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플레이스라고요?" 한숨 짓는 상인들

2016. 2. 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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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 타며 임대료만 껑충.. 상권 특성 잃자 손님 발길 '뚝'

“차라리 이 동네가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을 텐데···.”

설 연휴 전인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서 만난 고깃집 주인 이모(58·여)씨는 이같이 말하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경리단길이 최근 몇 년 사이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독특한 문화와 스타일 등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지역)’로 주목받으면서 임대료가 껑충 뛰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갈수록 뜸해진다는 하소연이었다.

실제 이날 저녁 경리단길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과거 많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던 카페나 음식점들을 살펴봐도 테이블을 채우지 못한 데가 적지 않았다.

‘서촌’인 종로구 체부동, 누상동, 옥인동 일대의 사정도 비슷했다. 누상동에서 중국요리집 영화루를 운영하는 장란분(61·여)씨는 “작년 겨울에 비해 손님이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며 “올해 강추위가 이어지긴 했지만 날씨 탓이라기보다는 거리를 방문하는 사람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경리단길은 2014년 가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되면서 단번에 화제의 중심이 됐다. 서촌 역시 3~4년 전부터 한옥마을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관광명소로 입소문을 타며 홍대입구,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등의 뒤를 잇는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이후 이들 지역엔 외지 투자자가 몰리고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기존 상인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이곳 상인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다.

경리단길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38)씨는 “손님은 줄었는데 임대료는 곱절로 뛰어 운영에 힘이 부친다”고 토로했다.

서촌의 한 크로켓집 사장 조정희(49)씨는 “8년째 월 임대료가 40만원 선이던 가게인데 1년2개월 전 월 140만원에 들어왔다”며 “다들 임대료 부담 때문에 인테리어 같은 것은 손을 댈 여력이 없고 음식만 팔고 있다. 수익을 내는 곳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경리단길과 서촌 일대 임대료도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4년 1분기 1㎡당 2만4800원이던 경리단길 상가 임대료는 2015년 2분기 5만4400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4분기 4만3600원까지 떨어졌다. 서촌 상가 임대료도 지난해 2분기 3만6600원에서 4분기 2만7400원으로 내려앉았다. 골목상권이 ‘반짝 활황’을 겪는 동안 건물주나 외지 투자자들만 배를 불린 셈이다.

서촌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인근 세탁소가 월 1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뛴 임대료를 못 버티고 나갔다”며 “이런 식으로 서촌 가게의 70%가 물갈이됐다”고 말했다.

결국 원치 않은 유명세로 원주민이 밀려나고 상권은 고유 특성을 상실하는 실패 사례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경리단길 자몽카페 김미례(42·여) 사장은 “예전에는 개성 넘치고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많아 ‘젊은 예술가의 거리’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음식점 일색”이라고 말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경리단길을 찾은 회사원 안상민(30)씨도 “과거에는 이 길 고유의 고즈넉하면서도 소소한 분위기가 있었다”며 “걷는 재미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서촌의 조강희 중앙공인중개사무소장은 “구멍가게, 철물점, 미장원 등 지역 특색에 걸맞은 가게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먹자골목처럼 변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상권의 공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원대 김갑열 교수(부동산학)는 “골목상권이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단계인데 투자자들의 자본이 지나치게 빠르게 유입됐다”며 “상권이 안정되기도 전에 자본이 무분별하게 유입되면 상권이 붕괴된다”고 지적했다.

유태영·안병수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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