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부지하려..제품 놔두고 몸만 빠져나왔다"

노승환,정순우,안갑성 2016. 2. 1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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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통보에 "어떻게 해야할지.."물품 반출 제지..소총 든 北군인 지켜경협보험 가입 안된 기업들은 도산 공포

◆ 북, 개성공단 전원 추방 / 개성공단 탈출 긴박했던 29시간 ◆

<b>물품 하나라도…</b><br> 11일 북한의 추방 통보 전에 개성공단에서 물품을 급하게 싣고 돌아온 차량에서 업체 직원들이 짐을 내려 다른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김호영 기자]
"북측 남북출입사무소(CIQ) 군인들 복장이 평소와 달랐고, 소총을 메고 있었다."

북한이 개성공단 인원에 대해 추방 조치를 내린 11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통일부 CIQ를 통해 오후 10시께 입경한 이정국 동우콘트롤 부장의 한마디에는 이날 북한의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따른 긴박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날 오후 5시 50분께 남측 개성공단 관계자 2명이 입경한 이후 4시간 가까이 단 한 명도 남측으로 귀환하지 못해 한때 '억류되는 것 아닌가'는 우려도 나왔지만 이날 오후 10시께부터 280여 명의 남측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차량 247대에 나눠 타고 모두 입경하면서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체류 인원 입경이 늦어진 것은 북한이 이날 오후 갑작스럽게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하면서 입경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업체 임원은 "북한 시간으로 오후 5시에 통일부 산하 관리위원회에서 남측 근로자들을 소집한다고 공지했는데 다들 현장에서 짐을 꾸리다 보니 제때 통보를 못 받은 것 같다"며 "이제 개성에 있는 자재와 제품을 다 못 쓰게 됐으니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성호 제이엔제이 법인장은 "점심도 못 먹고 계속 물건을 챙기다가 이날 오후 관리원으로부터 갑자기 폐쇄 통보를 받았다"며 "지난번 잠정 중단 때에도 엄청난 양의 제품을 못 갖고 나와서 많은 금액을 변상했는데 이번에도 또 그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통보로 체류 인원을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입경 시간은 더욱 늦어졌다. 한 관계자는 "오후 6시에 바로 출발할 수 있었는데 인원 파악이 안 돼 늦었다"며 "북측 사무소까지 통과하고 나서 관리위원회에서 '인원 파악이 안 됐다'며 돌려보냈고 4시간을 버스에서 기다렸다"고 밝혔다.

무사히 남측으로 돌아왔지만 개인 소지품만 겨우 챙겨온 탓에 대부분의 개성공단 관계자들은 남겨둔 제품, 생산 설비를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관계자는 "옷도 제대로 못 챙기고 허겁지겁 나왔다"며 "내일까지 머물며 자재를 빼오려고 했는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맨몸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강 법인장은 입경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제품과 설비는 봉인해뒀지만 30분의 1도 못 챙겼다고 봐야 한다"며 "완제품의 경우 우리 물건이 아니고 이를 저희들이 다 변상해야 하기 때문에 참담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의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는 정부 발표로부터 개성공단 내 우리 국민의 전원 철수가 완료될 때까지 29시간 동안 상황은 긴박하게 전개됐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은 이날 오전 8시 30분께 개성공단 출입계획에 동의했고 이날 오전 9시부터 CIQ를 통한 남측 인원의 개성공단 입·출경이 시작됐다.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여유 있게 완성품과 원·부자재 등을 차량에 싣고 남측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졌지만 북한이 "추방되는 인원은 개인 소지품 외에 다른 물건은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발표로 급작스럽게 폐쇄를 통보하면서 상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남측에서 대기하고 있던 입주 기업 관계자들 역시 북한의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내 자산 동결, 인력 강제 철수 발표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이 하루 동안 개성공단 입·출경과 원·부자재, 완제품 반출을 허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정부가 철수 시한만 연장해준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던 터였기에 더 큰 허탈감에 빠진 모습이었다.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한 기업들은 손실액의 90% 범위에서 70억원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24개 입주사 가운데 보험에 가입한 업체가 76개밖에 되지 않는 데다 보상 대상이 현지에 투자된 유형 자산에 한정되기 때문에 기업들의 반발은 거세다. 개성에 두고 온 제품, 원·부자재는 물론 거래처 단절이나 손해배상 대응으로 발생할 미래 영업손실에 대한 보상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한 섬유업종 기업 관계자는 "보험 가입률이 낮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영세업체들이 보험료를 아끼느라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단에 있는 자산의 가치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가입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며 "게다가 미리 신고한 시설투자액만 보험 적용 대상이라 재고 자산은 그대로 손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자금 저리대출이나 대체토지 제공 등 정부에서 검토 중인 다른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대부분 '미봉책'이라는 반응이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에스엔지 대표)는 이날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충분히 정부 의도대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며 기업들을 도산 위기로 내몬 것은 정부의 잘못"이라며 "기업들의 피해에 대한 실질적 보상이 없다면 법률적 검토를 통해 정부와 소송전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피해 정도를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은 "2013년 집계할 때는 업체들이 실제 입은 손실만 반영했지 영업권이 없어지면서 발생하는 무형 손실은 반영하지 않았다"며 "개별 기업별로 집계해 며칠 안에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파주 남북출입사무소 = 노승환 기자 / 서울 = 정순우 기자 /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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