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영 KBO 사무총장 "국가대표 전임감독이 힘든 이유는.."

김재동 기자 입력 2016. 2. 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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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의 만남] 프로야구와 함께 한 28년..그에겐 야구밖에 없었다 ①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1982년 MBC 청룡, 롯데 자이언츠, 삼성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OB베어즈, 삼미 슈퍼스타즈 6팀으로 출범한 한국프로야구가 2016시즌으로 35주년을 맞았다. 원년 143만 8천여명의 관중은 10개 팀이 각축을 벌인 지난 시즌 역대 최다인 736만명을 기록했다. 35년간 간단없이 질적 양적 성장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KBO 양해영(55) 사무총장은 지난 1988년 KBO에 입사한 이후 그런 한국프로야구를 28년째 지켜온 인물이다. 그를 만났다.

KBO 양해영 사무총장./ KBO= 박찬하 인턴기자
KBO 양해영 사무총장./ KBO= 박찬하 인턴기자

대전의 야구팬들은 입장이 늦는 편이었다. 구장 외곽을 돌던 암표상들은 경기시작이 임박해지면 초조함을 못이기고 매표소 인근까지 진출하곤 했다. 그들을 쫓느라 실랑이가 벌어지면 서울서 내려온 암표상들이 ‘그 양반한테 왜그러냐’고 그를 두둔하고 나서곤 했다. 잠실에서 익히 부닥쳤던 안면 덕이었다. 그렇게 벌어지는 서울과 대전 암표상들끼리의 충돌. 어쩔 땐 봉고차 각목부대까지 나설 때도 있었다. 외야를 에두른 포플러나무도 애물단지였다. 이 나무에서 한사람 끌어내리면 다시 저나무를 오르는 이가 있고..

대구구장에선 덩치를 앞세워 표없이 무리지어 들어가려는 세칭 ‘너구리’들의 출몰이 빈번했다. 경비용역들도 무슨 사법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네서 힘깨나 쓸법한 인상 험한 이들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는 그런 너구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가 차가운 날붙이가 겨눠지는 험한 상황도 겪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젊은 배짱 앞에서 너구리들은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야구문화 많이 좋아졌죠? 예전엔 백골단도 수시로 투입되곤 했는데..” 옛시절을 회고하는 KBO 양해영(55) 사무총장의 눈매에 웃음이 맺힌다.

35년째를 맞는 프로야구의 변화상을 묻는 질문에 그는 팬들의 관전문화 정착을 우선 꼽는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그에 걸맞는 인프라의 확대, 구단들의 마케팅 및 팬서비스 기법 향상 등도 당연히 뒤를 잇는다.

야구관전문화는 정말 장족의 발전을 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낭만을’이었다. 하지만 꿈을 꾸고 낭만을 찾기엔 험악했던 곳이 야구장이기도 했다. 감독청문회가 숱하게 열렸고 수시로 야구장 난입이 벌어졌으며 선수단을 향한 폭행과 응원단간의 폭력사태, 선수단 버스가 불타는 일까지도 벌어졌었다. 시위현장에서 악명높던 백골단이 동원돼야 진압될 정도의 관중난동도 드물지 않았다.

가족여가선용의 장으로 각광받는 요즘의 야구장(좌)과 불법 무질서가 판쳤던 과거의 야구장./사진= 뉴스1, 한국프로야구난투사 캡처
가족여가선용의 장으로 각광받는 요즘의 야구장(좌)과 불법 무질서가 판쳤던 과거의 야구장./사진= 뉴스1, 한국프로야구난투사 캡처

이 같은 현상들은 인프라가 개선되고 티켓예매제가 정착되며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매표소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 보면 경기 시작 전부터 짜증이 솟구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근데 시간 맞춰와서 딱 야구만 즐기면 되게 되니 그야말로 즐기는 야구가 가능해진 거죠”

몇 안되는 총무부 직원으로 KBO 생활을 시작한 탓에 그런 현장을 온몸으로 겪었던 양 총장, “예전에는 그렇게 면전에서 침 맞으며 욕먹었는데 요즘엔 댓글이라던가 SNS로 욕을 많이 먹는다”고 허허롭게 웃는다.

