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제주 2월3일 봄을 선언하다..눈꽃 뚫고 피어난 봄꽃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중략)/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변덕스럽던 1월 하순의 기상에 사람들이 아우성 칠 때, 제주 한림에서 가녀리게 피어난 앵초는 눈보라에도 침묵을 삼켰다. 안덕면 카멜리아힐의 6000여 그루 동백은 세 차례 눈을 맞아 수백송이 떨어졌지만 2월에 다시 새순이 돋았다. 한경 곶자왈 환상의 숲에서도 매화는 덜 녹은 눈 옆에서 요지부동 꽃망울을 터뜨렸다. 엄혹한 1월을 보낸 제주의 꽃들은 그렇게, 조병화 시인의 ‘겨울’ 처럼 묵묵히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주 2월3일 봄을 선언하다
육지에서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라고 하면, “겨울에 무슨 꽃타령이냐”는 핀잔을 들을, 터무니 없는 요구일지 모른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동지섣달 쌓인 눈 속에서도 꽃은 피어났다. 사시사철 물질하며 서방님 술값을 대던 어여쁜 제주 아낙의 열정처럼 1월의 꽃은 눈과 바람을 이겨내면서 피어났다.
제주가 2월3일 봄을 선언했다. ‘모관(城內) 저자에 춘등(春燈)을 내걸다’라는 주제의 봄을 선언하는 의식, ‘탐라국 입춘(立春)굿’이 3~4일 제주목관아와 제주시 원도심 일원에서 열린다.
6일부터 한달간 서귀포시 남원읍 노리매에서는 매화 축제가 열린다. 수선화가 매화를 호위하는 가운데, 육지와 섬 사람들이 어울려 가락에 맞춰 봄의 정취를 만끽할 것이다.
제주의 꽃은 1월 하순 눈보라속에서도 봄 준비를 끝냈다.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반(反)시계 방향으로 해안선을 돌 때, 얼마 가지 않아 만나는 애월 농협부터 길가에 성미 급한 유채꽃들이 하나둘 꽃망울을 터뜨렸고, 애월청정취나물 저장소 옆에는 ‘바다의 연인’ 동백꽃과 팬지가 활짝 피어났다.
▶눈보라에 맞선 수선화와 앵초의 투쟁
해녀라커룸이자 샤워장 ‘불턱’을 개조한 과물 노천탕을 지나 한림공원에 이르면 ‘차디찬 의지의 날개’ 수선화가 장관을 이룬다. 설중화로도 불리는 수선화는 일주일 사이 두 번이나 눈을 맞았지만 꼿꼿하게 제주를 지키고 있었다. 한림공원 표지판에는 “1월에 수선화가 필 때면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있는 듯 하다”고 쓴다. 문득, 8월 메밀밭을 보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붓한 달빛에 숨 막힐 지경’이라고 했던 이효석의 감성이 오버랩된다.
앵초의 투쟁은 더욱 기가 막히다. 가녀린 줄기를 반듯하게 세운채 어느틈엔가 든든한 남정네 같은 화강함 옆자리에 둥지를 틀고 5개의 꽃잎을 펼쳤다. 꽃말은 모순,행운. 눈 내리고 바람이 세차기에 여린 앵초의 모순 같은 버티기를 보는 것은 행운이다.
나르시스의 화신 수선(水仙)이 약재로서 몸에 좋다면, 앵초는 고난극복의 마음을 곧추세우는데 제격이다.
▶기품있는 매화, “나 보름 전 피었다고 전해라~”
꽃을 따서 뒤쪽을 빨면 단물이 나오는 사루비아(깨꽃)는 한림 뿐 만 아니라 표선 허브동산에서도 세찬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열정과 정조라는 꽃말은 두꺼비가 내뿜는 독을 품은 사루비아 꽃을 입에 넣었다가 연인이 죽자, 남친이 함께 그 꽃을 따먹고 따라죽었다는 ‘데카메론’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한림공원 오솔길은 노란색 유리호프스 사이사이 군데군데 동백꽃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한경의 곶자왈 환상의 숲에 이르면 초입부터 고결한 기품의 세한삼우(歲寒三友) 매화가 반긴다. 당차게 열매를 키워가는 ‘하귤’옆에 당당히 피어났다.
움푹 패인 웅덩이에 몸을 감춘채 꽃망울을 터뜨린 천리향은 향기는 멀리가지만 낯가림이 심하다. 그는 열정, 편애(偏愛)의 상징이다. 곶자왈 해설사가 된 육지 출신 이 집 사위가 사랑의 결실을 맺고 처가살이 하게 된 과정도 짝사랑의 결과물이다.
▶사랑의 열매도 맺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상징인 붉은색 ‘사랑의 열매’가 자금우 계통의 산호수냐 먼나무이냐, 백당나무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앵초목 자금우과 산호수와 노박덩굴목 감탕나무과 먼나무 모두 제주에 자생한다. 벌써 붉은 열매를 자랑한다. 해설사는 키가 20센티에 불과하지만 늘푸른 잎을 자랑하는 자금우가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최고 10m까지 자라는 먼나무에 붉은 열매가 맺히면 잎이 떨어진다.
중문골프장에선 골퍼들이 푸른 잔디위에서 눈 쌓인 한라산을 바라보며 바람을 가르는 희망샷을 날린다. OB 선상 러프에 핀 유채꽃이 물끄러미 적도(赤道) 쪽을 내려다 보면서 온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표선 허브동산에서는 TV드라마 제목인 ‘비단향 꽃무’가 세찬 바람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프랑스에서는 ‘바람 피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쓰이는 이 꽃은 ‘영원히 아름답다’는 꽃말을 가졌다.
▶제주바람에도 바람피지 않는 비단향꽃무
제비꽃을 닮은 비올라가 보라색 여린 꽃을 피웠고 국화과의 크리산세멈도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은채 피어 비단향꽃무 옆을 지켰다. 목이 긴 코스모스처럼 가는 줄기의 리나리아,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향기를 지닌 로즈마리, 가녀린 패랭이(석죽)도 굳건하게 봄을 기다리며 피어난 것을 보면 마음 약한 여행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게라툼, 나무쑥갓은 온실속에서 핑크빛 자태를 뽐냈다.
표선에서 성산가는 길엔 일반적인 귤 보다 훨씬 큰 ‘하귤’이 가로수로 심어져있다. 한창 익어가는 노란 양기가 당차다. 겨울을 견디며 피었기에 겨울~봄을 걸쳐 제주에서 피는 꽃들은 약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그만큼 고도의 영양분들을 농축시켰기에 겨울을 견뎠던 것이다.
▶성급한 유채, 성산을 벌써 메우다
성산 유채꽃밭엔 벌써 봄처녀들의 재잘거림이 넘친다. 서쪽으로는 한라산이, 북쪽으로는 갑문교에 갇혀 석호처럼 보이는 만(灣),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이 자리한 지점에 자리한 유채꽃밭엔 벌써 노란색 유채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육지에서는 겨울에 잠복했다가 3,4월이 되어야 부활해 비로소 꽃을 피우기에 ‘월동초’라고도 부르지만, 제주의 유채는 다른 꽃에 지기 싫어서인지, 마음 들뜬 봄 처녀처럼 철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유채꽃에 열광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명랑하고 찬란한 봄을 발견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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