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의 노예 아냐" 자신하던 셰프의 자살..'스타 셰프'의 그늘

입력 2016. 2. 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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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평가 받는 스트레스에 나약함 허용 않는 남성적 주방문화"

"끊임없이 평가 받는 스트레스에 나약함 허용 않는 남성적 주방문화"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스위스 로잔에서 미슐랭 별 3개짜리 식당 '오텔 드 빌'을 운영하던 유명 셰프 브누아 비올리에(44)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자신의 집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여러 정황상 사고사나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자살에 무게를 실었다.

그가 숨진 날은 지난해말 프랑스 외교부 등이 선정한 세계 1천 개 레스토랑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해 '세계 최고 셰프'의 타이틀을 얻은 지 한달 여 되던 날, 그리고 자신에게 최고 등급을 안겨준 미슐랭 가이드의 새 평점 발표 하루 전날이었다.

20년 경력의 프랑스 출신 셰프 비올리에를 자살로까지 몰고 간 동기는 분명치 않다.

그가 최근 스승격인 셰프 필리프 로샤와 아버지를 잇따라 잃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지만 유언도, 유서가 없는 탓에 확인할 수는 없다.

동기가 어떻든 세계 정상급 셰프의 갑작스러운 자살은 끊임 없이 타인에 의해 평가되고 등급 매겨지는 요식업계의 숙명이나 '나약함'을 허용하지 않는 '마초'적인 주방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비올리에가 숨지기 불과 3일 전에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과 한 인터뷰에서는 그가 자신의 성공에 대해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지난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비올리에는 "고객들이 다시 찾아주느냐의 문제"라며 자신의 성공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TV 쇼 탓에 젊은이들이 세 달 안에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탄하며 "난 등급이나 미슐랭 스타의 노예가 아니다. 음식으로 말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비올리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레스토랑 평가·안내서인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의 최고 등급을 받은, 전세계 약 100개뿐인 레스토랑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식당의 웹사이트에서 그 사실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지난해말 세계 최고 셰프에 올랐을 때도 AFP통신이 그 사실을 알려줄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며, 시상식에 가는 대신 새 메뉴를 개발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등급과 평가에 초연했던 그였지만, 그 당당함의 이면엔 말 못할 극심한 스트레스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과거 비올리에의 발언은 인용하며, 그가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믿는 완벽주의자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음식 비평가 윌리엄 시트웰은 "훌륭한 셰프는 모두 훌륭하고 맛 좋은 음식을 만들고 싶어한다"며 "그러나 '미슐랭 스타 셰프'라는 수식어가 붙은 후에는 완벽을 향한 여정이 위험한 강박으로 변해버린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톱셰프의 심사위원인 휴 애치슨은 버즈피드 뉴스에 "요식업계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고, 우린 끊임없이 현미경 아래 놓여있다"며 "사람들이 셰프나 식당에 대해 평가할 때 그들이 한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충을 쉽사리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주방의 문화도 마음의 병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셰프들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져온 음식 전문 작가 캣 킨스먼은 버즈피드에 많은 주방 노동자들이 우울과 불안, 약물 남용 문제를 겪고 있다며 "나약함을 허용하지 않는 매우 마초적인 문화"를 그 배경으로 꼽기도 했다.

유명 셰프가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미슐랭 별 3개 식당 코트도르를 운영하던 베르나르 루아소는 지난 2003년 52세의 나이에 자살을 택했다.

레스토랑 평가서인 고에미요가 코트도르의 등급을 하향한 데 이어, 미슐랭이 별 3개에서 2개로 강등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던 상황이었다.

비올리에가 세상을 떠난 지 하루 뒤인 지난 1일 미슐랭 가이드는 올해 판 가이드를 새로 발표했다. 비올리에의 식당은 별 3개를 유지했으나, 루아소의 식당은 25년 만에 별 2개로 내려앉았다.

루아소의 부인인 도미니크 루아소는 르몽드에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며 "다시 별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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