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 없어도 서로 의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설맞이

윤준호|권혜민 기자|기자 2016. 2. 8. 1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합의 후 첫 설날, 오갈데 없어도 마음은 따뜻한 '나눔의 집'..이옥선 할머니 "좋은 사람들이 우리 대신 나서준다"

[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권혜민 기자] [위안부 합의 후 첫 설날, 오갈데 없어도 마음은 따뜻한 '나눔의 집'…이옥선 할머니 "좋은 사람들이 우리 대신 나서준다"]

8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만난 김군자(90) 할머니. 할머니는 1998년부터 18년째 나눔의 집에서 거주중이다./ 사진=권혜민 기자

"갈 데가 어디야. 아무데도 없어"

설 당일인 8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만난 김군자(90) 할머니는 "명절을 맞아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손사래 치며 이 같이 답했다. 할머니는 가족들을 보러 떠난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설을 함께 보낼 가족이 없어 '나눔의집'에 남았다고 한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양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날,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의 아침은 고요했다. 텅빈 거실에선 TV소리만 흘러나왔다. 온 친척들이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왁자지껄 보내는 설날과는 다른 풍경이다.

◇'조용한 설맞이' 나눔의 집 "갈 데가 어디야" =매년 명절, 가족들이 가까운 곳에 사는 '나눔의집' 할머니들은 각자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하지만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사정상 가족과 만날 수 없는 할머니들은 '나눔의집'에 남아 조용히 명절을 지낸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총 9명 할머니 가운데 세 분은 자식들과 명절을 보내러 떠나셨고, 남은 여섯 분 할머니 중 김군자, 이옥선(89) 할머니를 제외한 네 분은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 누워만 계신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김군자 할머니는 열살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한 순경의 수양딸로 지냈다. 이후 순경의 심부름인 줄 알고 떠난 길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해방 후 할머니에게는 '나눔의집'이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1998년부터 18년째 이곳에서 생활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을 '나눔의집'에 남아 보내게 됐다.

이옥선 할머니는 "아들네 가족이 중국에 있어서 못 왔다"며 "설날은 그리 특별할 게 없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5살에 중국 연길로 끌려가 3년 동안 위안부로 갖은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엔 아들 내외와 중국 연길에서 살아오다가 2000년에야 귀국해 '나눔의 집' 식구가 됐다. 할머니는 "아들네 가족이 멀리 사니 매년 설날은 여기 있는 다른 할머니들이랑 같이 보낸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할머니들 기리는 설 차례상=오전 10시. 자원봉사자들이 떡과 과일 등을 부산히 어디론가 옮기기 시작했다. 3층 법당에선 차례상이 차려졌다. '나눔의집'에서 명절 때마다 치르는 연례 행사다. 배, 사과, 곶감, 한과 등이 차려진 차례상에는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5명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스님이 법당 가운데 앉아 돌아가신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기리고,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의 무병장수를 비는 내용을 읊조렸다. 목탁 소리가 법당을 가득 채우는 와중에, 참석자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차례에는 작고하신 할머니의 가족들도 참석해 직접 술잔을 올렸다. 지난해 6월 돌아가신 김외환 할머니의 아들 송순억(63)씨는 "지난해 설날은 경기 용인시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보냈다"며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착잡하지만 혼자보단 여기 계셨던 할머니들과 함께 모시니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조용했던 '나눔의집'은 차례를 마친 후 활기를 띄었다. 할머니들은 자원봉사자, 상주 직원들, 송 할머니의 유족들과 함께 식당에 모여 앉았다. 식당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차례상에 올랐던 음식들을 함께 먹고 새해 건강과 축복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눴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 "우리는 힘 달려, 희망이 없다"=설 당일은 비교적 조용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들을 뵈러 '나눔의 집'을 찾는 발걸음은 상당히 분주했다. 한 관계자는 "정부 부처, 기업 등을 비롯해 개인 봉사단까지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을 찾아 설 전 1주일간 일정이 꽉 찼었다"며 "지난 12월 한일 외교 장관 합의 이후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눔의집' 내부 곳곳에서 방문자들이 할머니들을 응원하며 남겨놓은 메시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니들 마음에 나비가 날아들기를 바랄게요' '할머니들 언제나 꽃으로 남아주세요' '할머니들의 손자입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의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할머니들은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이옥선 할머니는 "일본은 참 듣기 싫은 소리만 한다"며 "우리 (나눔의집) 할머니들은 한국에서 출생해 자란 한국 사람인데,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나눔의 집)에 80살이 안 된 할머니가 없는데 우리끼리는 이제 힘이 달려 희망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좋은 사람들이 우리 대신 나서주고 있다"고 찾아온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윤준호 기자 hiho@, 권혜민 기자 aevin54@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