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잇단 대형사고, 이유 있었네
ㆍ인천공항 수화물 대란·제주공항 초유의 마비 사태… 정치인 낙하산이 원인
“이러다가 큰일 나지 싶어요. 다들 뭔가 나사가 빠진 기분이에요”
제주 폭설사태로 마비됐던 제주공항이 정상화되기도 전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인 남녀 2명이 밀입국한 사건이 알려지자 항공업계 관계자는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도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4월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동반 사퇴한 이후 국내 공항에서 잇달아 사건·사고가 터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을, 한국공항공사는 14개 국내 공항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박완수 전 사장이, 한국공항공사는 김석기 전 사장이 20대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2015년 12월 19일 같은 날 사퇴했다. 박 전 사장은 임기 1년 8개월, 김 전 사장은 임기 10개월을 각각 남겨둔 상황이었다. 양 공항공사의 사장이 동시에 공석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1일 오후 제주공항에 강풍과 윈드시어 특보가 내려져 항공기 결항이 속출한 가운데 이용객들이 공항 바닥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제주 / 이준헌기자 |
양대 공항 사장, 총선 출마 이유 동시 사퇴
수장이 빈 공항은 올 초부터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1월 3일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사상 초유의 수하물 대란이 일어났다. 수하물을 실어나르는 시스템이 고장나면서 5200여개의 승객 짐이 실리지 않아 160여편의 항공기 운항이 지연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일부 비행기는 승객의 수하물을 싣지도 못하고 출발했고, 승객들은 자신의 수하물을 한동안 받지 못해 큰 혼란을 겪었다. 인천공항 개항 이후 최다인 17만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수하물 처리용량을 넘어선 것이 원인이라고 인천국제공항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국토부 합동조사단은 “수하물 벨트 모터 1개가 과열로 멈췄는데도 현장 관리자가 즉각 대처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며 “30분가량 작동이 중단됐을 때 인력을 투입해 수하물을 빼내야 했지만 7시간30분 동안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실제 인천공항의 수하물 처리시설 최대 용량은 시간당 1만4400개이지만 사고 당일 시간당 최대 수하물 투입 물량은 7500개로, 최대 용량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인천국제공항 관계자는 “오랫동안 정치인 사장이 내려오고, 계속 공석이 되면서 전체적으로 느슨해진 분위기”라며 “만약 사장이 촘촘히 업무를 챙겼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졌겠느냐”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라고 다를 바 없었다. 저비용항공사들이 회항 등 크고 작은 사고를 낸다 싶더니 1월 21일 제주공항 관제시설의 통신장비가 한 달여 만에 또다시 먹통이 됐다. 이 사고로 21일 오전 16편의 비행기가 지연되면서 제주공항 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2015년 12월 12일에도 관제탑의 통신장애로 76분간 관제탑과 조종사 간 교신이 끊겨 수십 편의 항공기가 제주 상공을 맴도는 아찔한 상황이 빚어졌다.
대형사고는 이틀 뒤인 23일 터졌다. 폭설과 한파로 제주공항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42시간 동안 공항이 전격 폐쇄되면서 9만명의 승객들 발이 묶였다. 첫날과 둘째 날 제주공항의 미숙한 대처는 논란이 될 만했다. 공항에서는 수천명의 승객들이 노숙을 해야 했지만 공항공사의 대처는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서울신문>이 보도한 ‘난방비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제주공항이 폐쇄된 직후 제주도 측이 “체류객이 노숙하는 공항터미널에 밤샘 난방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측은 “난방비를 누가 부담할 것이냐”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부 결재가 나야 한다. 노숙 중인 체류객은 한라체육관 등지로 옮기는 게 낫겠다”고 제안했다고 <서울신문>은 보도했다. 또 빵 등 음식물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에 대해서도 “매점 등이 폐점하는 밤 10시 이후에 제공하라”고 요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제주공항 측은 “난방비 얘기는 일절 한 적이 없다”며 “난방비는 공항공사가 내기로 했다”고 극구 해명했다. 하지만 공항 공공기관의 내부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공공기관 조직 특성상 최종 결재권자인 사장이 없는 상황에서 실무진들이 즉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사장이 없다 보니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가 늦어지는 것 아니냐”며 “수장 공석이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수하물처리시스템(BHS) 고속벨트.(사진 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사진 아래) |
다시 사고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터졌다. 1월 21일 새벽 중국인 환승객 2명이 출입국장 4개의 관문을 10분여 만에 통과해 밀입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잠겨 있어야 할 문들이 자동으로 열렸고, 경비직원은 정해진 자리에 없었다. 두 중국인들은 나흘 동안 충남 천안 등을 활보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두 사람의 밀입국도 환승 비행기를 타지 않은 항공사 측의 신고로 알려졌다. 인천국제공항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추적 요청을 받고서야 뒤늦게 인지했다. 인천국제공항 공사 내부에서도 잇단 사고로 인해 10년째 이어오던 세계 공항 평가 1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밀입국 사건에 관제시설 먹통 사태까지
문제는 두 공항공사의 추락이 공항 자체의 경쟁력 약화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잇달아 투하된 정치인 낙하산의 폐해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35개월간 사장 공석기간이 열두 달에 달한다. 현 정부 3분의 1 동안 인천국제공항은 사장 없이 운영돼 왔다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두 공항공사의 사장은 정치지망생으로 채워졌다. 먼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보자. 정창수 사장은 9개월 일한 뒤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정 사장은 강원도지사 선거 경선에서 패한 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복귀했다. 두 번째 박완수 사장은 2014년 4월 경남도시자 선거에서 ‘친박’ 후보로 나섰다가 홍준표 후보에게 패했다. 정부는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7개월간 공석으로 놔두더니 10월이 돼서야 박 사장을 임명했다.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선임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공천서를 내밀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던 그는 19대 총선에도 나왔다가 떨어졌고, ‘공항공사 사장’ 이력으로 물갈이한 뒤 오는 4월 출마한다.
역대 공항공사 사장은 전문경영인이 맡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재희 사장(전 유니레버코리아 회장)이, 이명박 정부 때는 이채욱 사장(전 GE코리아 회장)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맡으며 세계적인 공항으로 키웠다. 결코 경력관리용 사장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공항이 잇단 말썽을 일으키면서 인천국제공항은 새 사장 공모에 들어갔지만, 한국공항공사는 여전히 공석이다. 20대 총선에서 낙마 혹은 공천탈락한 인사를 위해 비워놓은 보은용 자리 아니냐는 얘기가 또 흘러나온다. 공항 관계자는 “경력관리용 사장들은 임명 이후 지역구만 신경 써 자리에 있더라도 사실상 공석인 거나 마찬가지”라며 “이제는 정치인 낙하산이라도 좋으니 제발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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