 경제 활성화가 아니라 스위스프랑화의 비정상적인 급등을 막기 위해 해외 자금에 한해 마이너스 금리를 물렸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마이너스 금리의 부활은 최근 들어서다. 그 바람에 한 인물이 망각의 연옥에 갇혀 있다 풀려나고 있다. 벨기에 태생이지만 독일에서 주로 활동한 무정부주의자 실비오 게젤 이다. 그는 191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와 화폐 시스템을 놓고 논쟁을 벌였던 인물이다.

 논쟁은 치열했다. 케인스가 명저인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비중 있게 게젤의 화폐 이론을 소개할 정도였다.

게젤은 “시장 금리가 경제성장을 의미하는 실질자본 증가의 발목을 잡는다”고 봤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 잘 팔아야 자본이 증가하는데 금리가 높으면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실질자본이 쉽게 늘지 않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게젤은 “마이너스 금리를 물리면 실질자본 증가(경제성장)가 빠르게 이뤄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마이너스 금리가 ‘게젤세(Gesell’s Tax)’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스탬프 화폐(Stamp Money)’ 시스템을 제안한다. 발행 시기를 화폐에 표시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날 때마다 액면가치를 일정 비율 떨어뜨리는 통화시스템이다. 이때 돈을 쓰지 않고 쥐고 있으면 손해다. 소비자들은 돈을 쓰게 돼 경제가 잘 돌아가게 된다 .

 피셔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제도”라고 평했다. 실제 대공황기 독일 일부 지역에서 스탬프 화폐 제도를 도입해 효과를 보기도 했다.

 케인스는 게젤의 이론을 비판하기도, 의미 있게 평가하기도 했다. 케인스는 『일반이론』에서 “게젤의 이론은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론”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게젤의 이론은 학계에선 인정받지 못했지만 후세 사람들이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이론보다 게젤의 이론에서 더 많이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케인스 예언이 적중한 것인가. 게젤이 숨을 거둔 지 85년이 지난 2015년 하반기부터 주요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고 있다. 요즘 실물경제 상황이 그만큼 다급해서다.

전 세계가 디플레이션에 시달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유럽, 일본 경제가 평년 수준을 밑돌고 있다. 미국 경제마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다급하니 세상을 부수겠다는 무정부주의자의 이론마저 가져다 써야 할 판이다.

▶관련 기사
① 부유세·월가혁신·빈민구제…거침없는 ‘민주적 사회주의’
② ‘뺄셈’ 된 마이너스 금리 아베노믹스 다시 원점

 그 바람에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로존의 대표적 시중은행인 도이체방크와 일본의 1등 은행 미쓰비시UFJ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로 수익력에 대한 불신이 증폭돼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채권자의 저주’다. 이 저주가 연금이나 금융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미치고 있다.

대신 채무자의 복음이다. 한 나라의 최대 채무자는 바로 정부다. 이어 금융자산보다 빚이 많은 일반 기업과 가계 순이다. 돈을 학대하는 시대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풍경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돈도 감가상각 돼야” 주장한 실비오 게젤은

1862년 벨기에서 태어나 1930년에 숨진 무정부주의자. 그는 유럽과 남미를 오가며 무역업을 하기도 했다. 1890년 남미 경제위기를 보면서 화폐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카를 마르크스 저서인 『자본론』의 비판가이기도 했다. 그의 유명한 저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The Natural Economic Order)』(사진)의 상당 부분을 마르크스 이론을 반박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돈의 가치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감가상각 돼야 한다”며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면 경제 성장이 잘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 중단 손해는? 北 1억 달러, 한국은… '충격'

[POLL] "이란 어떻게 핵포기했냐" 朴대통령 말에···

'부인을 보스로 모셔라' 84년 해로한 부부관계 꿀팁5

[단독] '칩거' 文, 기자 손 끌고 집 들어가 "밥줘"

[단독] "17년간 광고모델 했는데 받은 돈은 25만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