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올린 판결문 '0'건 변호사도..경력법관 선발, 올해도 '부실 검증'
[경향신문] ㆍ의사·로펌 일 겸직 두 곳서 월급 받으며 경력 3년 채워
ㆍ재판연구원 출신 많아…“법원, 순치된 인물 위주 선발”
대법원의 ‘경력법관 선발’ 제도가 올해도 공정성·적절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이 제도는 경력 3년 이상 된 법조인 중에서 법관을 뽑는 것이다. 엄정해야 할 법관 선발이 ‘깜깜이 임용’이란 지적을 받지만 법원은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법원이 지원자들의 경력을 부실하게 검증한다는 점이다. 올해 경력법관에 임용되는 김모씨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변호사 업무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를 졸업하고 로스쿨을 마친 김씨는 지난해 경기도 한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소형 법무법인에도 이름을 올려 임관에 필요한 법조경력 3년을 만들었다.
하지만 1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변호사 경력을 인정받아 판사가 될 김씨가 이름을 올린 판결문은 1건도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그가 마무리한 사건은 20여건이었지만 화해권고·소취하 등으로 끝났다. 수임 사건들도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한 송전선 관련 소송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이 기간 김씨는 경기도의 병원까지 가 야간당직으로 일했다.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주5일 근무였다. 변호사 생활과 제대로 병행했다면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셈이다. 해당 병원은 김씨를 ‘과장’이라고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월급은 두 곳에서 모두 받았다.
김씨는 “속한 법무법인에 화해나 조정으로 끝나는 사건이 많아 어쩔 수 없었고, 대신 소송 이외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해명했다. 겸직에 대해서는 “야간당직이라 변호사 일과 병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력법관 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법원이 새 제도 취지를 무시하고 순혈주의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로스쿨을 나와 경력법관으로 뽑힌 37명 중 27명이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이었다. 올해도 법관 임관 예정자 20명(군·공익법무관 제외) 중 14명이 로클럭에서 선발됐다. 로클럭은 로스쿨 졸업자 가운데 선발돼 2년 동안 판사들을 돕는 보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리가 법관임용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용문’으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박주희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은 “변호사 경력자 임용을 도입한 목표는 다양성이다. 기존의 연수원 성적순 임용의 공정성을 포기하면서 내세운 것”이라며 “법원에서 순치된 사람들을 위주로 법관을 선발하는 것은 순혈주의를 유지하면서 불투명성만 강화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경력법관 임용에 있어 로스쿨 출신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도 논란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뽑은 경력법관 가운데 로스쿨 출신만 8개월 동안 추가 교육을 시켰다. 함께 뽑힌 사법연수원 출신 판사들은 2주 교육이 전부였다. 연수원과 로스쿨 출신들이 호봉은 같은데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다. 일각에선 “법원 스스로 로스쿨 출신들의 실력을 믿지 못하면서, 교육을 시켜 법관을 만들려 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지난해 임용에선 로스쿨 출신을 위해 정원을 따로 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자 법원은 올해 연수원·로스쿨 출신의 실력이 똑같다는 것을 전제로, 각각의 임용 정원을 두지 않고 통합해서 뽑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로스쿨 출신을 대상으로 한 8개월 연수는 계속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공개한 임관대상자 101명에 대한 의견을 12일까지 받는다.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변호사 업무를 병행, 경력에 의혹을 받은 김모 변호사는 1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월급이 필요해 두 가지 일을 했을 뿐, 변호사 일을 충실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원래 요양병원의 경우 낮에 원장님이 있고 환자분들의 상태를 거의 다 파악한다”며 “나는 밤에 응급상황 있을 때만 대응하는 것이라, 상황이 없으면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 있더라도 법무법인 일거리를 하거나 잠을 자는 것 등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실린 판결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법무법인의 특성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 변호사는 “내가 맡은 대부분의 사건이 화해 형태나 조정으로 끝나는 사안들이었다”라며 “내가 속한 법무법인이 특정 분야를 주로 하는 곳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희망은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었으나, 언제나 내 뜻대로만은 할 수는 없는거라 생각한다”며 “다만 법무법인에서 송무말고도 다양한 일을 했던 만큼, 경험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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