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직접민주주의 정치실험, 성공할 수 있을까

정용인 기자 2016. 1. 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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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권영국 변호사 주도 시민혁명당 창당…“평범한 시민 나서는 정치할 것”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116-6번지 범양빌딩. 찾고 보니 언젠가 건물 앞 2층 김치찌개 집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차 대기가 어려워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골목 안에 자리 잡은 낡은 빌딩. 족히 수십년은 돼 보인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건물에 거대한 현수막이 걸리는 건 여의도만의 풍경이 아니다. 지역에도 주요 상가마다 이런저런 공약을 내건 예비후보들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그런데 그 흔한 현수막도 없다. 입구에도, 당 사무실이 들어선 306호 앞에도 ‘시민혁명당’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물었다. 100일, 아니 80일도 안 남았다. 조금이라도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치와 무관해 보이는 남대문로, 왜 이런 좁은 뒷골목에 사무실을 만들었나. 진지하게 답하던 권영국 변호사의 얼굴에 긴장 풀린 미소가 떠올랐다. “현실적인 조건이죠. 돈이 없으니… 몇 달 쓰는 것으로 계약했습니다. ‘현실’이란 게 매우 냉혹합니다. 세가 모이지 않는 조직에 처음부터 많은 지지 같은 것이 쇄도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사무실 임대료나 홈페이지 서버비 같은 건 뜻이 맞는 사람끼리 갹출해서 내고 있다고 했다.

시민참여 직접민주주의 지향 정당

시민혁명당. 아직 정식으로 발족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정확한 이름은 ‘시민혁명당(가칭) 추진위원회’다. 정당 등록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선관위에 정식 등록을 하려면 5개 광역 시·도당 각 1000명씩 5000명을 모아야 한다. 안성용 창당기획단장은 “2012년 총선 당시 청년당 같은 곳에서 지하철 입구에 가판대를 설치해 모았던 것 같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5000명을 모으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당 홈페이지를 보면 구체적인 당헌·강령 같은 것도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주요 정치사안에 대한 일상적인 당의 입장도 나와야 하는데, 뚜렷하게 나오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 단장이 부탁했다. “재무도 마련되었고 회계담당도 정해져 있습니다. 조직도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갖춰진 셈이고요. 그런데 아직 공보기능이 없네요. 기자 출신 중에서 이직 중이라 쉬는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5년 12월 2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칭) 시민혁명당추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장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시민혁명당 제공

당이 공개하고 있는 추진위원 명단을 보면 자영업과 노동, 청년, 농업, 중소기업인, 예술인, 종교계 등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명망가 위주라기보다 보통사람들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보통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 직업 정치인이 아닌 보통 생활인이 나서는 정치. 그것으로 시민혁명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의 말이다. “기존 정치체계는 사실 특정세력이 정치영역을 독점하거나 장악하는 구조였다. 다수의 시민들, 실제 주권자들을 대상화하는 정치였다. 정치의 주체가 아닌 객체였다. 이들 다수의 시민은 선거 때만 유일하게 주인 대접을 받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배신의 정치’로 본다. 이런 것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옳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미 루소도 <사회계약론>에서 지적한 말이다. “영국인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들은 의회의 의원을 선거할 기간만 자유로울 뿐이다. 의원을 선출하고 나면 곧 그들의 노예로 전락한다.” 권 변호사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그렇다면 일반대중들을 실제 주권자로서 어떻게 실제 정치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을 두고 고민을 시작했다. 주인이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기가 참여해서 의사를 피력하고, 그 의사가 결정에 반영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뭔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권한을 위임하는 것을 말한다. 위임된 권한을 되찾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수직적인 의사전달방식, 일방적으로 지지를 요구하고 ‘나를 따라주세요’ 이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가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직접민주제’. ‘인민의 주권은 대표될 수도, 양도될 수도 없다’는 루소의 테제가 실현가능한 물적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월 22일, 홍대 앞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정치플랫폼 ‘움직여’ 시연회에서 안성용 시민혁명당 추진단장(검은 옷에 마이크 든 이)이 ‘움직여’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시민혁명당 제공

