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진보 자처하지만 학생운동에는 무관심

손국희.공다훈 2016. 2. 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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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대련 소속 학생 500여명이 ‘조건없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있다. 쇠파이프, 화염병으로 대변되던 운동 방식이 문화제 형태로 바뀌어 가는 과정의 단면이다. [중앙포토]
1992년 5월 31일 한양대에서 전국 183개 대학의 학생 5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대협 6기 출범식이 열렸다. 출범식 직후 대학생들이 가두행진을 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있다. [중앙포토]

대학생 김민성(25)씨는 자신이 진보적인 이념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차기 대선후보로 야권 인사를 지지한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땐 정부 기관의 대응을 비판하는 카카오톡·트위터 메시지를 지인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이뤄지는 노동조합 단체 등의 서명에도 10차례 이상 참여했다.

하지만 김씨는 학생운동이나 학생회 활동엔 관심을 잃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고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학생운동 단체를 통로로 해서 해결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지는 스스로 생각하는 이념성향 등에 대해 지난 1월 15~30일 전국 대학생 남녀 35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김씨처럼 자신을 ‘진보적 성향’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1980~90년대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학생운동에 관심이 없거나 비판적인 사람은 과거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대학생들은 0~10점(0점 = 매우 진보, 10점 = 매우 보수)까지 자신의 이념 성향에 해당하는 점수를 선택했다. 그랬더니 응답자의 평균 점수는 4.21점으로 중도에 가까운 진보였다. 자신이 ‘진보(0~4점)’라고 답한 사람은 212명(60.6%)이었고, 보수(6~10점)라고 답한 사람은 66명(18.9%)이었다. 중도(5점)라는 응답은 20.5%(72명)였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진보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남북문제 등 개별 사안에 대해선 일부 보수적인 경향을 띄기도 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성향이 중도에 가까운 진보(4.21점)라는 이념점수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운동 단체인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에 대해선 무관심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한대련의 활동과 강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58.9%(206명)로 가장 많았다. 보통이다(24.0%, 84명), 지지 및 매우 지지한다(8.8%, 31명), 반대 및 매우 반대한다(8.3%, 29명)가 뒤를 이었다. 한대련을 비롯한 학생운동 단체에서 활동할 의향을 묻는 질문엔 88.3%(309명)가 ‘없다’고 답했다.

‘한대련의 현 의장(김한성 전남대 총학생회장)의 이름을 묻는 질문엔 응답자의 97.7%(342명)가 ‘모른다’고 응답했다. 2.3%(8명)만이 "안다"고 답했다.

전대협 초기 의장(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름을 묻는 질문엔 98.6%(345명)가 "모른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이 거대담론보다는 대학생의 현실 문제나 정부 정책 등 생활 관련 이슈에 초점을 맞추기를 기대했다.

학생운동이 집중해야하는 이슈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7.4%(201명)가 ‘등록금, 주거문제 등 교육환경 문제’라고 답했다. 이어 ▶정부 및 국회 정책 등 견제(17.1%, 60명) ▶노동자,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 해결(16.0%, 56명), 주한미군 철수 및 자주국가 수립(4.3%, 15명) 순이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전대협처럼 학생운동 의장들이 연예인·정치인에 버금가게 주목을 받던 시절은 끝났다”며 “요즘 대학생들은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과는 별개로 문제 해결 능력이 줄어든 학생운동에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학생운동 단체가 주도하는 거대담론에 거부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며 "특정 단체에 소속되기 보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참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5년 이후 학생운동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대련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대련은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넘어선) 300만 대학생의 단체’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여전히 일반 학생들의 참여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0년 한대련에서 활동한 이모(29)씨는 “학생운동을 한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운동권이 아닌 일반 학생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2013년 한대련에서 활동했던 한 간부는 “2012년 5월 전 통합진보당(통진당) 폭력사태로 인해 한대련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과격하다는 이미지가 형성돼 조직이 위기를 겪었다”며 “전국 단위 행사는 물론이고 서울지역 행사도 인력 동원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대련의 위기는 일부 대학 총학생회의 탈퇴로 이어졌다. 숙명여대는 2011년 7기 한대련 의장으로 박자은 총학생회장을 배출하는 등 한대련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14년 5월 한대련에서 탈퇴했다. 87년 이후 NL(민족해방)계열 학생회의 ‘본산’이라고 불린 고려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는 2012년 9월,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2013년 11월 숙대의 뒤를 이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보를 규정하는 스펙트럼이 다양화된 상황에서 학생들의 고단한 삶이나 정부 정책의 실질적 변화 등을 이끌어내는 성과 없이는 학생운동의 위기는 당분간 지속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학생운동의 위기는 어떻게 찾아왔나

