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도 잘 죽지 않는 바퀴벌레의 비밀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6. 2. 1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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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몸을 순식간에 압축할 수 있게 외골격이 여러 판으로 돼 있어 좁은 틈도 납작해져 빠져나가 美, 바퀴벌레 모방한 로봇 개발.. 지진 구조 현장서 활용 기대 벌의 날개 복원력 모방한 로봇도
바퀴벌레는 몸을 압축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사람의 발에 밟혀도 잘 죽지 않으며(아래 왼쪽 사진), 몸통 높이의 3분의 1에 불과한 좁은 틈도 빠져나온다(아래 오른쪽). UC버클리 연구진은 바퀴벌레를 모방해 몸통 높이의 절반까지 몸을 압축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위 사진). /UC버클리 제공

파리나 모기는 얇은 파리채로도 잡을 수 있지만 바퀴벌레는 두꺼운 슬리퍼로 내리쳐도 죽지 않고 도망간다. 막다른 길로 몰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사라지기 일쑤다. 바퀴벌레의 놀라운 탈출 능력은 몸을 납작하게 만들 수 있는 탄성 덕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바퀴벌레를 모방해 건물 잔해를 헤집고 다니면서 사람을 찾는 탐색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3분의 1로 압축하는 바퀴벌레

미국 UC버클리의 로버트 풀 교수는 지난 8일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바퀴벌레를 모방한 탐색 로봇의 시제품을 발표했다. 풀 교수가 개발한 로봇 '크램(CRAM)'은 '압축 가능한 다관절 기계장치'의 영문 약자로 손바닥만한 크기다. 바닥에서 등까지 높이가 75㎜이다. 크램은 좁은 틈을 만나면 몸을 위에서 누른 듯 압축해 높이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바퀴벌레는 이전부터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헤집고 다니며 사람을 찾는 탐색 로봇의 모델로 주목받았다. 연구진은 먼저 바퀴벌레의 탈출 능력을 측정했다. 높이가 9㎜인 미국바퀴벌레는 3㎜ 높이의 틈도 빠져나갔다. 머리를 구겨 넣듯 틈 안으로 집어넣은 다음, 앞다리를 집어넣었다. 이후 뒷다리를 펴고 앞다리의 힘으로 몸을 빼냈다. 이 모든 과정이 1초 안에 이뤄졌다. UC데이비스의 스테이시 콤브 교수는 사이언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문어도 좁은 틈을 통과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속도는 바퀴벌레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바퀴벌레는 1초에 자기 몸길이의 20배를 달렸다. 키 1.7m 사람으로 치면 초속 34m의 속도이다.

연구진은 바퀴벌레의 외골격이 딱딱하지만 잘 휘어지는 판들로 구성돼 있고 사이사이에 탄성이 좋은 막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바퀴벌레의 외골격은 마치 판자처럼 압축되면서 충격을 분산할 수 있다. 자동차에 있는 판 스프링과 같은 원리다. 실험 결과 바퀴벌레는 몸무게의 900배 정도의 무게로 눌러도 견딜 수 있었다. 몸무게 60㎏ 사람으로 치면 54t 무게도 견디는 셈이다.

연구진은 크램 로봇에 탐색용 센서들을 장착해 수백 마리씩 한꺼번에 운용할 계획이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로봇 바퀴벌레도 개발 중이다. 지난해 3월 텍사스A&M대 홍 리앙 교수는 실제 바퀴벌레에 조종용 칩과 전선, 배터리를 부착한 로봇 바퀴벌레를 발표했다. 무선으로 신호를 보내면 바퀴벌레의 다리에 전류가 흘러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가 있다. 실험에서 70%의 조종 성공률을 보였다.

◇충돌에도 끄떡없는 말벌 날개

재난 현장에서는 하늘을 나는 탐색 로봇도 필요하다. 여기서도 곤충이 모델이 될 수 있다. 지난달 미국 하버드대의 앤드루 마운트캐슬 박사는 통합·비교 생물학회에서 꿀벌과 말벌이 비행 도중 장애물과 부딪혀도 날개에 손상이 가지 않는 이유를 발표했다. 고속 비디오 영상으로 분석한 결과 꿀벌이나 말벌의 날개는 나무줄기 등에 부딪히면 형태가 뒤틀렸다가 곧바로 복원됐다.

연구진은 말벌 날개의 복원력은 날개에 일종의 경첩 역할을 하는 고탄성의 '레실린(resilin)' 단백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벼룩은 자신의 몸길이보다 수십 배나 되는 높이를 점프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몇십 층짜리 빌딩을 쉽사리 뛰어넘는 것이다. 벼룩의 점프력도 다리 근육에 레실린이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부목을 대듯 말벌의 레실린 단백질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날개는 곧 탄성을 잃어버렸다고 밝혔다.

뒤영벌은 다른 원리로 날개의 탄성을 유지했다. 뒤영벌은 날개에 모세혈관이 있어 형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혈관은 몸 가까운 쪽에 집중돼 있었다. 덕분에 날개 끝은 장애물에 부딪혀도 쉽게 휘어진다. 마운트캐슬 박사는 "말벌과 뒤영벌은 같은 목적을 위해 다른 수단을 쓴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곤충을 모방한 로봇 벌도 개발했다. 탐색 로봇이 하늘과 땅에서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활약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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