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원숭이해, 가깝고도 먼 '우리 삶 속 원숭이'

류보람 기자 2016. 2. 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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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서식 않지만 기록·유물 단골손님..'악귀 쫓는 수호신' '인간 닮은 탓' 호기심 비추는 거울..각종 실험 소재로
전북 부안군 원숭이학교에서 한 원숭이가 큰절을 하고 있다.. 2015.12.31/뉴스1 © News1 김대웅 기자

(서울=뉴스1) 류보람 기자 = 병신년인 2016년은 붉은 원숭이해라고들 한다. 십이지를 상징하는 열두 동물 중 '신(申)'에서 근거한 것이다.

원숭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연 서식하지 않는 동물이지만 오래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아 왔다.

안하이갑도.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 News1

◇역사 속 원숭이…액운 쫓는 꾀 많은 짐승

국립민속박물관은 원숭이해를 맞아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원숭이의 상징과 의미를 소개하는 특별전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를 22일까지 연다.

박물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십이지는 신라 이후 죽은 사람의 무덤 둘레돌 등에 새겨져 수호신 역할을 했다.

원숭이의 붉은 얼굴은 액운과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를 상징한다.

백제 시대 기와지붕의 끝부분을 마무리하는 주막새 기와에는 원숭이 얼굴이 그려져 있다. 고려 무신 최우가 창건한 절인 강화 선원사 터에도 원숭이 모양의 잡상이 세워졌다.

원숭이는 꾀가 많아 출세나 관직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회화와 문방구, 도자기 등 생활 문화 곳곳에 출세의 소망을 담은 흔적으로 발견된다.

조선 후기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솔가지를 들고 게 두 마리를 잡으려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원숭이는 벼슬을, 갑각류인 게 두 마리는 소과와 대과에서 좋은 성적(甲)을 얻어 급제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뜻한다.

모성애가 강하기로도 유명하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슬픔이라는 뜻의 표현 '단장(斷腸)'은 새끼 잃은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슬픔에 마디마디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부안 원숭이학교 제공) 2015.12.25/뉴스1

◇인간과 같은 듯 다른, 호기심의 대상

지능지수(IQ) 60~80 정도로 두세 살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로도 첫손에 꼽힌다. 이 때문에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켜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시키는 대상이 되어 왔다.

다음달 1일까지 경기 고양시 호수공원 내 꽃박람회전시장에서는 전북 부안군에 있는 '원숭이학교'의 특별공연이 열린다.

이 공연에 등장하는 15마리 남짓 되는 원숭이들은 어린이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교실에 앉아 교사 역할을 맡은 조련사의 지시에 따른다.

시간표에 따라 원숭이들은 재주를 넘기도 하고, 손가락을 펴서 내밀어 덧셈 문제의 답을 맞힌다. 쓰레기를 집어 휴지통에 넣거나 유아용 장난감 오토바이를 멋드러지게 운전한 뒤 제자리에 세워 보이기도 한다.

관람객은 주로 어린이들이다. 동화에서 의인화된 동물이 그러하듯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원숭이를 보고 어린이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공연을 하는 원숭이들은 프로복서 출신 교장 정비원(56)씨가 2002년 일본 도치기현의 닛코 원숭이 군단에서 들여온 일본원숭이들이다.

형과 함께 이벤트업을 하던 정씨는 일본의 원숭이 단체공연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다는 소식에 직접 건너가 3년간 사육과 조련을 배우고 일부 원숭이들을 들여왔다.

무대에 서는 원숭이들은 너댓살에서 서른 살이 넘은 원숭이까지 다양하다. 어린 원숭이들은 무대에 서기 전까지 훈련을 받지만 훈련이 된 원숭이들은 하루 3번, 한 번에 최대 45분씩 무대에 선다.

공연은 최근 동물보호단체들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예정된 날짜까지 진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처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학교에서 관리 부주의 등으로 우리에 살던 원숭이가 전선을 물어뜯다가 감전사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고, 공연 자체도 동물 학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씨는 "일본에서는 지역마다 자국 원숭이를 훈련시켜 생계 수단이자 동반자로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며 "더구나 원숭이는 유대감이 없으면 오래 같이 지낼 수 없는 동물"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시대가 변하면서 나오는 비판은 반영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상생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애착 실험 영상. (Youtube 영상 갈무리) © News1

◇동시대 사는 인간 비추는 거울

영장류로서 사회성을 가진 원숭이는 거울처럼 인간의 속성을 비추는 각종 실험과 연구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사회심리학과 신경과학 등 많은 학문 분야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실험 대상으로 이용돼 왔다.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놓거나 생활 환경을 엄격히 통제된 실험 변인에 맞추는 등의 실험은 인간을 대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원숭이는 종합적 사고를 하는 뇌 전두엽의 비중이 다른 동물에 비해 높아 상대적으로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새끼 원숭이를 통해 스킨십이 애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밝힌 해리 할로우의 실험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새끼 원숭이를 철사로 만들어졌지만 먹이를 주는 엄마와 헝겊으로 만들어진 엄마가 있는 실험실 안에 넣자 원숭이는 먹이를 먹을 때를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엄마에게 달라붙어 보냈다.

2009년 발간된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사라 맥스웰의 책 '가격차별의 경제학'에 등장하는 원숭이 실험 사례에서는 원숭이들이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라는 사회적 감정을 느낀다는 결과가 입증됐다.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먼저 실험 대상 원숭이들에게 장난감 화폐 사용법을 가르쳤다. 그 뒤 첫 번째 원숭이에게는 장난감 돈을 내지 않고도 달콤한 포도를 주고, 두 번째 원숭이는 돈을 냈는데도 달지 않은 오이를 주었다. 그러자 두 번째 원숭이가 화를 내며 돈과 오이를 내팽개쳤다.

원숭이들을 통해 도출된 연구 결과는 인간의 행동 발달 교육과 조직 관리 연구 등에도 도움을 주었다.

◇미래 의학의 무기…4000마리 규모 센터 건립

충북 오창과학산업단지에는 실험용 영장류만을 따로 기르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가 있다. 2005년 건립된 센터에는 2015년 기준 400여마리의 실험용 원숭이가 살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원숭이와 아프리카 녹색원숭이, 붉은털원숭이 등으로 사람을 대신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각종 질환 모델, 노화 연구 등에 쓰인다.

중국과 인도 등 수출국에서 실험용 원숭이를 무기화하는 추세에 대비해 2017년에는 전북 정읍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건립도 앞두고 있다.

지원센터는 실험용 마카카원숭이 4000마리가 살 수 있는 규모로 자체 번식을 통해 국내 수요를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 멸종위기종…같이 살고 싶다면 '불법'

작은 몸집에 큰 눈망울, 영특한 성질을 가진 원숭이는 오래 전부터 애완 수요도 높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나 길거리에서 버젓이 원숭이를 사고파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러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점차 각국의 야생동물 거래 규제가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역시 원숭이에 대해 개인 밀거래와 애완용 사육을 금지하고 있다.

환경부는 자진신고를 통해 이미 들여온 개체를 몰수해야 하지만 몰수한 동물들을 사육할 시설이 없어 유명무실한 규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르던 원숭이들을 몰래 버리고, 버려진 원숭이들이 부적절한 환경에서 떠돌다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는 부산 사하구의 한 시장에서 난데없이 멸종위기종 슬로로리스 원숭이 3마리가 발견된 바 있다.

김영환 동물자유연대 선임간사는 "자진신고하지 않은 원숭이가 개체 수가 전국에 수백 마리는 될 것"이라며 "법령은 마련됐지만 시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pad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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