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갑지 않은 설날, 괴물이 된 가족

한예섭 2016. 2. 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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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마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비겁해지는 '나'

[오마이뉴스 글:한예섭, 편집:박정훈]

 심슨의 부부싸움 장면
ⓒ the simpsons
이맘때쯤이면 항상 그렇다. 다가오는 설이 달갑지 않다. 다 커서도 받는 세뱃돈이 무색하게도 기대보단 불안이 크다. 오래된 경험들이 불안을 부추기는 탓이다. 아빠의 고함이나 엄마의 한숨이 익숙하게 떠오른다. 유년의 언젠가부터 바로 작년까지 매년 그랬다. 명절 음식 앞에서 만두 대신 불꽃을 튀겨대는 광경이란, 척 보기에도 유쾌한 장면은 아니다.

불꽃은 언제나 사소했다. 갈비찜이 짜다든지 명태전이 눅눅하다든지 뭐 그런 거. 안방에서 TV나 보고 계시던 우리 집 남정네들은 음식 앞에서 항상 일류 미식가가 됐고 피로에 찌든 엄마에게 젓가락 딱딱거리는 그 예의 없는 품평은 아무리 봐도 폭력이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고 했나. 갈비찜 공격에 엄마가 짜증이라도 낼라치면 불길은 더 크게 번질 뿐이었다.

음식에서 주부의 미덕으로, 또 거기서 자식 교육으로, 종국엔 "당신 때문에 아들 망쳤다"는 고함과 함께 형에 대한 인생비판으로. 순식간에 '망한 인생'이 된 형은 있는 힘껏 얼굴을 찌푸린다.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의 유일 책임자로 내몰린 엄마는 말하기도 지쳐 입을 다문다. '인서울 4년제 대학'에 들어간 상으로 아무 공격도 받지 않은 나도 몇 마디 늘어놓다가 곧 묵묵히 갈비찜을 입에 넣는다.

가부장제 성차별은 물론 학벌주의, 청년취업난, 언어폭력 등등. 몇 가지 문제가 겹쳐있는지 헤아리기도 힘든 이 밥상 위의 불꽃은 언제나 비슷한 결말을 맞는다. 식사 끝, 헤쳐모여. 남자들은 이 방 저 방 TV를 보러 흩어지고 엄마, 숙모는 고무장갑을 손에 잡는다. 설거지 소리가 달그락 달그락.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소음이다. "내가 할게요" 비겁한 '인서울 4년제'가 한 마디. 거기에 엄마는 항상 "됐어"라고 답한다. 여담인데, 놀랍게도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도 아니다.

그러고 나면 짐짓 과일이나 가져오라 배짱부리는 우리의 가부장도, 그런 아빠를 저주하는 '망한 인생'도, 설거지하며 화를 삭이는 엄마도, 죄책감을 자기 위로 삼는 방관자도 시골집이 달갑지가 않다. 아름답기 짝이 없는 민족 대명절, 그렇게 설마다 가족은 괴물이 된다. 다음 날 아침이면 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꿰매겠지만, 거기에 쓸 마취약도 없기에 다들 이렇게 생각할 거다. '집에 가고 싶다'

어쩌면 설은 '가족'이 짊어진 갖가지 모순들이 서로를 뽐내는 경연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스펙터클 한 것이 대명절이라면 대명절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경연보단 모순 자체다. 그러니까 본질적인 문제는 일 년 중 2, 3일 남짓한 이 대명절보단 지금껏 지내온 1년에 있다. 그렇게 1년, 또 1년을 보내다 보니 청소년 방관자는 이렇게 커서 청년이 됐다.

여전히 무력하고 비겁한 나

 명절 불화 이유
ⓒ KBS 뉴스 갈무리
그런데 이 청년의 위치란 것이 참으로 애매하다. 생각에 그는 언제나 시골집의 피해자였겠지만, 어느 면에서 그는 또 강력한 수혜자였다. 공부 좀 하고 남자인 것은 그에게 생각보다 많은 이점을 준다. 그럭저럭 인생도 챙겼겠다, 설거지할 필요도 없겠다, 게다가 '이건 좀 부조리해!' 속으로 외치고 방에 틀어박힐 비겁함까지 갖추었으니. 경연에서 매번 살아남은 그는 정말이지 훌륭하게 시골집에 기생해 왔다.

'세상을 조롱해봐야 막상 생활을 리드하는 힘이 없다'고 이상이 그랬었나. 피해자로서 청년은 리드할 힘이 없어 비겁했지만, 수혜자로서 청년은 사실 리드할 의욕조차 가질 필요가 없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가족이란 이름 아래 동여맨 상처들을 외면해왔다. 조금 입 다물고 있으면 다시 하하 호호, 화목한 가족이 될 거야. 피곤한 싸움과 적당한 회복 앞에서 크고 작은 반항은 항상 어느 순간 사그라졌다.

다소 괘씸한 생각이지만, 간혹 가족 내 나의 모습이 사회 속의 내 또래들과 겹쳐 보인다. 거대한 불의와 작은 보상 사이에서 다른 많은 친구들도 숨죽여 온 것은 아닐까. 도서관에 가거나, 직장에 출근하면서... 물론 그쪽이 훨씬 더 무게감은 크다. 나에게는 '피로'의 문제지만,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일 테니까.

설이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이렇다. 쓸데없이 감상적이다. 이젠 제법 싫은 소리 몇 마디 꺼내놓는 청년은 그러나 여전히 무력하고 또 비겁하다. 이번 1년도 어영부영, 눈 떠 보니 또 경연을 앞뒀다. 올해는 고무장갑 하나는 빼앗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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