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7개월 전 도축한 냉동 한우..30만 원 짜리 '명품 선물세트' 둔갑

송인호 기자 2016. 2. 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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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만 원짜리 '명품 한우선물세트'…열어보니 꽁꽁 언 냉동육

직장인 김모 씨는 설 명절을 앞둔 지난 4일 명품 한우 선물세트를 받았습니다. 지인이 감사의 표시로 보낸건데, 600g짜리 세 팩의 가격이 무려 29만9천원이나 하는 명품 횡성한우선물세트였습니다. 김씨는 가족들과 바로 구워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스티로폼 상자를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고기가 모두 꽁꽁 얼어있는 상태, 즉 냉동육이었던 겁니다. 김씨는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선물이라지만 얼어있는 한우를 보냈다는 사실에 납득이 안갔던 겁니다. 김씨는 실례를 무릅쓰고 지인에게 냉동육을 보냈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지인은 냉장육을 보냈다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 대기업 온라인 쇼핑몰 들어가보니…냉동육을 냉장육인 것처럼 광고

김씨는 해당 선물세트가 팔리고 있는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몰을 직접 들어가봤습니다. 해당 상품을 검색한 결과 세 팩에 총 1.8kg, 가격 29만9천원 짜리가 맞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이트를 뒤져봐도 냉동육이란 문구가 없었습니다. 대신 업진살과 치마살, 부채살 등 특수부위 사진들이 냉장육 상태로 먹음직스럽게 광고돼 있었습니다.

김씨는 내친김에 언제 도축된 것인지 정부가 운영하는 이력추적사이트(www.mtrace.go.kr)에서 확인해봤습니다. 한우의 경우 포장지에 표시된 이력번호를 이 사이트에 입력하면 도축날짜, 도축자, 질병 예방접종 유무 등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600g들이 세 팩 가운데 부채살과 차돌박이는 지난달 4일에, 가장 비싼 업진살은 무려 7개월 전인 지난해 7월 도축된 것이었습니다. 7개월 전에 잡아 냉동시킨 고기가 명품 한우고기로 그럴 듯하게 포장돼 김씨에게 배달된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한 두 푼짜리도 아니고 100g에 1만6천원이나 하는 한우를 꽁꽁 언 상태로, 그것도 7개월 전에 잡은 것을 그럴 듯하게 냉장육인 것처럼 광고한 사실이 괘씸했습니다.

● 냉동육은 냉장육보다 20% 보다 저렴…명품 한우선물세트는 ‘바가지’

그렇다면 김씨가 받은 명품 한우선물세트의 가격은 적당한 걸까? 축산물 도소매업 20년 경력의 전문가와 검증해봤습니다. 

한우 가격표 (100g당 냉장육 기준, 단위:원)

*단가: 매장에서 판매중인 냉장육 소매가격을 유선전화로 확인
 포장비용 약 7천원, 택배비용 3천원 산정

위 표를 보면 김씨가 받은 명품 선물세트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냉장육 기준으로 전국에서 많이 팔리는 대표적인 한우 브랜드 3곳을 확인한 결과 100g당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1만2천원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등급이 더 좋은 A 브랜드의 경우 100g에 1만원 정도였습니다. 모든 한우 브랜드를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는 있을 수 있지만 차돌박이의 경우 3곳 한우 브랜드 모두 6천 원대로 김씨가 받은 차돌박이 단가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중요한건 냉장육이 냉동육보다 20%가량 비싸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됩니다. 이 단가로 한우선물세트를 구성해보면 대략 14만~18만 원가량이면 됩니다. 김씨가 받은 29만9천원짜리 선물세트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쯤되면 대기업 온라인 쇼핑몰에 기대 유통업체가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선도는 어떨까요? 20년 경력의 베테랑 축산물 도소매업자인 최성원 씨가 문제의 선물세트를 확인한 결과 얇게 썬 차돌박이의 경우 떼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7개월 전 도축한 업진살의 경우 색깔이 변해 있어 '한눈에 봐도 오래된 제품'이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최씨는 “한우는 한 번 얼리면 수분이 빠지고 육즙도 함께 빠지기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며,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면 고기가 상할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습니다. 최성원씨는 이 정도의 고기를 30만 원짜리 선물세트로 포장해 대기업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것은 자신도 처음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만약 이런 냉동육을 자신이 판매하면 당장 고객과의 신뢰가 깨져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 “한번 배달된 한우는 환불 안돼요” 배짱…따지고 나서야 환불에 응해

