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야권 지도자의 '전직대통령 참배 정치'..그 목적과 실제
[경향신문] 새해 첫 날, 당 지도부가 구성된 첫 날 일정엔 어김 없이 기자들의 카메라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으로 향한다.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몰려가는 첫 번째 ‘순례지’이기 때문이다. 순국 선열들에게 예를 갖추고 시작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자리라는 점도 있지만, 어찌 보면 자신들의 미래를 ‘기원’하고 전략적인 노림수를 두는 의미도 커졌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야권에서의 참배는 그 의미가 여당에 비해 크다. 전직 대통령의 묘역 중에서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할 건지 여부가 어느 순간부터 중요해졌다. 야당에 대한 오랜 박해와 민주주의 후퇴의 상징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참배를 하지 않던 야당이 이들을 찾기 시작하면서 내부에서부터 설전이 벌어지기 일쑤다. 결국 정권탈환을 위한 ‘외연확장’과 ‘통합’ 등을 노린 전략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때마다 내부에서부터 나온는 ‘정체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야권에서 두 전직 대통령 참배 논란의 신호탄을 쏜 것은 안철수 의원이다.
2014년 무소속이었던 안 의원은 자신이 주도하던 ‘새정치추진위원회‘의 새해 첫 날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다. 이례적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자 진보·보수 진영 양쪽에서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안 의원은 당시 현충탑에 헌화·분향한 뒤 김대중·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순으로 묘역을 참배했다. 전직 대통령 묘역을 모두 참배한 것에 대해 안 의원은 “역대 전직 대통령들에게는 공과가 같이 있어서 공은 계승하고 과는 극복해야 하는 게 우리 후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여론은 들끓었다. 여론은 “새해 첫날 박정희 묘소 가서 향피우고 절하는 것이 새정치인가” “현대사 모순의 뿌리에게 참배하며 새정치를 외치는 것은 기만이고 사기”라고 비판했다. 보수 측에선 “영남표 좀 훔쳐가려는 작전”이라고 폄훼하면서 소동을 빚었다.
안 의원은 앞서 2012년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다음날 첫 일정에서도 이들 대통령들의 묘역을 참배해 같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민주당과 각을 세우던 신당 세력으로서 안 의원의 이 같은 참배는 ‘중도까지로의 외연확대’ 수로 해석됐다.
문재인 전 대표도 지난해 2·8 전당대회로 당 대표가 된 이후 첫 일정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야당 대표로선 처음으로 참배하면서 논란의 주인공이 된 바 있다.
문 전 대표는 “국민통합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참배 이유를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차기 대선 주자이기도 한 문 대표로선 ‘내가 통합을 이룰 사람’이라고 알리는 여론전 성격의 참배인 측면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참배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반대편까지 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중도로의 외연확장도 꾀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때에도 어김없이 지지자들과 당내 반발이 거겠다. 정청래 최고위원 등은 참배에 불참했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 현장이나 히틀러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느냐”,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천황의 묘소에 가서 절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맹비난까지 퍼부으며 대립을 하기도 했다.
올해 초엔 다시 안 의원 측이 똑같은 논란을 반복했다.
안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추진위원장이 지난 14일 국립4·19민주묘지 참배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부(國父)’라는 발언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 각 계에서 비판이 들끓고 쏟아졌다.
“과거의 통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등의 맞대응은 파문을 일파만파로 키우기까지 했다. 당사엔 4·19 유가족들이 몰려와 항의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발언 닷새 만에 한 위원장은 고개를 숙였다. 한 위원장은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를 찾아뵙고, ‘이승만 국부’ 호칭으로 마음의 고통을 받으신 데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호된 질책과 함께 귀한 지혜를 주셨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참배 자체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이에 대한 말 한마디로 많은 것을 잃은 경우다.
문 대표 사퇴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새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어김 없이 28일 4명의 전직 대통령 묘역을 모두 방문했다.
그간의 논란을 알고 있다는 듯 김 위원장의 반응은 확연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선 “나라를 처음 세운 면에선 ‘국부(國父)’지만, 자신이 만든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공과가 있음을 인정했다.
야권 지도자로선 분열·불통을 끝내고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전직 대통령의 묘역 참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결국 진정성 없는 이벤트성 방문은 역효과만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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