1월 22일, 온라인 정치플랫폼 ‘움직여’(http://movenow.kr)의 시연회가 열렸다. 시민혁명당이 중심이 된 ‘움직여운영포럼’이 운영하는 정치토론 온라인 공간이다. 외부적으로 봤을 때 ‘채널’과 ‘광장’의 두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로그인을 하면 ‘그룹’과 ‘내방(마이페이지)’ 메뉴가 새로 보인다. 안 단장은 이 토론사이트의 이름을 ‘움직여’로 정한 것은 미국의 온라인 정치시민단체 ‘무브온’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있지만, 정치적 견해가 다른 모든 세력이 하나로 모여 토론을 통해 ‘아이디어’를 내고 의제를 형성하는 기능 때문이라고 했다. “핵심은 누구나 자기가 의제를 만들어 올릴 수 있고, 의제에 대해 찬반 추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제를 만들어 올릴 때도 세부 항목을 최대 7개까지 선택지를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죠. ‘무상교육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냐’나 대학등록금 제도에 대해 묻는다면 수십개의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겠죠. 그 중 다수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가는가를 서로 알 수 있고, 운영하는 주체 쪽에서 의식적으로 방향을 선택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일반 개인이 의제를 내고, 찬반 관련 항목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전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정치토론 온라인 플랫폼 ‘움직여’의 가능성

처음일까. <주간경향>은 2007년 다음 아고라와 블로거뉴스의 가능성을 주목하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썼다. 아고라의 ‘집단지성’은 한 해 뒤인 2008년 폭발했다. 아고라를 운영하는 포털다음이 규제를 당하고, 이른바 ‘작전세력’의 도배로 황폐화되면서 다른 형태의 ‘집단지성’ 온라인시스템을 모색하는 경우는 여럿이었다. 2008년 촛불 이후 시민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는 하나의 큰 화두였다. 아고라와 유사한 형태의 독립적인 정치토론 사이트 기획안을 들고 기자를 찾아온 사람들만 하더라도 얼추 5~6팀은 된다. 정치세력화 움직임도 있었다. 촛불시민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정치연합’이라는 정치참여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8년 ‘아고라 촛불’을 대표했던 인사가 2010년 지방선거에 도전하기도 했다. “촛불시민연대 등 다양한 흐름이 있었던 것은 압니다. 하지만 시민혁명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안 단장은 ‘채널’은 시민혁명당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 이를테면 녹색당이나 정의당과 같은 다른 정당들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실시간으로 투명한 의사결정, 토론을 통해 의제가 풍부하게 살을 붙이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새누리당도 채널에 들어와 의제를 만드는 것을 대환영합니다.” 시스템을 만들어놓으면 정당들이 이름을 걸고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는 걸까.

밀리언달러 홈페이지라는 것이 있었다. 알렉스 튜라는 학생이 대학 학비를 벌 목적으로 만든 사이트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홈페이지를 1000×1000 픽셀 그리드로 나누면 약 100만 화소다. 10×10 화소당 1달러에 분양한다. 분양받은 사람은 거기에 자신의 로고나 그림 등과 함께 링크를 넣으면 광고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100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의 페이지가 유명세를 타자 경쟁적으로 업체들이 모여들었다. ‘성공사례’가 알려지자 따라하는 유사 페이지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모방하는 회사들이 여럿이었다. 따라한 나머지들은 다 실패했다.

알렉스 튜라는 학생이 학비를 벌고자 만들었던 밀리언달러 페이지. 페이지가 성공하자 따라하는 사이트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겼지만 모두 실패했다. 리퀴드 피드백 시스템의 운명도 그런 것일까. /http://www.milliondollarhomepage.com/

