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창당]또다시 쪼개지는 야권..분열·통합의 60년 야당사
【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2일 국민의당이 공식출범하면서 야당은 더불어민주당과 2강체제의 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정의당까지 포함할 경우 야권은 3개 정당이 축을 형성하는 '1여(與) 다야(多野)'가 된 것이다.
◇'1여(與) 다야(多野)'구조
우리의 야당사는 끊임없는 분열과 통합의 흔적이다. 1945년 광복 이후 길지않은 세월동안 야권은 끊임없이 반목하고 분열하고 연대하고 통합했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총선거는 매번 야권 '헤쳐모여'의 촉매역할을 했다. 진보세력간 이해관계가 갈리고 보수층에 비해 결집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야권으로서는 고심의 산물이었다. 무엇보다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세력간 헤게모니 다툼이었다.
2일, 국민의당이 창당하면서 야권은 또다시 분열했다. 2014년 3월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한 지 불과 2년만이다. 당시 합당을 주도한 안철수 김한길 대표가 이번에는 분열을 주도했다.
◇거듭되는 야권 분열과 통합
야권의 분열과 통합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남북 대치상황과 경제성장을 우선시해온 국내 여건상 그동안 정치환경은 보수정당이 유리했고, 진보적 색채를 지닌 야권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늘 '이합집산'을 시도했다.
정치거물들의 대권 다툼, 야권 내의 지역색도 '이합집산'과 '헤쳐모여'의 동력이 됐다.
1955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며 탄생한 민주당은 탄생부터 분열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신익희 윤보선 조병옥 등 호남출신의 구파와 반독재 운동을 한 영남 출신의 신파가 당내에서 대립했다. 1956년에는 조병옥 선생을 지지하는 구파측 인사가 신파측 장면 선생에게 총격을 하는 등 당내 계파 갈등이 극에 치달았다.
196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고, 장면 선생이 총리로 당선되는 등 영남기반의 신파가 집권하자, 호남기반의 구파는 1960년 신민당을 창당,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1963년 정치활동 금지가 해제된 후 구파는 민정당을 다시 창당한다.
신파의 민주당과 구파의 민정당은 박정희 군사정권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합당, 1965년 5월 민중당을 창당시켰다.
하지만 신파의 박순천계와 구파의 윤보선계는 한일협정 비준과 국군 베트남 파병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다 결국 윤보선계의 집단 탈당으로 파국을 맞는다. 구파 윤보선계와 신파에서 떨어져 나온 강경파는 손을 잡고 신한당을 창당했고, 야권은 다시 분열했다.
민중당과 신한당은 1967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합당, 신민당을 창당한다.
고(故) 김영삼 대통령(YS)과 고(故) 김대중 대통령(DJ)이 맞붙었던 1971년 신민당 대선 경선 이후 야권은 YS를 중심으로 한 영남권의 상도동계와 DJ를 중심으로 한 호남권의 동교동계로 분화된다. 신민당은 1980년대 초반까지 유지됐다.
야권은 1984년 5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기 위해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구성, 1985년 1월 신한민주당을 창당했다. YS와 DJ가 고문으로 참여했다.
YS와 DJ는 1987년 당의 내각제 정국 구상에 반대하며 70여명의 의원들을 이끌고 함께 탈당,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1987년 이들은 대권후보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DJ와 동교동계는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이로써 야권은 신민당, 통민당, 평민당으로 분화됐다.
이후 YS의 통민당은 여권의 민정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합당'을 했고, 이로써 야권의 주도권은 호남기반의 동교동계가 잡았다.
DJ는 평민당과 재야 운동가 등을 영입, 1991년 신민주연합을 만들었고, 통민당 중 3당 합당을 반대하며 잔류한 세력들과 합당, '민주당'을 창당시켰다.
이후 민주당은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재야세력 일부와 학생운동권 세력을 대거 영입,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3년 말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여권 개혁파인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김영춘 등과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노 대통령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 우리당에 합류했다. 당시 '486'으로, 현재 '586'으로 불리는 운동권 출신들이 당의 주도권을 잡았다.
구민주계는 새년천민주당에 남아 명맥을 이어갔다. 이들은 2004년 총선 전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것은 선거중립 위반이라며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과 손잡고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민적 역풍이 불며 새천년민주당은 9석짜리 꼬마'민주당'으로 전락했고, 열린우리당도 당내 내홍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수명을 다했다.
김한길 의원 등이 2006년 지방선거 참패 후 탈당, 민주당 탈당파, 여권에서 넘어온 손학규 세력등과 손잡고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고, 2008년 열린우리당과도 합당, '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 통합민주당은 다시 이름을 '민주당'으로 바꿨다.
민주당은 2011년 당 밖의 시민사회세력, 한국노총 등과 손잡과 '민주통합당'을 만들었고, 2012년 대선패배 후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2014년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과 합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됐다. 하지만 영남권 친노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주류와, 호남권 비주류간의 계속된 당내갈등으로 끊임없이 내홍을 겪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안철수 대표가, 올해 1월 김한길 의원이 탈당하는 등 10여명이 줄탈당, 2월2일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이로써 야권은 큰틀에서 다시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분열,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됐다.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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