양 총장은 “밖에서 보는 이들로부터 KBO가 욕먹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보다 앞선 메이저리그나 일본야구를 왜 못 따라가느냐는 야구 팬들의 불만을 이해한다. 근데 그들이 가령 10년 걸려 이룬 걸 우리가 1~2년 안에 쫓아가긴 힘든 일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10개 구단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이뤄진다. 여기엔 빅마켓구단과 스몰마켓구단, 수도권 구단과 지방 구단 등의 이해득실이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 그런 엇갈림을 조율하는 데는 시간과 공력이 들 수밖에 없다. KBO가 커미셔너로서의 권한이 막강하다 해서 일방적인 드라이브를 걸 수는 없는 일이다” 고 설명한다.

프로야구의 성장을 한눈에 보여주는 연도별 관중현황./사진= KBO기록실
프로야구의 성장을 한눈에 보여주는 연도별 관중현황./사진= KBO기록실

야구팬들의 피상적인 바람이 현실적으로 시행되기 힘든 고충이 있음도 부연한다. 지난해 열린 프리미어12 당시 시끄러웠던 대표팀 전임감독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야구 대표팀이란 게 평가전등의 A매치가 많은 축구와는 경우가 다르다. 리그가 열리는 중에 대표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가령 2017년 3월에 WBC가 열리는데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셈이다. 전임감독을 선임을 하게 되면 구단의 제의를 받아도 자리를 지킬 만큼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그런 대우를 유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고 설명한다. 그럼 대표팀 운용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를 묻자 “현역이 아닌 분들 중에 감독후보군을 기술위원으로 영입하여 리그를 통해 선수들을 끊임없이 지켜볼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설명한다. “그 기술위원들도 결국 시즌이 끝나봐야 구단으로 현역복귀할지 어떨지 거취가 결정될 것이다. 게다가 대표팀 문제는 대한야구협회와의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다”라고 덧붙인다.

또 하나의 실례로 에이전트제 도입도 거론한다. “에이전트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있으면 선수들에겐 도움이 될 것이다. 에이전트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선수 몸값을 상승시키게 될 텐데 아직 구단들이 적자인 상황에서 에이전트의 도입이 절실한지는 생각해야 될 부분이다. 실제적으로 에이전트를 고용할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대다수의 저연봉 선수들이 과연 에이전트를 고용할 수 있겠는가?”면서 “일단 풀어놓으면 야구판을 쥐락펴락할 거대에이전트가 탄생할 소지가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부분이다”고 말한다.

KBO는 양해영 사무총장에게 28년간 소명같은 직장이었다./KBO= 박찬하 인턴기자
KBO는 양해영 사무총장에게 28년간 소명같은 직장이었다./KBO= 박찬하 인턴기자

KBO는 지난해 세이프 캠페인을 펼쳐 관전문화개선에 노력했다. 2016년엔 클린베이스볼 캠페인을 실시해 깨끗하고 공정한 야구를 펼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3개 브랜드를 사용했던 야구공이 금년부터는 단일구로 바뀐다. 홈 충돌방지규정이 새로 생겨 선수부상의 위험성을 줄인다. 심판합의 판정도 1+1에서 두 번까지 무조건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합의판정대상이 아니었던 헛스윙과 파울 타구까지 합의판정대상에 포함시킨다. 올시즌 하반기부터는 KBO 자체 비디오판독제도 도입한다.

양총장은 “이외에도 10 여년간의 투자와 지원을 통해 리틀 야구가 25개에서 180개팀으로 늘어났고 초중고 창단지원을 통해 30여개팀이 추가 창단되기도 했다”면서 “야구팬들의 성에는 차지 않을 수 있지만 KBO는 국내야구발전을 위해 중단없이 꾸준히 노력해왔고 노력해나가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 답답할 수 있지만 조화롭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총무부 말단 직원부터 사무총장까지 한국프로야구에 젊음을 바쳐 온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담겨있다. <계속>

김재동 기자 zaitung@mt.co.kr<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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