시민혁명당을 추진하고 있는 권 변호사의 문제의식도 다르지 않았다. “기계나 도구가 정치를 대신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움직여’와 같은 시스템은 참여하는 방법이나 도구로 기능하겠죠. 그러기 때문에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여는 시민들의 몫입니다. 결국 아무리 온라인 공간이 열려 있다고 하더라도 참여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겠죠. 유럽 일부에서 성과를 냈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그런 의사결정구조를 도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보더라도 참여하는 사람의 의지와 열정,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안 단장이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는 것은 선택지의 다중화이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리퀴드 피드백 시스템의 의사결정방식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슐츠방식(Schulze Method)에 따른 선호도 투표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슐츠방식이란 찬성 또는 반대가 아니라 찬성, 반대, 혹은 유보 등을 포함해 여러 개의 선택항을 주고, 선호하는 순서대로 투표하는 방식이다. 여러 사람들의 선택 결과가 더해졌을 때 그 결과는 찬성이나 반대로 요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액체(liquid)처럼 흐르는 의사결정구조다. 이 원리는 실제 정당 의사결정과정에 도입되어 사용되었다. 최초 케이스는 스웨덴과 독일의 해적당이다.

유럽에서 돌풍 일으킨 ‘리퀴드 민주주의’

해적당은 당의 구체적인 정책과 노선을 전부 온라인에 개설된 이 리퀴드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결정했다. 투표는 당원만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전부 온라인으로 공개되었다. 2015년 12월, 스페인에서 30년 양당체제를 깨고 3당으로 부상한 포데모스의 경우도 리퀴드 민주주의를 적극 채용하고 있다. 레딧과 같은 기존에 존재해온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하고, 루미오와 같은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정책을 결정했다. 포데모스의 경우 실제로 집권에 성공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결정에도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09년 독일 해적당이 일으킨 돌풍과 원내 진출은 리퀴드 피드백 시스템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해적당은 그 후 국제적인 조직이 되었다. 2016년 1월 29일 현재, 해적당 인터내셔널(PP International)에 실린 정보에 따르면 69개국에 해적당이 만들어져 있다. 한국 해적당(pirateparty.kr)도 링크되어 있으나 현재는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돌풍에 그쳤다. 독일의 경우 2012년에는 한때 13%의 지지율로 녹색당을 추월하기도 했지만 몇몇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지지율은 급락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베를린 지방의회에 참석한 해적당 당원은 시정질의에서 “베를린은 좀비의 습격에 얼마나 대비되어 있나”를 물었다. 정치를 엔터테인먼트화한다는 비판이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해적당은 1.45%의 지지율에 그쳤다.

2015년 12월 20일, 스페인 총선 결과 30년 양당구도를 깨고 포데모스가 3당으로 부상한 것이 확인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직접민주제적 운영원리를 표방하는 시민혁명당은 한국 정치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직접민주주의 연구자로, 최근 <대한민국민주주의 처방전>을 펴낸 소준섭 박사(국제관계학)는 “의도는 좋고 국제적으로 여러 유사한 상황 전개가 있는 것도 맞다”면서도 “현실적인 조건이 결여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현실적 조건’이란 무엇일까. “촛불시위나 지난 2년간의 세월호와 같은 광장에서 좀 더 대중적인 인물이 나왔어야 한다.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이 붙은 권영국 변호사가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운동판’에서 권영국 변호사는 널리 알려졌고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예를 든다면 연예인 김제동씨나 김장훈씨와 같은 ‘대중적인 스타의 합류’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좀 더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스페인의 포데모스를 이끄는 파블로 이글레시아는 1978년생이지만 2003년부터 인터넷이나 TV 시사프로그램, 한국식으로 말하면 ‘썰전’과 같은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세를 떨쳐온 인사다. 포데모스와 함께 거론되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을 주도하는 베페 그릴로 역시 우연히도 희극인 출신 정치인이다.

