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찾기의 범람, <응답하라> 이후 드라마들의 전략

이정희 2016. 2. 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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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고요? 어차피 정해지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글:이정희, 편집:곽우신]

<응답하라 1988>(아래 <응팔>)의 남편 찾기 전략은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소소한 우정, 가족애 에피소드로 화력이 달리던 드라마에 '남편 찾기'란 노이즈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일찌감치 등장했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정환)'란 신조어가 무색하게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접전'은 그저 드라마 속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정환과 택의 신경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못내 이룬 사랑을 자신보다 더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배우가 말할 만큼, 시청자의 대리전은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응팔>은 애청자를 배반한 최악의 드라마로 기억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초지일관 뚝심 있는 주제 의식을 가진 드라마가 되었다.

그 드라마가 종영이 되고 나서도 가라앉지 않는 <응팔>의 열기는 다른 드라마의 남편감조차 흐트러뜨리는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하고 나면, 어쭙잖게 복고적 분위기를 따라 한 드라마가 우후죽순 등장하는 '<응답하라> 낙수 효과'와도 같다. 즉, <응팔>의 전략을 따라 하면 '중간'은 가겠다는 안이한 제작 방식이, 복고 전략에 뒤를 이어 드라마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과도 같은 사랑 찾기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응답하라 1988>도 남편 찾기 전략을 잘 활용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다른 드라마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 tvN
<응팔>을 연출한 신원호 PD는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출연한 이경규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예능 PD'라 재확인했다. 그의 예능 피디 커밍아웃이 어색하지 않게 <응팔>이란 드라마는 예능적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이다.

기존 드라마에선 볼 수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면 등장하는 '매에에~'하는 양 울음소리 효과음부터 그랬다. 거의 두 시간에 육박하는 방영 시간을 채우는 상당 부분의 이야기들이 '에피소드' 중심의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시트콤'과 같은 내용도 한몫했다. 거기에 무엇보다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남편 찾기'에 둔 마치 한 편의 게임 관전과도 같은 전반적인 드라마의 구조. 이는 여느 드라마와 차별성을 가진다. 그래서 한 편의 상영시간이 거의 두 편의 미니 시리즈를 방영하는 런닝 타임에 버금가지만, <응팔>을 보다보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응팔>은 앞선 <응사>나 <응칠>보다 더 노회한 '남편 찾기' 전략이 등장했다. 이미 전작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어남류'란 신조어를 만들며 그간 제작진이 했던 방식을 간파하자, 드라마는 '어남류'로 낚으며, 그 아래 '어남택'의 복선을 깔면서 시청자를 희롱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정환에게 맞추어져 있지만, 그 카메라가 포커스 아웃된 곳에서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의 반응 혹은 제작진의 의향에 따라, 정환과 택이 두 사람 중 그 누구라도 '남편'이 될 수 있는 '사전 포석'이 된다. 만약에 정환이 남편이 된다면 역시나 <응답하라>의 전통에 따랐다고 할 것이요, 택이가 남편이 되었다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사전에 깔아놓았던 복선을 들먹이며 이것을 몰랐느냐며 시청자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시청자들은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 남편이 누구였는가를 추적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정확한 의견은, 바로 어차피 남편감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것, 시청자를 낚기 위해 철저하게 밑밥을 깔아두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한 밑밥 덕분에 덕선은 '금사빠'가 되었다가, 모성이 충만한 택이 바라기가 됐다. 이중적 캐릭터로 등장한 셈이다. 덕분에 마지막에 가서 덕선의 마음을 한껏 드러내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정해지지 않은 남편감 때문에 '덕선'은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언제나 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이를 그 시절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투명하게 생각하는 십 대 소녀의 캐릭터로 대체하기엔 미흡했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기에도 부족한 캐릭터가 되었다. 아직 '자아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설명하기에는 해프닝을 넘어선 '내면'의 묘사가 부족했다.

이런 미흡한 덕선의 마음은 '남편 찾기'의 불을 붙이는 데 충분한 불쏘시개가 된다. 그리고 이리저리 자신의 마음조차 모른 채 휘둘리는 덕선을 따라, 시청자들은 남편 찾기를 하느라 눈이 벌게진다. 덕선은 게임 속 보물을 찾아가는 캐릭터처럼, 시청자를 대신해 남편이란 보물을 찾는 여정을 떠난 존재일 뿐이다. 그러기에 <응팔>이 1988년 당시의 골목 공동체를 매개로 여전히 소중한 우정과 가족의 의미를 소박하게 그려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 방식에 있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쉬이 가라앉힐 수 없게 만든다.

