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설특집] SW인터뷰③ 양동현 "잊혀진 천재?.. 이젠 소통하는 남자"

권영준 입력 2016. 2.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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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내가 왜 천재인가요.(웃음) 팬들과 소통하는 선수이고 싶어요.”

화려한 10대를 보냈다. 고교무대를 평정한 그는 2002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젝트’ 1기에 뽑혀 프랑스 FC메스에서 활약했다. 2년 뒤 스페인 바야돌리드 유스팀에 입단했다. 연령대별 대표팀에서도 최고의 최전방 공격수였다. 그러나 불운이 겹쳤다. 비야돌리드 성인팀 입단 계약서에 도장 찍기 직전 부상으로 무산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대회 직전 발목을 다쳤다. 두 차례 좌절 이후 그는 ‘잊혀진 천재’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다. 그런데 2013년 경찰청 군복무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축구의 간절함이 생겼다. 울산→부산→울산을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포항에 입단한 양동현(30)의 이야기다. 그와 포항 전지훈련지인 태국 부리람에서 스포츠월드와 만나 털어놓은 이야기를 설 연휴 특집으로 소개한다. ①양동현 “동해안 사나이?… 포항서 은퇴할 것” ②‘ST 무덤’에 선 양동현 “도전의식 샘 솟아” ③양동현 “잊혀진 천재?… 이젠 소통하는 남자”

양동현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가 ‘잊혀진 천재’다.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내가 왜 천재라고 불리는지 모르겠다. 예전 일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내 축구 인생의 고비가 두 번 있었다”고 소개했다.

우선 그는 “첫 번째는 아시다시피 스페인 진출 목전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허벅지가 너무 아팠다. 그런데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곳 병원에서 사타구니 미세 골절 진단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9개월 정도 허비하며 계약도 날아갔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2008 베이징올림픽이다. 그는 “당시 몸이 너무 좋았다. 경기도 잘 풀렸고, 올림픽이 내 축구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믿었다”며 “그런데 발목이 골절됐다. 기를 쓰고 치료와 재활을 하고 대표팀에 복귀했는데, 내 자리가 없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두 번의 아픔에 축구를 포기할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군 입대였다. 그는 “정말 다 포기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극복했나 싶다. 군입대 전까지 그냥 축구가 싫었다. 비전도 없었다. 경기장에 나와도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다“면서도 “입대 후 염기훈, 배기종과 군복무를 하면서 ‘아! 팬이 없으면 나도 없구나’ ‘축구가 얼마나 소중한가’ 새삼 깨달았다”고 미소지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을 시작해 팬들과 소통한다고 말했다. 양동현은 “지난 시즌 울산 유니폼을 입고 포항전에서 도발 세리머니를 한 적이 있다. 진짜 인생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포항 팬을 도발했는데, 내가 포항 선수가 됐다”고 껄껄 웃으며 “원래 페이스북을 하지 않고 계정만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 팬들에 메시지를 많이 보내 주신다. 거기에 포항 팬도 계시는데 ‘포항이랑 할 때처럼 울산전에서도 똑같이 세리머니를 해달라’고 하시더라.(웃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을 들었다. 보기만 하다가 답변을 드리니깐 팬들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 반색했다. 그러면서 그는 “(팬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서 아쉽다. 천재라는 수식어보다는 팬들과 함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눈빛을 번뜩였다.

young0708@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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