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보기] 우리 아이의 대부·대모를 찾습니다

금정연 입력 2016. 2. 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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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식(김샥샥연구소장ㆍ독립연구자)은 지난주 이 지면을 통해 ‘공모전 자아’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공모전 준비 태세를 상시적으로 요구 받으며 공모전을 삶의 단위로 받아들이고 신체 감각을 프레젠테이션에 맞춘 채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의 내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내가 그 명명에 공감했다면 나 역시 같은 ‘공모전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명절은 내게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처럼 느껴진다. 상반기(설)와 하반기(추석)에 한 번씩 심사관(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인지 평가 받는 자리인 것이다.

10대에는 성적과 대학 진학. 20대 초반에는 토익 점수와 취업. 20대 후반에는 연봉과 결혼. 시기별로 주제는 다르지만 내가 발표하고 어른들이 심사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공모전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오디션이라고 말해도 좋다. 어쩌면 명절이야말로 아랫세대가 윗세대에 의해 평가 받는 진정한 대국민 오디션의 장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라, 슈퍼후손 K!’ 차이가 있다면 쟁쟁한 사촌들을 물리치고 최고점을 받는다고 해도 거액의 상금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남는 장사는 아니다.

어느덧 나도 3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결혼까지 했지만 오디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와 대출이자와 늘어만 가는 뱃살과 점점 가늘어지는 머리카락 등 평가 항목은 차고 또 넘치지만, 가장 큰 주제는 역시 출산이다. 문제는 출산과 기타 평가 항목이 서로 대립된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불확실한 미래는 아이라는 변수 때문에 더욱 불확실해질 게 뻔하고, 대출이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육아에 시달리며 폭삭 늙으면 늙었지 회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모순적인 요구가 아닌가?

어쩌면 바로 그것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물림. 새로운 구성원이 가족에 추가되면서 나는 오디션 참가자에서 심사관으로 잠정적인 승진을 하는 것이다. 물론 평가는 끝나지 않는다. 한 아이의 부모로서 자신의 아이를 사촌의 아이들이나 ‘엄마 친구 손자’들과 비교당하며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이제 더 이상 초점은 내가 아니다. 아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향후 자녀 출산계획이 있는 응답자는 10명 중 3명이었는데, (중략) 자녀계획이 없는 이유로는 미혼 응답자의 경우 양육비 부담(58.9%·중복응답)과 교육비 부담(44.9%)을 주로 꼽았다.’ 결국 가장 큰 장애물은 경제적인 부담이지만, 최근 누리과정 지원을 둘러싼 보육대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명절마다 ‘슈퍼후손 K’ 오디션을 통해, 친척 어른들이 우승자에게 보육비 명목으로 거액의 상금이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각자도생의 시대다. 일상은 이미 프레젠테이션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어차피 하는 프레젠테이션, 좀 더 크게 하지 못할 이유가 무언가? 그래서 나는 출산 및 육아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10만원을 펀딩 하면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고 물어볼 수 있는 권한을 드리고, 50만원을 펀딩 하면 돌잔치 사진첩을 보내드리며, 100만원을 펀딩 하면 해마다 아이의 생일에 초대하고, 500만원을 펀딩 하면 아이의 대부ㆍ대모로 모시는 식이다. 아직 조율할 부분이 많으니 자세한 내용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추후 공개하겠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

금정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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