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 조선왕릉, 북한 소재 제릉·후릉은 빠져
조선왕조는 500년을 이어오며 27대의 왕과 왕비를 배출했고, 42기의 왕릉을 조성했다. 같은 묘제(墓制)를 일관되게 적용했다는 동서고금에 유례없는 진귀함 등이 인정돼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왕릉 종합학술조사에 나선 것은 2006년이다. 10년 만인 지난달 9번째 보고서를 내며 조사는 마무리됐다. 연구소는 보고서에 42기 모두를 정리했으나 2기에 대해서는 문헌조사를 했을 뿐 현지조사는 후일로 미뤄야 했다. 태조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사진)과 정종·정안왕후의 후릉이다. 북한 지역에 있어서다. 개성시 판문군 지동에 있는 제릉은 원래 왕릉이 아니었다. 신의왕후가 조선 건국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건국 후 능호를 받았고, 아들 태종이 왕릉의 형태로 정비했다. 태종은 1404년 신도비를, 1407년에는 돌난간과 석인(石人)을 세웠다. 후릉은 개성시 판문군 령정리에 있다. 1412년 정안왕후의 능으로 처음 조성되었고, 1420년 정종이 승하하면서 쌍릉이 됐다.
북한은 제릉과 후릉을 각각 보존급유적 제1629호, 보존급유적 제551호로 지정해 두고 있으나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2기는 세계유산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연구소 황정연 연구사는 “북한의 전반적인 문화재 관리 실태 등을 감안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금까지는 순수학술 목적으로도 조사 허가가 나지 않았다. 보존, 활용을 위해 1차적인 조사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문화재 교류로는 개성 만월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발굴, 비무장지대 내 궁예 도성터 조사 등도 추진 대상으로 오래전부터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제릉, 후릉은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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