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강요된 성과, 우리는 모두 해고 대상자다 / 박성식
[한겨레] 회사는 갑자기 신규 부서를 만들어 노동자 박씨를 배치했다. 그러곤 변변한 지원도 없이 실적이 부진하다며 압박했다. 김씨는 퇴근시간 이후 업무지시에 불만을 표했다는 이유로 찍혔다. 사장은 그가 직장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고 했다. 사장은 회의 일정을 변경한 뒤 김씨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회의에 불참했다며 징계하고 저성과자란 낙인을 찍었다. 실제 있었던 이 일들은 앞으로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쉬운 해고’라는 반발을 묵살하고 지난 1월22일 성과평가해고제와 취업규칙 개악 요건을 기습 발표해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성과 목표는 회사가 정한다. 지금도 직장인들은 상당한 성과 부담에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 한국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지독하게 일하는 노동자 중 하나다. 그럼에도 성과가 부진하면 임금 깎고 해고까지 시킨다니 그야말로 살벌하다. 정부는 노동자 대표가 참여해 성과평가기준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장난하냐!” 싶다. 직장인 90%는 노조가 없으며, 회사가 정한 성과평가기준에 “안 된다”며 대들 노동자 대표란 없다. 노조를 가진 10%도 안심할 수 없다. 노동부는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에 관여하는 단체협약은 불법이라며 강제로 뜯어고칠 준비를 하고 있다. 경영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이니 토 달지 말라는 얘기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하는 선진국의 상식은 여전히 이 나라에선 꿈같은 민주주의다. 노동자는 성과평가 압박에 더 죽어라 일해야 하고, 앞으론 퇴직수당도 못 받고 상시적으로 해고당하게 된다. 회사가 정한 실적목표를 못 채운 우리는 모두 해고 대상자다.
법은 성과 부진만을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고 규율하고 있고, 당연히 그런 해고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없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해고를 다룬 3만5335건의 노동위원회 판례를 보면 다른 징계사유 없이 ‘성과부진만을 이유로 해고한 사건’을 정당하다고 본 사례는 11건에 불과하다. 한 해에 한 건도 채 되지 않는다. 이 극소수 사례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 노동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고 정부가 그 난리를 벌였단 말인가? 그랬다면 엄청난 행정력 낭비이자 사회혼란 조장에 해당된다. 아니라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성과해고 압박으로 노동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상시적으로 해고하는 노동시장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시장은 이미 정부의 ‘쉬운 해고’ 신호를 감지했다. 2011년 114건이던 해고구제신청 사건이 ‘성과해고제’ 도입을 정부가 공식 표명한 2015년에는 183건으로 급증했다. 비정규직의 피해는 더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저성과 해고’ 시비는 2014년 36건에서 2015년 67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는 “불명확한 해고기준 때문에 소송이 늘었다”며 제도를 정비할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런 핑계로 정부가 잘못된 제도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오히려 해고가 늘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완만하게 증가하던 해고 사건은 △부당해고 형사처벌 폐지(2006년) △비정규직 기간제한법 제정(2007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타임오프 시행(2010~2011년) 등의 노동정책이 나올 때마다 증가했다. 결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안은 정부가 주된 책임 당사자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성장’에 더해 ‘성과’라는 악마의 화두가 일방적 지배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제껏 우리 사회는 경제를 논함에 있어 성장이라는 개념을 벗어난 어떠한 정치적 상상력도, 혁신적 시도도 할 수 없었다. ‘성장’을 위해 ‘사람의 노동’은 늘 희생이 불가피한 부속물에 불과했다. 여기에 좀더 디테일한 자본의 가치인 ‘성과’까지 더해졌다. 성과임금에 성과해고까지, 이제 모든 노동은 성과라는 채찍에 대한 맷집이라도 키워야 할 판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성과순이다. ‘쉬운 해고’ 탓에 일할 권리는 영원히 삭제되고, 무한 팽창을 요구하는 자본에 더 열심히 충성하며 빌어먹을 권리나 허락받는 삶, 노동개혁의 미래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한겨레 인기기사>
■18살 소녀는 왜 성폭행 이모부의 ‘처벌불원서’를 냈나
■ 해외 유명 테마파크, 광고에 ‘노무현 비하’ 일베 이미지
■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⑨ 취업·연애…‘좀 놀아본 언니들’이 고민 공유
■ [화보] 어마어마한 크기 지구 생물체들...키 2m 젖소, 10명이 든 보아뱀
■ [화보] 한국 여배우 열전 ‘50년’
공식 SNS [페이스북][트위터] | [인기화보][인기만화][핫이슈]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