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열만하면 떠나는 '계약직' 상담선생님

입력 2016. 2. 11. 10:06 수정 2016. 2. 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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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왕따·학폭…안정적 상담 못받는 학생들

초중고 30%에만 배치된 상담사
그중 1/3은 1년이하 단기계약직
“고민 말할 유일한 친구였는데”
심리 불안 학생들 상처만 남아

경기 시흥에 사는 중3 최아무개(15)양은 지난해 개학날 학교 상담실에 들어서는 순간 유일한 ‘친구’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학교의 전문상담사가 계약 만료가 돼 다른 상담사로 교체된 것이다. 재혼한 엄마의 방치 속에 이복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양에게 이 상담사는 친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겨우 마음 열 누군가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최양은 새 상담사에게 마음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그도 역시 이달에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다.

초·중·고교에 있는 전문상담사 대부분이 계약직인 탓에 따돌림이나 폭력, 가정 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안정적인 상담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임용시험을 통과한 ‘전문상담교사’와는 달리, 상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상담사’들이 대개 1년 이하 단기계약직으로 채용되는 탓에,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유대감을 갖고 고민을 털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5년 전국 전문상담사 배치 현황

문제는 학교 현장에 상담교사보다 상담사가 훨씬 더 많이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전문상담교사 배치 현황’을 보면, 전국 학교의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14.9%(1781명)에 불과하다. 상담교사의 2배 넘는 전문상담사(3610명)가 나머지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그나마도 이들의 30%(1082명)가 1년 이하 단기 계약직이다. 이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상담실에 발을 끊기도 한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왕따’를 당했던 이아무개(19)양도 그런 경우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뒤 시도 때도 없이 책상 밑에 숨을 정도로 심리가 불안정했던 이양은 ‘점심 친구’였던 계약직 전문상담사가 교체된 뒤 상담실을 잘 찾지 않았다. “어차피 새 상담사도 곧 떠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학교에 맘을 붙이지 못한 이양은 2014년 학교를 나왔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상담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학교에서 상담서비스를 도맡는 전문상담사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3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김미진(47) 전문상담사는 “심한 가정폭력과 따돌림 때문에 괴로워하던 남학생이 상담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서야 마음의 문을 열었다”며 “1년 안팎의 상담으로는 상처만 남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혁 건국대 교수(상담심리학)는 “상담사가 자주 바뀌면 관계 형성이 어려워지고, 상담이 난관에 봉착하는 건 당연하다”며 “미국은 모든 학교에 상담사를 정교사로 채용한다. 안정적으로 상담해줄 수 있는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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