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열만하면 떠나는 '계약직' 상담선생님
[한겨레] 왕따·학폭…안정적 상담 못받는 학생들
초중고 30%에만 배치된 상담사
그중 1/3은 1년이하 단기계약직
“고민 말할 유일한 친구였는데”
심리 불안 학생들 상처만 남아
경기 시흥에 사는 중3 최아무개(15)양은 지난해 개학날 학교 상담실에 들어서는 순간 유일한 ‘친구’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학교의 전문상담사가 계약 만료가 돼 다른 상담사로 교체된 것이다. 재혼한 엄마의 방치 속에 이복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양에게 이 상담사는 친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겨우 마음 열 누군가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최양은 새 상담사에게 마음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그도 역시 이달에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다.
초·중·고교에 있는 전문상담사 대부분이 계약직인 탓에 따돌림이나 폭력, 가정 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안정적인 상담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임용시험을 통과한 ‘전문상담교사’와는 달리, 상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상담사’들이 대개 1년 이하 단기계약직으로 채용되는 탓에,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유대감을 갖고 고민을 털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학교 현장에 상담교사보다 상담사가 훨씬 더 많이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전문상담교사 배치 현황’을 보면, 전국 학교의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14.9%(1781명)에 불과하다. 상담교사의 2배 넘는 전문상담사(3610명)가 나머지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그나마도 이들의 30%(1082명)가 1년 이하 단기 계약직이다. 이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상담실에 발을 끊기도 한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왕따’를 당했던 이아무개(19)양도 그런 경우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뒤 시도 때도 없이 책상 밑에 숨을 정도로 심리가 불안정했던 이양은 ‘점심 친구’였던 계약직 전문상담사가 교체된 뒤 상담실을 잘 찾지 않았다. “어차피 새 상담사도 곧 떠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학교에 맘을 붙이지 못한 이양은 2014년 학교를 나왔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상담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학교에서 상담서비스를 도맡는 전문상담사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3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김미진(47) 전문상담사는 “심한 가정폭력과 따돌림 때문에 괴로워하던 남학생이 상담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서야 마음의 문을 열었다”며 “1년 안팎의 상담으로는 상처만 남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혁 건국대 교수(상담심리학)는 “상담사가 자주 바뀌면 관계 형성이 어려워지고, 상담이 난관에 봉착하는 건 당연하다”며 “미국은 모든 학교에 상담사를 정교사로 채용한다. 안정적으로 상담해줄 수 있는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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