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로 읽는 정치적 무의식

임지영 기자 2016. 2. 7.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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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자칭 ‘대중적이지 않은 대중문화 비평가’다. 단지 겸손의 말은 아니다. 현재 대중문화 비평의 주류는 이른바 ‘오타쿠 비평’이다. 하나의 작품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가 보기에 이렇게 작품 자체에만 몰입할 경우 그걸 통해 우리가 어떤 새로운 인식을 얻어낼 수 있는지 놓치기 쉽다. 수용자나 작품 자체에 대한 비판 역시 어려워진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계보를 꿰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정치적 무의식에 관심이 많다. 그런 생각을 담아 얼마 전 <덕후감>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전형적인 ‘문화과학 키드’다. ‘문화의 시대’인 1990년대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대중문화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되, 거기서 정치경제적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끄집어내려는 태도’가 그를 지배한다는 의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문학보다 대중문화에 관심이 갔다. 소비문화에 친숙했던 세대인 데다가 1세대 문화연구자인 강내희 교수를 만나면서 문학 연구의 대상이 문학 작품으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평적 작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때였다. 문화의 의미가 텍스트에만 있지 않고 독자·관객 등의 해석 행위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관심이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 사람으로 옮아갔다.

'한 사회에 모순이 있고 그걸 쉽사리 해결할 수 없을 때 대중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그 모순을 상상적·상징적으로라도 해결하려 하는데, 이때 정치적 무의식이 동원된다.' 그가 대중문화에서 정치적 무의식을 읽어내려는 이유다. 이번 책에서도 소녀 팬덤 현상이 전통적인 성적(性的) 구도에 내포된 권력관계를 어떻게 전복했는지 읽어낸다. <공각기동대>와 <어벤져스>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제를 밝히고 <무한도전>이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의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 따지면서도, 그걸 수용하는 대중이 정치적 순진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시사IN 윤무영 :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최근 <덕후감>이라는 책을 냈다.

수년째 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는 문화사회연구소의 소장 자리를 맡은 지는 1년여. 그는 연구자의 정체성이 강한 편이다. 연구소는 문화연대의 병설 기관으로,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하거나 비판하는 전문 연구기관이다. 문화 담론을 이론적으로 축적하기도 하고 새로운 연구 인력을 모아 세미나를 하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그는 공부의 시작점을 허물었다. ‘그간 문화 연구가 교양 있고 비판적인 대중에게 행복을 약속해주는 좌파 담론이자 정치적 태도였지만, 그런 식의 행복이 독자 대중에게 자기 위안과 기만을 제공하는 헛짓이라는 걸 알면서’부터다. 대중이라는 존재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 회의가 들었다.

‘대중’이라면 뭐든지 긍정적으로 해석하더라?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건 과학적인 자세보다는 종교적인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문화 연구에도 일찌감치 그런 기조가 있었다. 예컨대 ‘하위문화’ 연구의 영역에서 청소년들이 수업시간에 모자를 쓰고 들어오면 그 모자가 강의실 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권위적 관계를 조롱하는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과잉 의미화’다. 대중이 하면 뭐든지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문화 연구가 부추긴 대중주의적 신화에 염증을 느꼈다.

최근엔 오타쿠 문화 내지는 하위문화에 대한 진지한 비평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10~20대 초반에게 대중문화의 형식은 웹툰, 라이트 노벨, 애니메이션, 게임이다. 앞서 말했듯이 거리두기 없이 콘텐츠를 ‘과몰입’해 수용하게 되는 게 우려스럽다. ‘덕후감’을 브랜드화해서 하위문화 텍스트 연구집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연구소장으로서는 독립연구 생산자들의 대안적인 네트워크 형태도 고민 중이다. 최근 몰두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연구 테마는 ‘사회적인 것’. 마을 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등에 관한 내용이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가지를 뻗듯 이어진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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