<응팔> 전략의 벤치마킹 <치즈인더트랩>

 <치즈인더트랩>은 원작과 다른 질감의 작품이다.
ⓒ tvN
하지만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배우들의 인터뷰 토씨 한 자를 가지고 여전히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하는 설전은 이후에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들에 있어서는 한없이 부러운 전략이다. 그러니 당연히 따라 할 수밖에.

1월 4일부터 방영되는 tvN의 <치즈인더트랩>은 순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캠퍼스 연애물이다. 원작인 웹툰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유정 선배와 거기에 쥐덫에 걸린 쥐처럼 사랑의 노예가 된 홍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풀어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걸출한 이윤정 PD에 의해 작품화된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은 이윤정의 장기인 전형적인 청춘 연애물로 재탄생했다. 물론 웹툰이 드라마가 되는 과정에 '각색'을 거치고 원작과 다른 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인 운명이다. 연애물이 융성한 드라마계이기에, 그래서 심리물이 연애물로 탈바꿈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달라진 질감이 원작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조차 훼손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원작은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지닌 유정 선배와 홍설의 에피소드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된 <치즈인더트랩>은 <응팔>처럼 팽팽한 남녀 관계를 대두시킨다. 원작에서 그저 주요한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백인호(서강준 분)가 유정(박해진 분)과 홍설(김고은 분) 사이에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백인호는 로맨틱 물의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로 홍설이 어려울 때면 나타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홍설을 돕는 홍설 바라기 인물로 설정된다. 문제는 이렇게 백인호가 홍설 바라기로 그려지는 동안, 찬사를 받았던 유정이란 존재가 희석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은 원작의 '심리적 질감'을 고스란히 반영한 유정이란 존재가 미미해 지면서, 그저 재벌남과 가난한 피아노 천재 사이에 낀 대학생 홍설의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홍설 역시 그 캐릭터의 진실성 대신, 점점 이 남자는 이래서 좋고, 저 남자는 저래서 좋은 어장관리녀가 된다.

<한번 더 해피엔딩>이 내세운 노선

 <한번 더 해피엔딩> 역시 <응팔>의 전략을 차용한 듯 보인다.
ⓒ MBC
이렇게 대놓고 두 남자를 내세운 전략을 드러내는 것은 <치즈인더트랩>만이 아니다. 지난 1월 20일 시작한 MBC의 새 로맨틱 코미디 <한번 더 해피엔딩> 역시 다짜고짜 첫 회부터 송수혁(정경호 분)과 한미모(장나라 분)의 결혼식 해프닝을 벌이는가 싶더니, 다음 회에선 상황을 확 뒤집어 한미모를 구해준(권율 분)에 빠진 금사빠로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이제 드라마는 한미모를 놓고, 일찍이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가꿔 온 두 싱글남의 팽팽한 싸움을 예고한다.

이 드라마 역시 '우정이냐, 사랑이냐' 전략을 놓치지 않을 기세다. 드라마는 한 회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한미모를 청순한 여자라고 칭하며 금사빠를 거뜬히 받아넘긴 구해준에 집중하는가 하면, 또 한 회는 그런 구해준의 거침없는 행보에 속앓이를 하면서 속정깊게 한미모를 챙기는 송수혁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청자는 한 회에는 송수혁이 괜찮았다가, 또 다른 한 회에는 구해준에게 마음이 쏠린다. 한미모 역시 다르지 않다. 아예 <한번 더 해피엔딩>은 시트콤처럼 두 남자와의 갖가지 해프닝으로 드라마를 채운다.

<응팔>에서 전염되기 시작한 '남편 찾기' 혹은 '사랑 찾기' 전략은, 리모컨을 쥔 시청자를 철저하게 위하는 '고객 만족 서비스'이다. 이전에는 잘 생기고 멋진 남자를 두고, 순정파의 여주인공과 악녀 조역과의 피 말리는 '사랑과 전쟁'에 집중하던 TV였다.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층의 욕구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이러면 이래서 잘 나고 저러면 저래서 좋은 떡 두 개를 양손에 쥐여준다. '어남류'니 '어남택'이니 싸우지만, 쌍문동 골목길의 공부도 못하고, 미래도 불투명했던 덕선이가 잘 나가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공군 파일럿이과 당대 최고의 바둑 기사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체가 판타지의 끝판왕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다. 사이코패스 같지만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순정파인 재벌집 자제랑 가난하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자신 바라기인 두 남자. 비록 아들은 딸렸지만 자상하면서도 능력 있는 기자랑 뭇 여인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역시나 마음마저 따뜻한 잘생긴 의사. 그 나열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구도이다. 사실은 누가 된들 동화 같은 판타지이지만, 게임을 시작한 순간 쉬이 로그오프를 할 수 없는 게이머처럼, 시청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남편감을 향해 치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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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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