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정치하는 '아이들'

입력 2016. 2. 8. 21:46 수정 2016. 2. 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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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9]
20대 총선 나서는 정치인 2세들 셀 수 없이 많지만
‘누구의 아들·딸’로 기억돼 ‘홀로서기’ 쉽지 않아
그래도 여권에는 아버지 명성 뛰어넘은 정치인도
‘대통령의 딸’ 박 대통령이 가장 성공한 사례지만
결국 ‘당선’ 보다 중요한 것은 당선 이후의 ‘행적’

정대철 전 의원과 아들 정호준 의원.
성한용의 막전막후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서울 중구의 정호준 의원은 1971년생입니다. 올해 45세입니다. 한양대 사회학과를 나와 뉴욕대학교에서 그래픽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33세였던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그 뒤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을 지냈습니다. 2012년 19대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최근 정호준 의원과 그의 아버지 정대철 전 의원 얘기가 뉴스가 된 일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위원장이 정호준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려고 했는데 정대철 전 의원이 김종인 위원장에게 강하게 항의해 무산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대철 전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서울 지역구 의원 중에서 고르다보니 정호준 의원으로 정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어쨌든 비서실장직을 수락했던 정호준 의원이 뜻을 번복하면서 소동은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정가의 분위기가 좀 이상했습니다. 정호준 의원을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대철 아들’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시각도 비슷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정호준 의원은 45세의 장년입니다. 이미 4년 동안 의정활동을 한 현직 국회의원입니다. 정호준 의원의 정치적 판단력이 아버지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대철 전 의원의 주장보다는 당사자인 정호준 의원의 설명이 훨씬 더 중요할텐데도 정가나 언론에서는 정대철 전 의원의 말에만 주목했습니다. 정호준 의원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아닌 ‘정대철 아들’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정대철 전 의원은 그동안 당내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며 탈당과 신당창당을 주장해 왔습니다. 친여 성향 언론의 단골 뉴스원이었습니다. 현직 정치인들 못지 않은 주요 취재원 대접을 받았습니다. 결국 동교동계를 대표해 탈당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리고 2월2일 국민의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연설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아들은 아버지와 정치적 행보를 달리했습니다. 정호준 의원은 그동안 탈당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여러차례 반복적으로 “나는 아버지와 생각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국민의당 사람들은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호준 의원이 탈당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가와 언론에서는 정호준 의원을 왜 자꾸 아이처럼 취급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시각’ 또는 ‘눈높이’의 문제입니다. 같은 사물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원통을 세워놓고 위에서 보면 동그라미지만 옆에서 보면 사각형입니다. 정호준이라는 정치인을 정대철 아들로 볼 것인지, 국회의원 정호준으로 볼 것인지는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결정됩니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언론사 간부들은 정호준 의원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호준 의원을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대철 아들’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어쨌든 그런 정대철 전 의원도 오래전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정대철 전 의원은 올해 72세(1944년생)입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습니다. 1977년 서울 종로구·중구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9대 국회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나이 33세였습니다. 그 뒤 10·13·14·16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그의 부친은 정일형 전 의원(1904~1982)이었습니다. 정일형 전 의원은 2대부터 9대까지 내리 8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야당의 거물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견인이었습니다. 또 정대철 전 의원의 모친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조인으로 유명한 이태영 박사(1914~1998)였습니다. 정대철 전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존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정대철 전 의원의 이런 집안 내력과 45세의 정호준 의원이 아직도 아버지에게 주눅들어 있는 현실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아무튼 정대철 전 의원은 정호준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을 맡지 못하게 했습니다. 어찌보면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엇갈린다는 이유로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대를 이어서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부친을 넘어서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국민들은 그를 ‘누구의 아들’이나 ‘누구의 딸’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4·13 선거에도 수많은 정치인의 자식들이 20대 국회 진입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워낙 많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몇 사람만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여당입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아들 김성동 전 의원(62)이 마포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했습니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습니다. 강원 속초·고성·양양에서 삼선에 도전하는 정문헌 의원(50)는 정재철 전 의원의 아들입니다. 부산 금정에서 역시 삼선에 도전하는 김세연 의원(44)은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입니다.

