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정은, 지난해 간부 60명 처형

배용진 주간조선 기자 입력 2016. 2. 7. 16:31 수정 2016. 2. 7. 17: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수소폭탄’ 실험으로 한반도를 충격에 빠뜨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해 한 해 동안 60명이 넘는 간부를 처형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관계 당국 문서에 따르면, 올해로 집권 5년차를 맞은 김정은은 집권 4년 동안 140명 가까운 간부를 처형했다. 처형하지 않은 인원까지 합치면 전체 숙청 인원은 200명을 넘는다. 김정은이 처형한 간부 숫자는 노동당 부부장급 이상, 인민군 소장급 이상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김정은이 처형하는 당과 군 간부의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처음 김정은이 전면에 나선 2012년에는 최고위급 간부 3명만 처형했지만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30여명과 40여명을 처형했다. 지난해에는 60명 이상의 간부를 처형했다. 김정은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2013년 12월 숙청)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2015년 4월 숙청) 등 최고위급만이 아니라 당·정·군 중간간부와 예술인까지, 지위의 고하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사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은식 ‘공포 통치’에는 잔혹한 처형 방식이 한 축을 담당한다. 간첩 혐의로 지난해 3월 체포된 전 은하수관현악단 총감독의 경우 김정은이 직접 “이 땅에 묻힐 자리도 없이 없애치우라. 짐승처럼 죽이라”고 지시해 문화성 간부들이 권총으로 머리를 먼저 쏜 후 총신이 4개인 14.5mm 고사총으로 시신의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난사하는 방식으로 처형됐다. 특히 반역 혐의로 붙잡힌 숙청 대상자의 경우 가족까지 대거 참관시킨 후 “반역자는 이 땅에 묻힐 곳이 없다”면서 고사총으로 난사한 후 화염방사기로 흔적까지 제거해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김정은식 처형’ 방식이다.

◇“짐승처럼 죽이라”

김정은의 호전적인 평소 언동도 ‘공포 통치’의 한 축(軸)이다. “미제와 반드시 치르게 될 앞으로의 싸움에서 미제의 성조기와 추종세력들의 깃발을 걸레짝처럼 만들어야 한다”(2015년 2월), “전군이 미국놈들의 피를 빨아내기 위한 복수심으로 부글부글 끓게 할 것”(2014년 7월), “명령만 내리면 적들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 넣을 것. 적들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명줄을 완전히 끊어 놓을 것”(2013년3월) 등 북한이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을 통해 공개하는 김정은의 언행은 그의 난폭하고 공격적인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당과 군 고위직 간부들 사이에는 보신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북측 간부들의 전언이다. “고위 간부들은 언제 숙청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면서 속으로는 각자 자기 살 생각만 하고 있다” “간부 되면 총에 맞아 죽는다며 고위직 승진을 기피하고, 김정은에 대한 반감도 형성되고 있다”는 등 고위직 간부들 사이에서는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이처럼 호전적이고 잔혹한 리더십을 갖게 된 데에는 그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이 주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변덕과 감정기복이 심해 정책 결정과 간부의 인사·처벌 등이 본인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일선 군 지휘관을 현장에서 승진·강등 조치하거나 심야에 현장을 불시 방문해 야간훈련 등을 지시하는 등 기분 내키는 대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행동이 대표 사례다. 한 북한군 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해 7월 술자리에서 자신이 최근 강등시킨 군 장성을 보고 술에 취해 “아직도 그 계급이냐”며 바로 복권시켰다. 지난해 5월에는 ‘대동강자라공장’을 방문한 직후 경영 성과 부진을 이유로 공장 지배인과 당 비서를 총살하기도 했다.

이렇듯 김정은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과시하는 이유는 ‘자신의 배짱과 대범함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갑자기 권력을 승계했고, 정치 경험이 일천하며 나이가 어려 통치 역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주위 시선에 맞서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해 3월 비행기를 직접 조종했고 목선을 타고 섬 부대를 현지시찰하는 등 젊은 지도자로서의 패기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자주 했다. 한·미 군사훈련 기간이던 2014년 4월 영공을 모두 개방하고 ‘비행사대회’를 소집한 것을 ‘배짱·담력·기개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한 것도 김정은의 이러한 성향을 보여준다.

◇전자피아노 치며 노래

이런 안하무인적 성향은 성장배경에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어릴 때부터 왕자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고, 경쟁 없이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떼쓰면 뭐든지 된다’는 것이 김정은의 심리에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 유학 시절인 2001년 5월에는 여동생 김여정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를 녹화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김여정이 깜빡 잊어 경기를 놓치자 욕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이듬해 7월에는 자신이 도착한 유럽의 한 공항에 영접 나온 사람이 없자 “이 개자식들이 다 어디 갔어? 모조리 모가지를 떼버리겠다”며 험악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스위스 베른 유학 시절 주위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단체로 캠핑을 갔으나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중도 귀가할 만큼 인내심이 부족하고, 친구를 때리는 등 폭력성도 노출했다는 것이다. 스위스 일간지 ‘르 탕(Le Temps)’의 2011년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학창 시절 주변 동료들에게 침을 뱉고 정강이를 차는 등 폭력적 행동을 한 적이 있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농구와 승마, 스키 등 운동을 좋아하는데, 운동 경기를 할 때에는 자신이 리더가 되어 상대방을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렸고 지는 경우 패인 분석에 몰두하는 등 승부에 집착한다는 주변 증언도 있었다.

한편 김정은은 감성적 기질이 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기분이 좋으면 전자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미술에도 어느 정도 소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학 시절 성적도 대부분의 과목에서 중·하위급이었지만 유독 음악과 미술, 체육 과목만큼은 반에서 순위권 안에 들었다.

장용석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성격의 김정은을 ‘농구감독’에 비유했다. 한번 믿고 기용한 관료를 죽을 때까지 쓰던 ‘영화감독’ 스타일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매 순간마다 선수를 교체하는 즉흥적 성격의 감독이라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가신들과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겪지 못한 김정은은 일반적 상식과는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자신의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전체 사회를 격동시켜 동원하는 ‘김정은식 셈법’이 이번 4차 핵실험을 통해 증명된 만큼, 2016년에도 한반도에 우려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김정은의 성격 패턴은 즉흥, 돌출, 파격의 3대 특징을 갖는데 과거 장성택·현영철과 같은 브레이크가 없어졌다는 점이 김정은을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릴 가장 큰 위협요소로 만들고 있다”며 “오는 5월 7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김정은이 공포정치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간부들의 처형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