“대학 학생회는 사실상 죽었다고 보면 됩니다. 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묶을 조직이 힘을 잃었는데 어떻게 학생운동이 가능하겠습니까.” 2013년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총학생회장으로서, 한대련 활동에도 참여했던 A(26)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학생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대학 학생회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투표율을 넘기지 못해 재선거를 치르거나 아예 출마한 후보가 없어 선거 자체가 무산된 대학까지 있을 정도다. 서울대는 지난 1997년 이후 매년 총학생회 선거 본투표기간에 선거 유효기준인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19년만에 처음으로 본투표에서 투표율이 50%를 넘었고 김보미(23)씨가 당선했다.

서울시립대에선 지난해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나오지 않아 선거가 무산됐다. 단과대도 7곳 중 2곳 만이 학생회 구성을 마친 상태다. 같은 해 중앙대와 가톨릭대 역시 투표율 부족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 당시 중앙대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아이패드, 블루투스 스피커를 추첨해 지급하는 투표 독려 행사까지 열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본지가 전국 대학생 남녀 3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학생회에 관심을 갖거나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응답은 21.1%(74명)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투표율 계산 방식을 변경한 대학도 나왔다. 고려대는 지난 2006년부터 총학생회선거 투표율 계산에서 4학년을 제외하고 있다.

한국외대는 단독후보 선거 시 투표 성립 투표율 기준을 50%가 아닌 30%로 낮춰놓은 상태다.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장 B(26)씨는 “요즘 장터·축제 등을 제외하고 국정교과서 등 사회 이슈 관련 행사에선 대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려워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성 운동가들의 약진…이유는?

전대협, 한총련 등의 과거 학생운동 단체과 달리 한대련에선 여성 의장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끈다. 2005년 김미숙 초대 의장을 시작으로 3기 김지선, 6기 김유리, 7기 박자은, 9기 김나래씨 등 여성 의장만 5명이다.

역대 한대련 의장 11명 중 절반 가까이에 달한다. 의장은 아니지만 전대협과 한총련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한 여학생들이 있었다. 임수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옛 통진당의 김재연(35)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임 의원은 한국외대 불어과 4학년이던 1989년 전대협 대표(당시 전대협 의장은 임종석 전 의원)로 방북해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여했다. 당시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차림으로 북한 사회에 충격을 줬고, 판문점으로 걸어서 귀환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이던 2002년 여성 최초로 한총련 10기 의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철회 운동 등을 주도했다. 전대협과 한총련의 역대 의장 21명 중 여성은 한총련 13기 의장을 맡은 송효원(32)씨밖에 없다.

한대련에서 여성들이 약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대련 출범 초기 덕성여대, 숙명여대 등 여대가 주도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한 것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대 의장 김미숙(32)씨와 3기 김지선(30)씨는 덕성여대, 7기 박자은(25)씨는 숙명여대 출신이다. 김미숙씨는 “출범 초기 한대련은 큰 조직이 아니었고, 주도적으로 의사 결정에 참여한 각 학교 임원 가운데 여대 출신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진보 진영에서 퍼진 여성주의(페미니즘)나 양성 평등의 분위기도 여성 의장의 등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창언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한대련이 등장할 당시 남성 중심의 학생운동을 가부장 문화의 잔재로 보고 반성하는 경향이 운동세력 내부에서 나타났다.

화염병 등으로 대표되는 과격한 운동 방식이 문화제 등 비교적 온건한 방향으로 바뀌면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점도 여성들이 리더로 나서는 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여대생의 비율이 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대협이 결성된 1987년 26.5%에 그쳤던 전국 4년제 대학의 여대생 비율은 한대련이 결성된 2005년 36.8%(교육청 교육통계연보)로 늘었다.

과거 한대련에서 활동했던 A(29)씨는 “등록금, 교육환경 등 대학생들의 실생활 문제에 관심을 갖던 한대련은 여대생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손국희·공다훈 기자 9key@joongang.co.kr
그래픽=김하온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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