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안 끝났어요.. 그러니 날 보러 와요

곽우신 2016. 2. 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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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리뷰] 연극 <날 보러와요> 96년 초연 이후 16번째 관객맞이.. 기억과 외면을 말하다

[오마이뉴스 글·사진:곽우신, 편집:이선필]

▲ 비 오는 날의 레퀴엠 지난 1월 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날 보러와요> 20주년 기념 특별공연의 프레스콜. OB팀의 김형사(권해효)가 비 오는 날씨와 라디오에 울려퍼지는 레퀴엠 그리고 사건의 연관관계를 주장하며 김반장(이대연), 박형사(유연수)에게 설명하고 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른 전개이지만, 이 흐임로운 설정이 극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20년 만에 김형사로 돌아온 권해효가 돋보인다.
ⓒ 곽우신
참사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6년 첫 희생자가 나왔다. 영구미제 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시작이었다. 1991년까지 모방범죄를 포함해 총 1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하지만 범인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지난 2006년 모든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연극 <날 보러와요>는 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프가 된 극이기도 하다.

참사의 피해자는 하나가 아니다. 희생자만이 피해자가 아니다. 기자는 사표를 써야 했고, 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은 자살을 선택한다. 결국 옷을 벗는 경찰들은 다른 일을 알아봐야 했고, 어떤 이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참사를 옆에서 목격한 사람도, 참사와 조금이라도 관계돼 있던 사람도 모두가 상처를 공유한다. 참사는 참사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참사 주변의 수많은 이, 나아가 사회 전체에 상처를 남긴다.

▲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김반장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른 후, 박기자(우미화)는 옷을 벗은 김반장(손종학)을 찾아 이후의 일을 회고한다. 김반장 역시 이 사건의 피해자나 다름 없다. 김형사도, 조형사도, 박형사도 당시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됐다. 참사의 피해자는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피해를 보상해주지 않는다.
ⓒ 곽우신
▲ 절규하는 김형사 결국 사건을 매듭짓지 못한 김형사(김원준)가 환청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 뒤로 용의자(이현철)이 김형사를 조롱하고 있다. 이들이 끝까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건, 현장에 있던 형사들의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 곽우신
참사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현장 기자의 바이라인을 달고 멋대로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사 데스크, 면피와 실적을 위해 이유불문하고 현장을 압박하는 윗선. 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찍어누르는 그보다 더 윗선. 피해자는 수두룩한데 정작 그 상처를 쑤신 이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심을 다한 사람들이 오히려 상처를 입었지만, 그 상처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김광림 연출의 프레스콜 현장 답변처럼 참사의 책임은 권력에 있다.

참사는 반복된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던 살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참사가 국어사전의 정의대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면, 이 비참하고 끔찍한 일은 수시로 사회를 할퀴었다. 연쇄살인사건은 이후로도 몇 차례나 더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다리와 백화점, 리조트가 무너졌다. 비행기는 추락했고, 지하철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배가, 수백명의 학생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

▲ 용의자의 얼굴은 하나 왼쪽부터 조형사(김뢰하), 용의자(류태호), 박형사(유연수), 김반장(이대연). 세 번의 용의자 취조에서 각기 다른 성격의 용의자는 모두 한 배우가 연기한다. 실제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같은 얼굴을 하고도 밝힐 수 없는 진실을 효과적으로 상징한다.
ⓒ 곽우신
▲ 결정적 증거 김반장(손종학)과 김형사(김준원), 박형사(김대종)가 증거를 수색하는 장면. 진실의 실마리를 찾은 듯 했던 이 장면에서 고조되었던 분위기는, 이 다음 장면에서 급추락하게 된다. YB는 YB만의 합을 잘 보여준다.
ⓒ 곽우신
뒷수습도 언제나 비슷했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사회는 대단히 반성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다. 대규모의 물량 공세를 선전하며, 참사의 수습과 재발방지를 위해 온힘을 다하는 것처럼 포장한다. 참사 전과 이후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언제나 죽어나가는 건 권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참사의 피해자 중 권력은 없다. 참사를 책임지는 권력이 없는 이유이다. 그렇게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의 모든 참사에서 권력은 그것을 어떻게든 이용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적당히 덮고 무시했다.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권력이 잊는다고 해서, 우리마저 기억에서 지우고 나면 정말로 참사는 역사에서 삭제된다. 권력이 뻔뻔한 얼굴로 지우려 할수록, 우리는 끊임없이 환기하고 기억해야 한다. 비극의 재연을 끊기 위해서라도.

▲ 박기자와 미스김 박기자(이항나)와 미스김(공상아)가 김형사가 남긴 시를 두고 정보를 거래하고 있다. 연극 <날 보러와요>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면 두 여성 캐릭터의 매력이다. 박기자는 조형사와, 미스김은 김형사와 모종의 감정을 지닌 관계가 부각되어 독립적인 인물로 보기 어렵다. 그나마 박기자는 기자로서 진실을 취재하기 보다는 범인을 잡는 데 더 혈안이 된 인물로 극 중간중간 활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미스김의 캐릭터는 존재 이유가 다소 불명확하다.
ⓒ 곽우신
참사를 되새기는 연극 <날 보러와요>가 스테디셀러가 된 것 자체가 또다른 비극일지 모른다. 그만큼 지난 20년 동안 참사를 마주하는 권력의 자세가 바뀌지 않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20주년 기념으로 OB와 YB가 뭉친 이번 공연은 여전히 관객에게,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가해자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 연극을 보러 오라고.

참사를 외면하는 이들에게 이 연극을 추천한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권력은 피해자를 등 떠민다. 그 권력을 향해 "이 자리에 앉아서 저 처참한 현실을 보라"고, "당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라"고 연극은 말한다. <날 보러와요>라는 그 제목만으로도 울림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 연극 <날 보러와요>의 포스터 국립극단의 작품 연극 <날 보러와요>가 지난 1월 2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했다. 20주년을 맞아 OB팀과 YB팀으로 나뉘어 펼쳐지는 이번 공연은 지난 1996년 초연 이후 16번째 관객맞이이다. 한 공연이 오랫동안 관객과 호흡한다는 건, 그만큼의 힘이 내재해 있다는 듯이다. 이 작품은 아직 살아 있고, 그 생명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1일 폐막한다.
ⓒ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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