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어마어마한 미국 복권 1등 당첨금의 비밀

박태서 2016. 2. 1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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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 상금 15억 8천만 달러, 우리 돈 2조 원에 육박했던 미국 복권 '파워볼' 열풍은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웠었죠. 같은 복권인데 파워볼은 국내 로또복권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1등 번호를 맞춘 사람이 안 나오면 한국에선 2회까지 당첨금이 이월되는 데 비해 미국에선 맞춘 사람이 나올 때까지 계속 당첨금이 이월되고, 그에 따라 천문학적 잭팟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파워볼이 아니었어도 국내에서 복권은 남녀노소, 지역, 계층을 가리지 않고 늘 화제였던 것 같습니다. 사는 게 팍팍해졌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국내 복권 판매가 크게 늘었다는 기사가 얼마 전 또 나왔더군요. 사행산업으로서 복권규제를 강화해야 할 지, 반대로 당첨금 이월제한 등 규제를 풀어야 할지 찬반공방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 글이 복권규제 논쟁을 키우기보다, 미약하나마 해법 모색을 위한 재료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미국 복권의 실상입니다.

■ ‘파워볼’ 추첨 시간은 단 2분

미 플로리다 탤러해시에 있는 복권센터를 찾았습니다. 주 복권사업본부가 자리 잡은 곳입니다. 왜 하필 플로리다냐고요? 바로 이곳이 '파워볼' 추첨이 시행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북미지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제일 널리 알려진 복권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가 파워볼(POWERBALL)이고, 또 다른 하나는 메가밀리언(MEGAMILLION)입니다. 둘 다 전국 단위로 판매됩니다. 주 단위로 발행되는 다른 복권들에 비해 시장규모, 당첨금 등이 비교가 안 됩니다.

파워볼 추첨은 탤러해시 복권사업본부 지하에 설치된 스튜디오에서 실시됩니다. 추첨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밤 10시 59분(미 동부시간 기준), 일주일에 두 차례입니다. 미 전역에 생중계됩니다-참고로 메가밀리언은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매주 화·금요일 밤 11시에 추첨합니다- 추첨은 2분이면 끝납니다.

추첨이 실시되는 스튜디오는 추첨장비 등에 대한 엄격한 보안이 눈에 띄더군요. 복권 관계자들이 추첨에 쓰이는 플라스틱 볼(공)을 하나하나 장갑낀 손으로 정성스레 다루는 게 이채로웠습니다. 볼에 미세한 불순물이라도 달라붙게 되면 추첨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외부인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됩니다. 추첨 부정행위나 방송사고에 대비해 스튜디오 주변엔 수십 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CCTV 화면은 미 전역의 각 지역 복권사업본부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됩니다.

제가 파워볼 추첨 스튜디오를 찾은 날은 15억 달러짜리 초대형 잭팟이 나오고 1주일 뒤였습니다. 당시 파워볼 1등 당첨금은 7천5백만 달러였습니다. 현지 관계자는 두 번 연속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파워볼은 1등 당첨자가 나오고 나면 그다음 회차부터 새로 시작합니다. 1등 당첨금은 4천만 달러, 약 5백억 원이 새로 설정됩니다-겨우 두 번 이월됐는데 누적액이 금세 천억 원에 가까워졌다는 얘기입니다.

■ 1등 금액이 커지면 매출은 더 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잭팟 금액이 대략 1억 달러(천2백억 원)를 넘어서면 그때부터 누적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1등 예상 당첨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복권 구매 열기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진다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4천만 달러에서 새로 시작해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 경우 6천만 달러/8천만 달러/1억 달러로 잭팟 예상 금액이 증가한다고 가정해보죠. 이 경우 1억 달러 이후에도 2, 3천만 달러씩 누적액이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1억 5천 달러 /2억 2천 달러/3억 달러....이런 식으로 급속도로 불어난다는 것입니다.

제일 관심을 끈 건 역시 1등 당첨자들에 대한 사연이었습니다. 탤러해시 복권사업본부 정문에 들어서면 우측에 응접실 비슷하게 생긴 방이 있습니다. 고액 당첨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파워볼이나 메가밀리언 2등 이상에 당첨된, 억세게 운 좋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입니다.-1등 잭팟은 액수가 가변적이니까 제외하고, 파워볼과 메가밀리언 두 복권의 2등 당첨금만 해도 백만 달러, 우리 돈 12억 원입니다-대박 난 당첨자들을 위한 특설 공간에는 복권 로고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과 인터뷰실도 마련돼 있습니다. 플로리다주에서 거액복권에 맞은 사람들은 반드시 이곳을 거쳐가야 합니다.

미국 전체에서 세 명이 나온 최근 15억 달러짜리 파워볼 당첨자 가운데 한 명은 플로리다 주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복권사업본부를 취재할 때까지 이 당첨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현지 관계자는 "아마 지금 변호사와 당첨금 수령 이후 계획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세상의 관심이 집중된 시점을 피해 조용해졌다 싶으면 그때 찾아올 것 같다. 지금 등장하면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라고 하더군요.

