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만화소로 세계 최고 공항을 지킨다니..

2016. 2. 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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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구멍 뚫린 인천공항

세계 최고 공항을 자부하던 인천공항이 최근 잇따른 보안 사고와 수화물 사고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찰특공대원들과 폭발물 탐지견이 인천공항을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인천국제공항이 새해 들머리부터 갖가지 사건·사고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홍역은 10년 연속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의 서비스 부문 1위라는 인천공항공사의 자긍심에 큰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역대 최대 여객이 몰릴 것으로 보이는 설 연휴를 앞두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또한 쉬 가시질 않습니다. 급기야 직원 총동원령까지 선포한 인천국제공항, 과연 설 연휴만 ‘무사히’ 넘기면 되는 걸까요?

“개항하고 15년 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한 달 만에 무너진 것 같네요.”

인천국제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허탈하게 웃었다. 최근 한 달 사이 수화물 대란과 밀입국 사건, 그리고 테러 모방 범죄 등 잇따른 사건·사고로 인천공항이 개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공항 운영의 핵심인 서비스와 보안이 한꺼번에 무너진 상황은 그동안 세계 1700여개 공항과 경쟁하면서 10년 연속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의 서비스 부문 1위를 지켜온 인천공항의 입지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총선에 나가겠다며 박완수 전 사장이 떠난 가운데 ‘총체적 난국’을 맞은 인천공항공사(공사)는 2일 관료 출신인 정일영 사장이 취임하면서 뒤늦게 몇 가지 조처를 내놓았다. 인파가 몰리는 연휴에 모든 경영진이 현장에 상주하고, 직원들은 2~3시간씩 출근시간을 앞당기고 퇴근시간을 늦추는 이른바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이른바 ‘피크시간’(오전 7~9시·오후 5~7시)에 인력을 늘리고, 새벽·휴일 근무자와 특별근무 인력도 보강하겠다고도 밝혔다. ‘직원 총동원령’인 셈이다.

그러나 공사가 내놓은 해법을 바라보는 공항 근로자·전문가들의 반응은 착잡하다. 이번 악재들의 원인을 ‘시스템’이 아닌 ‘인력 운용’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순히 사람을 늘려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이번 기회에 공항 운영 시스템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조들이 일어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최근 이어진 사건·사고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이은 ‘징후적’ 사건들

최근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를 살펴보면,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인재’라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력을 투입해서 보완하기 어려운 ‘시스템의 구멍’도 존재하고 있다. 공사는 지난달 3일 8시간 가까이 수화물처리시스템(BHS)이 멈춰서면서 연쇄적으로 수화물 정체 현상이 빚어진 사건에 대해 “기계적 결함이기보다 이를 운용하는 직원이 초동 대처를 잘못했다”고 파악했다. 공사의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이날 수화물처리시스템의 모터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멈췄다. 다만, 공사도 배낭이나 비닐 등의 ‘비규격 수화물’, 17만3000명이라는 역대 최대 이용객이 몰려 발생한 과부하, 충격 등이 원인이었을 거라 추정할 뿐이다. 공사 관계자는 “수화물처리시스템의 모터가 멈추는 상황은 하루 300여 차례 정도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리셋버튼을 누르면 정상작동하는데 그날은 담당 직원이 누르지 않았다”고 했다. 하청업체가 맡고 있는 수화물운영센터(BOC)의 미숙련 담당자의 과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화물 대란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자 공사는 설 연휴를 앞두고 시스템의 모터 248개 전부를 교체했다고 4일 밝혔다.

‘근무자의 공백’은 지난달 말 연달아 터진 중국인 부부와 베트남인 밀입국 사건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1일 중국인 허아무개(31)씨 부부는 여객터미널 3층 면세구역을 통해 3번 출국장의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관할인 출국심사대와 인천공항이 담당하는 보안검색대를 거쳐 밀입국했다. 당시 경비 업무를 맡은 하청업체 소속 보안요원은 출국장 정중앙에 있어야 한다는 근무수칙을 어겼다. 이 직원은 중국인 부부가 출국장 바깥으로 나가려고 출입문의 경첩을 뜯어내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유지보수 업체 직원으로 착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직원 휴게실이 있는 3번 출국장은 보안에 취약해 “스크린도어를 잠그거나 출입증을 찍고 다닐 수 있는 문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현장 보안직원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뒤인 29일에는 베트남인 ㄱ(25)씨가 여객터미널 2층 자동출입국심사대 문을 강제로 열고 빠져나갔다. 당시 경보음이 울렸지만 현장엔 아무도 없었다. 이때 현장에 있어야 했던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업무 협의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10년 연속 세계 최고 명성
수화물 대란 원인 아직 못찾고
밀입국 책임 추궁하자
입주기관들은 관할 탓만…
컨트롤타워 없이 ‘쪼개진’ 공항