직접민주주의와 플랫폼 정당에 대한 논의가 진보진영 내에서 뜨겁지만 정작 제일 먼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온라인 정당 실험을 한 쪽은 새누리당의 크레이지 파티였다. /https://www.crazyparty.or.kr/

플랫폼으로서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온라인 정당 실험은 사실 새누리당에서 먼저 했다. 새누리당이 ‘당신의 투표가 대한민국을 바꿀 때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지난해 3월 론칭한 모바일 정당 ‘크레이지 파티’(크파)가 그것이다. 크파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운영은 지난해 5월에 멈춰 있다. 김석수 직접민주연구원 원장은 “크레이지 파티의 경우 직접 민주제로서 리퀴드 피드백의 원리를 가장 먼저 도입해 화제를 모았지만 민도(民度)가 따라가지 않아 망한 것”이라고 말한다. 김 원장은 온라인에서 의제 만들기보다 오프라인에서 토론을 통한 합의를 도출하는 ‘교육’이 직접민주제 원리 도입에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공감토론’이라는 이름의 전국 순회 토론회를 여는 데 더 집중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형 직접민주주의 모델들의 ‘경험’

“오랜 고민이 있었다. 집단지성이라고 포장하지만 뜯어보면 소수를 배제한 단순 다수결, 흑백논리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토론이 서로가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결국 서로 공격하고 상처주고 비난하기 위한 것이 그동안 우리나라의 토론문화였다. 숙의민주주의, 토론민주주의를 온라인에서 구현해보자는 것이 처음의 목표였다.” 문태룡 시민의날개 기획단장·민주주의3.0 연구소 이사의 말이다. 2012년 여름, 서대전역사에서 뜻을 같이하는 30~40명을 모아 온라인 운동에 대해 발제를 한다. 캠페인과 청원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한편 토론 및 의사결정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한 것이 독일 해적당의 리퀴드 피드백 시스템을 가지고 와서 한글화하는 것이었다. 여러 단체에 무료로 배포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작동이 안 되었다. 독일과 우리나라의 토론문화 자체가 다른 면이 있다. 2012년 대선이 끝나고 다시 순수 한국형 토론 및 의사결정 솔루션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의기투합했다.”

리퀴드 피드백 시스템을 넘어 한국형 직접 민주주의 모델로 곧 선보일 ‘시민의 날개’ 현재는 테스트 버전 단계다. /http://vving.org/

그 결과 나온 것이 또 다른 한국형 직접민주주의 온라인 모델인 ‘시민의날개’다. ‘국민의명령’ 프로그램을 추진하던 문성근 대표와 민주주의3.0연구소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모델이다. 현재 개발 중인 크고 작은 한국형 직접민주주의 모델은 여럿이다. 과거 다음 아고라·블로거뉴스를 만들었던 팀의 개발자 5명이 다시 뭉쳐 만들어낸 빠띠(Parti)의 경우도 ‘민주주의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는다. 빠띠를 만든 ‘빠흐띠’의 권오현씨는 “일상적인 조직이 의사결정에서 온라인상 공론장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고안한 것이 빠띠”라며 “아직 뚜렷한 수익모델은 없지만 일종의 공익적 성격을 갖는 개발이라 뜻이 있는 분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이슈로 정당을 조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상황이 되었다. 해적당이 처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저작권이라는 단일 이슈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이 지속적으로 기능하려면 ‘올 어라운드 정책’이 있어야 한다. 해적당이 이후에 실패한 것이 그 부분이었다. 해적당이 내걸었던 리퀴드 피드백을 보면 인터넷 이슈는 토론이 잘된다. 하지만 외교정책, 난민정책, 그리스 경제정책에서는 중지가 모아지지 않았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해적당이 돌풍을 일으킬 당시,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해적당과 독일녹색당과 같은 대안정당의 활동에 대한 리포트를 발표했다. “해적당은 실패하고 녹색당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녹색당의 독특한 당 운영 시스템이다. 녹색당은 정당강령 상에 당 대표뿐 아니라 소위원회를 비롯한 모든 조직을 2인 체계로 간다. 한 명이 다수파라면 다른 한 명은 소수파를 대표한다. 소수파 활동의 자유를 보장할 뿐 아니라 다수파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정립하고 언제든지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둔 것이 조직에 대한 룰이 없었던 해적당과의 차이다.”

