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쓰러뜨린 국가는 저렇게 뻔뻔한데.."

2016. 1. 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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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21] 물대포 맞고 쓰러진 백남기씨 큰딸 도라지의 1월.
“정부의 뻔뻔한 무대응… 11월14일 이후 모든 게 멈췄다”

2015년 1월12일, 60여 일째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진 아버지를 하루 두 번 면회하며 보내는 백남기씨의 큰딸 백도라지씨를 만났다.

백도라지씨의 하루는 오전 10시30분, 저녁 8시에 맞춰져 있다. 하루 두 번 아빠를 만나는 시간이다. 아빠 백남기는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63일째(2016년 1월15일 기준. 제1088호 표지이야기 ‘형님 건배사는 지켜야 하지 않겄소’ 참조) 누워 있다. 딸의 시간도 그때부터 멈췄다. 딸은 회사를 휴직한 채 매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과 집을 오간다.

1월11일, 딸은 충남 홍성지원에서 아빠 백씨에게 살수한 차가 찍은 영상을 확인했다. 백씨가 증거 보전 신청하고 법원이 허용함에 따라 경찰이 제출한 영상이다. 경찰은 법원이 살수차가 찍은 영상을 제출하라고 명령한 지 한 달 뒤에야 해당 영상을 제출했다.

“안 보였다는 경찰의 말은 명백한 거짓말”

강신명 경찰청장은 사고 열흘 뒤인 11월2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살수 조작 요원은 살수차 모니터를 통해 현장을 조망했으나, 물보라가 화면을 가린데다 시위대가 주변에 몰려들어 농민이 넘어진 것을 보지 못한 채 살수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백남기씨를 쓰러뜨린 살수차가 찍은 영상에서 백씨는 분명하게 식별됐다. 백도라지씨는 “경찰 말과 달리 살수차가 찍은 영상을 보니 사람이 누워 있는 게 식별 가능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살수대가 농민회 파란 조끼를 입은 아버지를 쏘고 잠시 이동했다가 다시 아버지 쪽으로 왔을 때는 아버지가 바닥에 누워 있고 다른 분들이 아빠를 구조하러 오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백씨는 “‘안 보였다’고 말한 건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백도라지씨를 지난 1월13일 서울대병원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났다. 매일 열리는 오후 4시 백남기 쾌유 기원 미사가 끝난 뒤였다.

지금 아버지 상태는 어떠신가.

의식 없이 누워 계신 건 지난해 11월14일부터 지금까지 똑같다. 뇌뿌리가 손상되고 대뇌 절반 이상이 손상돼 의식을 찾을 수 없다. 호흡을 쉽게 하기 위해 기관지 절개를 한 뒤인 12월 초 ‘의식이 돌아오는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의료진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뇌파가 확인돼 뇌사 상태는 아니다. 자발적 호흡이 없기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도 아니다. 식물인간과 뇌사, 그 중간 어디쯤에 아빠가 있다.

대신 중간중간 여러 가지 시술을 받고 있다. 처음에 폐렴이 와서 폐렴 치료를 했고, 그 뒤 혈액에서 균이 검출돼 패혈증 치료를 했다. 뇌하수체가 눌려서 소변량이 왔다갔다 하면 약을 주사하고, 혈압이 왔다갔다 하면 혈압약을 맞으신다. 얼마 전에는 폐가 호흡을 잘 못해서 사진을 찍어봤더니 왼쪽 폐가 작아져 기관지 내시경을 통해 기도에 낀 핏덩어리를 발견했다. 시술을 통해 제거했다. 그런 치료를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받고 계시다. 의료진은 이 상태로 6개월을 지낼 수도, 1년을 지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루 두 번 면회는 계속 하나.

법원에 가거나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일 등이 면회 시간과 겹칠 때를 제외하면 간다. 들어가면 아빠에게 “딸 왔어요” “지금은 아침이야” “지금은 저녁이야” 이야기해드린다. 손발에 로션을 발라드리고.

손발은 따뜻한가.

건강한 사람에게서 ‘손발이 따뜻하다’는 의미와 아빠 손발 온도의 의미는 다르다. 손발이 따뜻하다는 건 지금 체온 조절이 안 돼 뜨겁다는 얘기다. 그러면 선풍기를 튼다. 체온이 내려가면 온풍기를 틀고. 손발의 온도는 인위적으로 체온을 맞추기 위한 알람 같은 거다.

“시스템이 없는 나라… 후지다”

경찰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참가자 585명에 대한 사법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수사 대상자만 1531명이라는 보도도 있다. 민중총궐기 참가자에 대한 수사본부에 경찰 99명이 배치됐다. 경찰의 이런 대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경찰이 어떤 기준에 따라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지 이해하기 매우 힘들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혹 수사를 한다면 단순 집회 참가자를 조사하는 일과, 집회에 참가했다가 공권력에 의해 죽음 직전의 상태에 이른 한 사람에게 벌어진 일을 조사하는 일 중 어떤 일이 우위에 있어야 하는 건가?