■ 1등 당첨자 신원을 공개하는 이유

"당첨자가 지금 나타나면 감당하기 힘들다"...바로 이 점이 미국 복권에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당첨자 신원공개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미국에서는 당첨사실을 비밀로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고액당첨자는 신원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입니다.-예외적으로 신원 비공개가 허용되는 주는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다섯 개 주에 불과합니다-따라서 이름, 거주 지역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얼굴도 공개해야 합니다. 언론 인터뷰까지 해야 합니다. 시쳇말로 '잠수타고 싶어도' 안 됩니다. 이 부분이 당첨자 신원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복권사업본부측은 이를 '투명성'(TRANSPARENCY)과 '공정성(FAIRNESS)'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투명성'은 당첨자가 나왔다는 객관적 사실을 확실하게 대내외에 알려야 한다, 그러자면 당첨자 신원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공정성'은 추첨과정의 공명정대, 바꿔말해 복권사업 주체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추첨결과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당첨자신원을 '반드시 까야' 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복권사업 관계자는 복권 당첨자격이 금지됩니다. 당첨자격이 없는 복권사업 관계자가 아닌, 일반 복권구매자 가운데 당첨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당첨자 신원공개가 꼭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복권사업본부 측은 신원공개에는 상업적 목적도 있다고 귀띔해줬습니다. 당첨자 신원을 공개하면 복권판매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로또 복권당첨 비화 등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복권판매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비슷한 맥락이겠네요.

하지만 신원공개는 양날의 칼입니다. 인생역전을 과시하는 영광의 증표가 아닌, 당첨자를 나락에 빠뜨리는 흉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원 공개는 상당수 당첨자들의 비극적 삶과 무관치 않다고 합니다. 실제 복권으로 대박 난 사람들의 불행이 대부분 당첨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시작됐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 복권 당첨 후 강도의 총격에 숨진 크레이고리 버치 주니어

최근 조지아주에서는 50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된 20대가 강도에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강도는 피해자의 복권당첨 사실을 알고 집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피살사건을 다룬 외신기사에는 피해자의 복권 당첨금 수령 당시 사진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실제 고액 당첨자들 상당수는 신원공개에 찜찜해 한다고 합니다. 일부는 못하겠다고 강력하게 저항하기도 한다는데 결국 '신원공개 안 하면 돈 안 준다'는 얘기를 듣고 마지못해 응한다고 합니다.

■ 일시금이 나을까 연금식이 나을까?

당첨금 수령방식은 두 가지 입니다. 일시금과 연금식 분할 수령입니다. 거액 당첨자들은 대부분 일시금으로 찾아간다고 합니다. 이들은 대박의 흥분에 취해 연금식으로 찔끔찔끔 타 쓰는 걸 못 견딘다는 것이지요.

뉴욕타임스가 최근 파워볼 열풍과 관련해 기획기사를 실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될 사람들'을 위한 기사였는데요. "1등에 당첨되면 당첨금은 절대로 일시금으로 받지 마라, 연금식으로 수령하라." 기사는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일시금으로 당첨금을 타가면, 손에 쥔 큰돈으로 갖가지 탐욕을 억제할 수 없고, 결국 파멸로 몰아넣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설명과 함께.

■ 커진 1등 당첨금에 담긴 비화

이번 파워볼 열풍에 감춰진 비화도 있습니다. 파워볼은 지난해 매출부진에 시달렸습니다. 그러자 파워볼 이사회는 지난해 7월 묘수를 꺼내 들었습니다. 전체 당첨확률을 높이면서 잭팟 당첨 확률은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즉 당첨금 4달러, 10달러짜리 같은 하위 등수 당첨은 쉽게 하고, 대신 1등 당첨은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1등 당첨 확률은 1억 7천5백만분의 1에서 2억 9천2백만분의 1로 확 줄어들었습니다. 이 과정에 감독 당국의 반대는 없었습니다. 복권판매가 늘면 조세수입도 증가한다는 측면에서 당첨확률 변경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바뀐 당첨 확률 방식은 지난해 10월 첫째 주부터 적용됐습니다. 영업부진에 고심했던 파워볼측에 이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1등 당첨자가 계속 나오지 않으면서 누적 금액이 이월, 이월, 또 이월됐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대로입니다. 파워볼 광풍은 복권 관련 각종 기록을 죄다 갈아치웠습니다. 1등 당첨자만 돈벼락을 맞은 게 아니었습니다. 파워볼 측도 매출 급증에 환호했습니다.

역시 전국 단위 복권인 메가밀리언도 지난 2013년 당첨확률을 낮춘 직후 재미를 봤습니다. 이번 파워볼 열풍과 똑같았습니다. 당첨확률 조정 이후 1등 당첨자가 상당기간 나오지 않으면서 누적금액이 폭발했고, 급격한 복권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코넬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데이비스 저스트 교수는 KB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권 앞의 인간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당첨 가능성(확률)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1등 잭팟 금액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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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서기자 (tspar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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