‘수익자 부담’ 적용돼 운영
공사가 보안 검색 담당
그나마 하청업체 직원들이고
승객 밀리면 순찰요원 검색 투입
‘보안의 질’ 떨어질 수밖에

쪼개져 있는데 컨트롤타워 없고

사고가 이어진 뒤 공항 보안을 담당하는 기관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중국인 허씨 부부가 밀입국한 3층 출국장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공사의 관할 영역이 겹친다. 법무부 관계자는 “밤 11시에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서 공항공사가 보안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책임을 공사에 떠넘겼다. 반면 공사 관계자는 “보안요원이 근무수칙을 위반하고 근무를 태만하게 한 점과 출입문 잠금장치가 헐거워 중국인 부부가 쉽게 파손하고 밀입국한 점에 대한 잘못은 인정한다. 그러나 스크린도어가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책임”이라며 선을 그었다. 베트남인의 밀입국 사건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이 사건에서는 공사가 “해당 장소의 시설 설치와 운영은 법무부 소관”이라고 공을 떠넘겼고, 법무부는 “자체 조사 중이라 답변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각자 자신의 영역만 챙기고 방어할 뿐, 큰 그림을 맞출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태다. 대통령 훈령인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는 공사와 법무부, 그리고 공항경찰대·기무사·서울지방항공청 등 10여개 기관은 국가정보원이 이끄는 ‘테러보안대책 협의회’에 참여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협의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인천공항에는 애초부터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인천공항이 문을 열 당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안 분야까지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앞서 김포국제공항은 수도권의 유일한 국제공항이던 시절 경찰이 보안 업무를 담당했다. 1969년 북한 공작원이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기를 납치한 사건 뒤 경찰의 공항 보안검색이 시작됐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막을 1주일 앞두고 김포공항 국제선 1청사 쓰레기통에서 폭발물이 터져 5명이 숨지고 30여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보안검색에서 공항 경비 업무까지도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의 경우, 개항 이후 2002년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보안검색의 주체가 사법경찰권이 있는 경찰에서 인천공항공사로 변경됐다. 인천공항공사는 보안검색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며 감독 업무를 실시하고 실제 업무는 하청업체가 담당한다.

비용 절감이 손쉬운 항공 보안 분야의 ‘수익자 부담 원칙’은 과거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적용해온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면서 직접 연방공무원을 투입해 보안검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국토안보부(DHS) 산하의 교통보안청(TSA) 소속 연방공무원의 관리·감독 아래 엄격하게 공항의 보안검색이 이뤄지게 됐다. 프랑스도 경찰 등 국가기관이 중심이 돼 항공 보안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항공우주법학과 교수는 “국가중요시설 최고 보안 등급인 ‘가급’인 인천공항에서 각 기관들이 따로따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법경찰권을 가진 기관으로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지휘계통을 정리해 각 기관 간 긴밀한 협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무 더 세운다고 되나

공항 근로자들은 최근 벌어진 사건·사고에 대해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보안·환경미화·소방·탑승교 등 대부분의 업무 영역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를 고용해 운영하는 공항이 수익을 위해 필요한 근무자조차 늘리지 않은 잘못이 크다는 지적이다. 2015년 말 기준 공사의 민간위탁 하청업체 직원(비정규직)은 모두 6507명(정규직은 1152명)으로 2001년 개항 당시(3468명)보다 1.88배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공항 이용자 수는 3.39배 늘었다. 업무 과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인력 시스템은 인천공항의 근무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2층(입국장)·3층(출국장)·4층(식당가) 순찰조 지원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1인1조인 ‘순찰’ 보안요원이 ‘검색’ 업무에 지원을 나가 순찰의 공백이 발생하는 시간은 하루의 28%(6시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항 근로자들은 순찰요원이 지원 업무에 나가면 그 공백은 옆 구역 순찰요원이 떠맡아 일하고 있다. 박대성(39)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은 “지원은 대개 승객이 많은 시간에 나가게 되는데 승객이 많은 때는 순찰 업무도 중요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하루 6시간 넘게 순찰 공백이 생기면 위험 관리가 어려워지고, 공백을 떠맡는 옆 구역 순찰요원의 업무 강도도 높아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신철(41)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이용객이 늘어난 수에 비해 하청업체 노동자 수는 절반 정도밖에 늘지 않았을 정도로 모든 영역에서 인원이 부족한 것이 최근 잇따른 인천공항 사건·사고의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공사가 몇 년 단위로 맺는 민간위탁 계약으로 새로운 사장을 맞이해야 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근속연수가 많아도 평균 임금이 200만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그런 탓에 이직도 많아 전문성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공사는 5조원대의 사업비를 들여 새로운 여객터미널과 교통센터 등을 대규모로 확충하는 3단계 공사를 하고 있다. 2017년 공사가 마무리되면, 최종적으로는 승객 1억명 목표로 4단계 공사까지 진행해 이른바 ‘허브 공항’이 되겠다는 계획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천공항은 그동안 ‘물체’에 주로 초점을 맞춰온 보안검색 시스템을 입국자나 환승객 등 ‘사람’에 대해서도 보완하는 이른바 ‘보안 패러다임’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또 ‘비용 절감’만 앞세운 공사의 경영방식을 처음부터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경찰은 개항 이래 한번도 바뀌지 않았던 41만 화소급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지난달 29일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1층 남자화장실에서 발견된 아랍어 경고 메모가 담긴 가짜 폭발물을 놓아둔 용의자를 찾느라 수사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야 200만 화소급으로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인천공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항공운항·안전관리 전문가는 “인천공항의 경비·보안 업무는 근무자들이 하루 3교대로 일하는데 3교대 인원에 휴식·교육·휴가·병가 등을 고려해 현재 근무 인원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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