식물인간과 뇌사 그 중간 어디

지난번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직접 조계사 현장에 간 것부터가 ‘시스템’이 있는 조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교통방해죄로 수배된 사람을 연행하기 위해 서울 경찰을 이끄는 수장이 가야 하는 건가? 그렇게 시스템이 없는 조직의 자의와 우연과 고의에 의해 국민 한 사람이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렀다. 세월호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렇게 후진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후지다.

강신명 경찰청장, 구은수 서울청장 등을 ‘살인미수’ 등으로 고발한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고발한 지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17일에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전남 보성군 농민회장님과 함께 가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사받았다. 검사가 여러 가지를 물었다. 우리가 조사받은 것만큼 이 문제가 철저하게 수사되기를 바란다.

대통령 면담 신청도 했다.

정부가 쉽게 사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무대응’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이 선거 기간에 약속한 공약 사항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그에게 권력을 위임할 때는 그 약속 이행을 전제하고 위임한 것이다.

아빠를 비롯한 농민들은 민중총궐기에서 ‘쌀값 보전’을 약속한 정부 공약을 이행하라고 주장하기 위해 갔다. 쌀값은 보전은커녕 박근혜 정부 들어서 더 떨어졌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대국민 담화를 했다. 국민을 향해서 하는 말이라면 적어도 국민이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농민 정책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했다. 우리 아버지 문제는 물론이고, 위안부 합의 건에 대해서도 질문에 답하기 전에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진실’을 언급하는데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언급하면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은 진실의 힘인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는 우리 국민들의 안위를 철저히 지키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실’을 대면하려조차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도 소극적 차원의 ‘거짓’이다. 아예 그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가식이고 거짓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쓰러진 사건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입에 올리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2015년이 참 싫겠다.

2015년에 정부가 저지른 마지막 악행이 ‘아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2월28일 기가 막힌 합의를 했다. 게다가 외교부 직원들이 혼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보상 등을 말한다고 한다. 너무 화가 났다. 이 정부는 제일 약한 사람들만 골라서 조준하며 고통을 주고 있다. 농민, 노동자, 여성. 그런 현실이 화가 난다.

올해의 시작은 여느 해의 시작과 다를 것 같다.

부모님은 평소에는 1월1일에 떡국을 끓여 드시고 동네 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시곤 했다. 어릴 때는 나도 같이 해돋이를 봤다. 부모님에게 그런 소박한 일상은 이제 없어졌다. 나에게 새해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11월14일 이후 모든 게 멈췄다. 아빠 상태는 똑같고, 경찰이 사과하지 않고 정부가 사과하지 않는 것도 똑같다. 끝난 게 없으니 무언가를 새로 계획하거나 시작할 수도 없다. 문자 그대로 나이만 한 살 많아졌다.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페이스북 등을 보면 시민들의 응원은 많다.

너무 고맙고 힘이 된다. 아빠를 위한 미사에 매번 시민들이 와주신다. 미사가 끝나면 손잡아주시고. 병실로 찾아오시기도 한다. 죽을 끓여주시고, 선물을 가져다주신다. 1990년대 초반 우리 집으로 농활을 왔던 서울대 의대·간호대 분들이 다들 의사 선생님, 교수님이 돼서 중환자실로 오셔서 그때 사진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있어 아무도 모르지는 않는구나. 혼자는 아니구나, 안도감이 든다.

새해 소원이 있다면.

책임자는 물론 지휘체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고 진심으로 하는 정부의 사과를 받고 싶다. 그리고 매일 아빠가 일어나길 바란다. 매일 아빠가 깨어나길 바란다.

백도라지씨는 단단하다. 1월14일, 60일이 넘도록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정부를 향해 담대한 목소리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울고불고해서 아빠가 일어나신다면 그러겠지만 그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1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세 번 눈물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자신을 부를 때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큰딸”이라고 말했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 11월14일 파란 비닐봉지에 담긴 채 건네받은 아버지의 셔츠와 등산화, 캡사이신 냄새를 지우기 위해 박박 씻어야 했던 묵주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1월6일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해 초대받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하례식 이야기를 할 때였다.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해 울다

“여기저기서 탄압받는 사람들이 왔다. 세월호 문제로 싸우는 분, 청년주거 문제 활동가,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을 하는 분, 소녀상 지킴 활동을 하는 대학생, 민주노총 부위원장, 그리고 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침낭도 뺏긴 채 벌벌 떠며 바깥에서 자는 대학생이 내 손을 잡고 계속 울었다.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우리가 잘 못 싸워서 아버지가 그렇게 됐다’며 ‘미안하다, 죄송하다’고 하염없이 울었다. 왜 국가로부터 상처받은 사람이 미안해하는지. 정작 아빠를 쓰러뜨린 국가는 저렇게 뻔뻔한데….” 국가의 폭력에 일상을 송두리째 뺏긴 백씨 역시 또 다른 피해자들을 향해 울었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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