한국에서 ‘시민혁명당’과 같은 직접민주주의 정당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해적당과 녹색당의 교훈을 보면 성패 여부는 완벽한 물질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그것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제도를 만드는 것도, 이끌어 가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이었다”

인터뷰-시민혁명당 추진 권영국 변호사

시민혁명당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권영국 변호사 /이상훈 선임기자

그는 늘 ‘현장’에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거리의 변호사’다. 별명을 공유한 변호사는 또 있었다. 1987년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현장에 함께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시민혁명당’을 주제로 권영국 변호사를 섭외하던 날, 역시 민변 출신으로 세월호 사건에서 ‘광장의 변호사’ 역할을 했던 박주민 변호사의 더민주당 입당 발표가 있었다. 사실, 권 변호사가 살아온 이력이나 경력을 보면 정치로 넘어가더라도 이야기가 안 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야권의 어느 정당이라도 ‘안정적 당선권 안의 비례후보’로 탐낼 만한 인물이다. 그런데 왜 그는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걸까. 1월 27일, 시민혁명당 사무실에서 권영국 변호사를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출마할 생각인가. “물론. 현실적으로 출마할 생각을 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 출마할 계획이다.”

-어디서 할 생각인가. 사는 동네에서 출마하나.

“지역구 선거지만 국회의원은 사실 국민 대표를 의미한다. 그 사람이 어디에 거주했냐 안 했냐 여부는 국민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부합하는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 시대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국회의원은 걸어다니는 입법기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87년 체제로 만들어진 소선구제-승자 독식의 현 시스템에서 자치단체 의원이 해야 할 일부 역할을 국회의원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구체적으로 출마를 한다면 지역 민원이나 개발공약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아무래도 지역 주민들이 갖고 있는 현실적 고충도 고려하긴 해야 한다. 국민 대의를 가장 잘 반영하기 위한 대표로서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지나 열정이 있다면 주민들의 고충이나 지역 문제점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언제부터 논의가 시작됐나. “지난해 12월 20일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창당준비위원회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개되었지만 훨씬 오래전부터 고민은 시작됐다. 기존 보수 양당체제가 현실을 합리화하는 정치체계인 것처럼 굳어지면서, 기존의 정치 흐름을 바꿔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기존 정치구도가 해결할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해 매우 의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은 새로운 판을 짜는 형태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세월호 특별법 추진과정을 보라. 세 번인가 여야 합의가 이뤄졌는데, 국민의 눈이나 유가족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합의가 아닌 야합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600만의 국민 서명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계속 문제제기를 했는데도 국민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다. 정말 국민들의 아픔을,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정치를 간절하게 느꼈다. 지난해 봄부터 의견을 주고받았고 실제적인 추진은 5월부터 진행되었다.”

-당의 형태다.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나.

“당연하다. 정치실험을 하겠다고 시작한 것 아니다. 기존의 정치에서 대상화되었던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형태의 정치를 새롭게 만든다는 목표다. 새로운 새판짜기의 당면 목표 중 하나는 권력교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불평등의 고착화, 민주주의의 파괴로 가고 있다. 이 전체를 뒤엎어 권력을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교체를 주장하는 것인가.

“당 이름에 ‘혁명’이 들어간 것에 대해 주변에서도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 혁명이라는 말을 뜻풀이하면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바꿔내는 것이다. 혁명의 주체가 시민이 되는 것이 시민혁명이다. 어떤 식으로 힘을 결집해 낼 것이냐는 질문이 있을 텐데, 그것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후보는 몇 명이나 내나. 현실적으로 당선할 것으로 보는가. “당선 여부를 떠나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존 정당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대 총선에서 시민혁명당으로 나올 후보는 10명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최소 대선까지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권력교체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서 중요한 것이 현재 정치적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적 흐름을 주도하는 쪽이 권력교체에서 주도권을 가질 것이다.”

-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무모하다’는 말이었다. ‘뜻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되겠나’와 같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니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도 들었지만, 그 반응은 ‘일단 지켜보겠다’로 보인다. 간혹 가다 이런 반응도 들었다. ‘역시 권영국 변호사답다’는 말. 고맙다. 어디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가졌던 생각이 앞서 말한 새로운 부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선택은 여전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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