19대 비례대표 이상일 의원(55)은 현재 경기 용인을 당협위원장입니다. 그는 이진연 전 신민당 의원(전남 함평)의 아들입니다. 역시 19대 비례대표로 서울 강동을 당협위원장인 이재영 의원(41)은 권정달-도영심 전 의원 부부의 아들입니다. 도영심 전 의원이 재혼을 했기 때문에 권정달 전 의원과 성이 다릅니다. 도영심 전 의원은 13대 민정당 전국구 의원을 지냈습니다.

여권에는 아버지를 뛰어넘어 성공한 정치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탤런트 출신인 서울 송파병의 김을동 의원(71)은 김두한 전 의원의 딸입니다. 김두한 전 의원이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니, 김을동 의원은 장군의 손녀가 되는 셈입니다. 김을동 의원은 탤런트 송일국씨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충북지사를 지낸 정우택 의원(63)의 선친은 1979년 신민당 파동 때 법원으로부터 총재직무대행에 임명됐던 정운갑 전 의원입니다.

대구에서 ‘진박 후보’와 싸우고 있는 유승민 의원(58)도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김무성 대표(65)도 김용주 전 의원의 아들이네요.

20대 선거에 출마하지는 않지만, 현직 국회의원인 유일호 경제 부총리(61)는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의 아들입니다. 민한당은 전두환 신군부가 만든 ‘관제야당’이었습니다. ‘유치송 총재’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나이가 좀 드셨다고 봐야 합니다. 코미디언 이기동을 아는지 모르는지로 ‘쉰세대’와 ‘신세대’를 구분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시는 분들은 자신이 젊다고 자부하셔도 좋습니다.

계속 하겠습니다. 남경필 경기지사(51)는 남평우 전 의원의 아들입니다. 김종석 여의도연구소장(61)은 유정회 의원을 지낸 김세배 전 의원의 아들입니다. 여당 의원의 자식들 중에 아버지를 능가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혹시 ‘금수저’ 덕분은 아닐까요?

야당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무소속 예비후로로 등록한 김영균 후보(50)는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 아들입니다. 2009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탤런트 장진영씨와 장씨가 숨지기 직전 결혼식을 올려 순애보로 알려졌던 사람입니다.

충복 보은·옥천·영동에서 19대에 이어 또다시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한 예비후보(53)는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의 아들입니다. 서울 서대문을의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지역위원장(49)은 김상현 전 의원의 아들입니다. 정가에는 이용희 김상현 두 전직 의원이 아들 공천 때문에 탈당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서울 마포갑 노웅래 의원(59)은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야당의 2세 정치인 중에 국회부의장 아들이 유난히 많은 것은 왜일까요? 저도 참 궁금합니다.

대를 이어 정치하는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 김홍일, 둘째 아들 김홍업 두 사람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셋째 아들 김홍걸 연세대 객원교수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화제의 인물이 됐습니다. 그런데 김홍걸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동교동계 인사들이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에 대해 무척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김홍걸 교수는 1963년생으로 53세입니다. 고려대 불문과를 나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비판을 할 수는 있어도 그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좀 우스운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57)씨는 끊임없이 정치를 하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짙었기 때문일까요?

박근혜 대통령 얘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대를 이어 정치에 도전해서 가장 크게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결국 대통령이 됐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이 증언했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를 시작했고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것만으로 과연 끝난 것일까요?

“박정희의 딸이 결국 박정희를 망칠 것이다.”

정가의 점쟁이 같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하는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특유의 독선과 무능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까지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이자 ‘저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예언이 틀리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예언이 맞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에서 실패하는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크게 실패하지는 않은’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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