김씨를 더 분노하게 만든건 쇼핑몰 측의 반응이었습니다. 김씨가 환불을 요구하자, 쇼핑몰 측은 판매자에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주면서 반응은 이랬습니다. “한우의 경우 한번 배달된 상품은 환불이 불가하다”는 겁니다. 김씨는 7개월 전에 도축한 고기에 냉동육이라고 따지며 대기업 쇼핑몰 측에 거세게 항의하자 판매자도 그제서야 환불요구에 응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쇼핑몰 측이 이후 문제의 온라인 한우선물세트에 ‘냉동’이라는 표시를 했다는 점입니다. 김씨가 따지고 나서야 문제를 인식하고 뒤늦게 대처한 겁니다. 대기업 측에 확인한 결과 문제의 횡성한우선물세트는 100세트 정도 준비했고 10세트 정도 팔았다고 합니다. 

● 대기업 인터넷 쇼핑몰 관리 허술…협력업체 상품이면 '나몰라라'

해당 한우 선물세트를 판매한 대기업을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냉동육을 고가의 선물세트로 판매하게 됐는지, 냉동육을 왜 표시하지 않았는지 묻기 위해서 였습니다. 대기업은 명절 선물세트는 두 가지 경로로 판매한다고 답했습니다. 하나는 대기업 측이 자체적으로 준비해 선물세트를 준비하고 품질관리 등 모든 부분을 책임지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협력업체에서 팔고 싶다는 상품을 가져오면 법적인 검토 등을 거쳐 판매하는 겁니다.

협력업체 상품의 경우 먼저 대기업 측과 상품종류 및 가격, 구성품 등을 협의하고 판매 가격의 일정 부분을 대기업 측이 수수료로 떼어갑니다. 대기업 측이 일단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광고 및 판매에 대한 모든 권한을 협력업체가 갖고 판매를 진행합니다. 수수료를 얼마나 떼어 가는지는 영업기밀이라 알 수 없지만 통상 20% 이상 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대기업의 온라인 쇼핑몰 담당자는 협력업체 상품의 품질관리 미흡을 인정했습니다. 또 향후 온라인 선물세트는 자사상품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리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냉동, 냉장 표시를 확실히 하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이미 설 선물세트 배송이 끝나가는 마당에 지금에 와서 이런 대책을 강구한다 한들 이미 판매된 상품은 고객이 반품하지 않는 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떠안아야 합니다.

● 온라인 쇼핑몰 판매 축산물 '냉동·냉장육 표시 규정' 개선 필요

온라인 유통 및 판매업자들이 냉동, 냉장 표시를 확실하게 하도록 표시 기준을 개선해야 합니다. 현재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축산물의 경우 별도의 냉장, 냉동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통기한과 보관방법 등 몇 가지만 표시하면 되는데, 유통기한과 보관방법이 냉장이면 냉장상품인거고, 냉동이면 냉동상품인겁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유통기한과 보관방법만 보고 이 제품이 원래 냉동인지 냉장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유통기한이 냉동상태에서 1년이라고 하면 냉장 제품을 소비자가 받고서 ‘1년 동안 냉동보관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관방법 역시 ‘냉동 -18도 이하’로 표시되어 있는 경우 ‘냉장 제품을 받으면 냉동 보관하라는 거구나’라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온라인 상품 설명 거의 끝부분에 작은 글자로 표시하는 유통기한, 보관방법 표시 의무와 별도로, 축산물의 경우 반드시 냉장육인지 냉동육인지를 소비자들이 구분할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표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방송 기사가 나간 후 영업자 준수사항으로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축산물의 경우 냉동, 냉장육 여부를 표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들의 교육을 강화해 판매 윤리를 지키고 저급 상품을 취급하는 곳은 즉시 퇴출시키는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협력업체 상품이라해서 책임회피를 한다면 소비자들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대기업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자사 상품이건 협력업체 상품이건 대기업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도 대기업 쇼핑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 할 경우 엄벌해야 합니다.  

▶ '30만 원' 최고급 한우 받아보니…7개월 냉동육?

송인호 기자songst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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