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우리가 사는 세상] 집 떠난 가족들 다시 뭉치다

2016. 1. 3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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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울타리서 보듬고 나누고.. 차근차근 '행복 퍼즐'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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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판교동의 한 단독주택. 동갑내기 이모(36)씨 부부의 집은 하루 종일 북적인다. 맞벌이 부부지만 네 살, 여섯 살 아이 둘은 심심할 틈이 없다. 이씨 집엔 8명이 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관악구의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따로 살았다. 그러나 비싼 집세와 아이 보육 문제가 늘 마음에 걸렸다. 고민 끝에 서울에 살던 친정 부모와 합쳐 성남으로 이사했다. 이들 3대의 새 보금자리가 된 주택에는 아이들의 외삼촌과 외숙모까지 들어왔다. 이씨 부부는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살 때는 몰랐던 대가족의 기쁨을 다시 느끼고 있다”며 함께 사는 즐거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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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재구성… 핵가족에서 대가족으로

최근 들어 이씨 부부처럼 다시 부모와 함께 사는 가족이 늘고 있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대학이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부모의 건강이나 보육 문제, 비싼 주거비 부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모여 사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 업계에서는 이씨와 비슷한 이유로 부모 세대와 다시 합치려는 사람들의 건축 문의가 꾸준하다.

가온건축 임형남 대표(건축가)는 “도심의 주거비가 너무 비싸다 보니 부모와 함께 집을 합쳐 여유있는 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건축 설계 문의가 많다”며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무너진 대가족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구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1980년대 열 집 가운데 세 집(29.8%)이 6인 이상 대가족이었던 시대에서 30년 만인 2010년 백 집 중 두 집(1.8%) 정도로 줄어든 가족 구성이 다시 반등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호주 멜버른시의 공무원으로 일했던 린턴 델라(64)씨는 “독립했던 아들(30)이 금융위기 때 실직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함께 지내다 다시 취업을 하고 결혼도 했지만 계속 함께 산다”며 “예전에는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보기 어려웠지만 요즘은 성장한 자녀와 함께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녀나 노부모를 사회가 대신 돌봐주는 시대가 열렸지만 정부의 시스템에는 없는 가족의 정과 온기를 되찾기 위해 생활양식을 바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이순형 교수(아동가족학)는 “조부모 세대가 바쁜 맞벌이 자녀 부부를 대신해 손자를 봐주는 일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조부모는 몸이 피곤하지만 손자를 키우면서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고 또 다른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아이들 역시 자신을 위해 헌신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필요에 의해서든 역할분담에 의해서든 대가족이 모여서 공동 단위의 가정을 이뤄가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다만 이러한 형태가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려면 서로 어느 정도는 상대 입장에서 이해해 주는 배려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개인단위 복지 대신 가족단위 복지 부활해야

두 집 중 한 집은 1, 2인 가구인 시대다.

가족의 본질은 변하지 않더라도 그 기능이나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핵가족의 증가로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면서 젊은 사람들은 친족이나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게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한다.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를 봐도 1980년대까지 전체 가구의 4.8%에 불과했던 1인가구는 1995년 12.7% 이후 증가세를 거듭해 2010년에는 23.9%에 달한다. 1980년 열 집 중 한 집(10.5%)에 불과했던 2인가구도 2010년에는 24.3%까지 늘었다.

이에 따라 국민 평균가구원 수도 1980년 5명에서 2005년 이후 2명으로 줄었다. 가족의 재구성은 줄어든 결혼과 늘어난 이혼의 영향도 크다. 1980년 성인 1000명당 혼인율이 10건이었지만 2014년에는 6건으로 줄었다. 2014년 초혼연령도 남자 32.4세, 여자 29.8세로 계속 늦춰지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었던 결혼이 최근 들어서는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기류다.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자 비율은 1998년 73.5%였지만 2014년 56.8%로 뚝 떨어졌다. 반면 1994년 연 6만5000건에 불과했던 이혼은 2014년 11만5500건으로 늘었다. 이혼율도 같은 기간 인구 1000명당 1.4건에서 2.3건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행복감은 변하지 않았다. 

‘가족관계 만족도’를 살펴보면 2008년 41%에서 2014년 55%로 14%포인트나 올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종서 부연구위원은 “가족관계의 외형적 태도와 관련된 항목은 긍정이 높았고 가족 간 친밀한 관계 항목은 반대 결과가 나타났다”며 “가족 간의 대화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존중과 배려라는 형식적 관계는 원만하지만 내밀한 친밀성에서는 어려움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대에 따라 가족의 기능이나 외형도 변한다며 가족 간 갈등을 풀 수 있는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희대 유계숙 교수(아동가족학)는 “1인 가구 증가 등 가족 형태가 다양화하면서 가족의 기능이 축소되고 이로 인해 가족 구성원 간 갈등을 빚기도 한다”며 “가족끼리 대화와 소통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큰 인기를 끈 것도 우리 사회가 ‘남보다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몰두하느라 잃어버린 소중한 ‘가족애’를 환기시켜준 영향이 컸다. 그 시절에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친구 집에 전화를 먼저 걸고 이 과정에서 다른 가족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가 전 세계 어디에 있든 휴대전화(스마트폰)로 바로 자신과 통화를 할 수 있다. 또 SNS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정작 마음은 외롭고 허한 사람이 많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것이다.

이순형 교수는 “‘응답하라 1988’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것도 서민적 삶이지만 서로 위하는 가족애와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젠 우리가 편리함만 추구하는 삶의 자세에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고 느끼고 가족과 이웃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으로, 물질지향적인 삶보다 인간(관계)지향적인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병욱·정지혜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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