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겨도 '통제불능'..경남 무상급식 중단 사태

김정훈 기자 2016. 1. 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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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남도가 학생 무상급식 식품비 지원을 중단하면서 지난해 4월1일부터 유료로 전환한 무상급식 사태가 벌써 한해를 맞고 있다. 곧 새학기가 시작하지만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아픔을 외면한채 ‘네 탓 내 탓’만 하고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무상급식 문제가 도지사·교육감 주민소환으로 이어지면서 관권동원과 불법 서명운동이 자행되면서 대검찰청의 지휘를 받는 경찰의 수사까지 받게 됐다. 그러나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의 방조로 교육감 주민소환 불법 서명 사건의 윗선까지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인 51만명의 서명부가 폐기되면서 늑장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지난해 11월 첫 회동을 하고 무상급식 실무자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평행선만 달리며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경남 무상급식 전국서 처음 시행

경남 무상급식은 2007년 거창군이 자체 재원을 마련해 시작했다. 남해군·하동군 등 도내 전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2014년말 기준 법적으로 지원을 의무화한 저소득층·특수학교 학생 6만6000여명 포함해 초중고 28만5000여명이 무상급식 혜택을 받았다. 경남 전체 학생(44만여명) 10명 가운데 6.4명이나 무상급식을 받은 셈이다. 앞서 경남도와 교육청은 2010년 8월 무상급식 4개년 계획에 합의하면서 2014년까지 시지역 고등학생 9만여명을 제외한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홍준표 경남지사와 진보 성향의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부임하면서 무상급식에 먹구름이 예고됐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박종훈 경남교육감

■‘보편 대 선별’ 복지 논란 ‘전국 이슈화’

경남도는 2014년 11월 도가 급식비 일부를 지원하는 만큼 경남지역 초중고 90개 학교를 대상으로 무상급식비 사용 또는 계약 실태에 대해 특정감사에 들어 간다고 밝혔다. 행정기관이 무상급식 문제로 교육청이 관할하는 학교를 감사하기는 처음이었다. 도교육청은 즉각 불쾌감을 나타내며 반발했다. 박 교육감은 감사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홍 지사는 ‘감사 없는 지원은 없다’며 급식비 지원을 중단하고 대신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을 펼치겠다고 지난 2014년말 밝혔다.

당시 홍 지사는 급식비 지원중단 이유로 교육청의 감사 거부를 들었지만 더 큰 의도는 ‘선별적 복지’라는 국가적 정책에 이슈를 선점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홍 지사는 “국가의 재정능력을 고려한 책임있는 복지정책만이 재정파탄을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좌파의 선동논리에 밀려 국가재정능력을 고려치 않는 무상복지는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육감은 “무상급식도 교육”이라며 “학생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보편적 급식이 필요하다”고 맞받아쳤다.

■유상급식 전환, 농촌지역의 거센 반발

도와 교육청의 양보 없는 싸움에 지난해 4월부터 무상급식이 유상으로 전환됐다. 경남 전체 초중생 44만여명의 학생 중 특수·저소득층·100명 이하 학교 학생 등 7만2890명 제외한 21만여명이 1인당 연간 60~70만원의 밥값을 내고 먹어야 했다.

유상급식 전환으로 도시보다는 농촌과 도농복합 지역의 반발이 더 거셌다. 무상급식이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먼저 시작한데다 도시보다 소득이 적으면서 급식비는 더 많이 내야했기 때문이다. 특히 농촌은 농사를 짓는 특수성 때문에 자녀를 학교 외에는 맡길 곳이 부족해 더욱 어려움을 호소했다. 2015년 3월말 기준 전교생 1000명 이상 도시 초등학교의 평균 급식 단가는 1850원이다. 반면 100명 미만 농촌 초등학교는 3080원 수준으로 농촌지역의 급식비가 2배로 많다.

경남 시민단체와 학부모, 교사, 학생 등 3000여명이 지난 2014년 12월20일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지고 있다.

무상급식 중단 이후 일부 농촌 학교는 예산부족에 따른 급식비 단가를 낮추려고 일반 농산물보다 10~20%가 비싼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과 계약을 끊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무상급식 중단으로 친환경 생산 농가와 납품 자영업자들도 직격탄을 맞았었다. 일부 학부모와 농민들은 솥단지를 내걸고 아이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하거나 시·군별로 사회관계망서비스인 ‘밴드’를 만들어 도의원과 시·군의원들을 상대로 유상급식 반대 문자 보내기 등 집중행동도 했다.

지난해 4월1일 경남 진주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솥단지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급식을 하고 있다.

■경남도의회의 선별적 무상급식 중재 ‘무산’

도의회는 지난해 5월 선별적 무상급식 중재안을 내놓았다. 중재안은 당시 전체 43만여명 초중고생의 학부모 소득수준에 따라 급식을 차등으로 제공해 총 22만6500여명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도교육청과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는 중재안에 ‘선별적’이라는 단어에 민감함을 보였다. 박 교육감은 “도의회의 선별적 중재안은 교육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이라며 거부했다. 대신 교육청과 지자체가 5대5 식품비 분담비율로 2014년 무상급식 수준으로 급식 정상화를 추진하자고 역제안을 했다.

경남도의회 의장과 경남도청, 도교육청 관계자들이 지난해 5월 무상급식 중재안에 대해 협의를 했지만 무산됐다.

대부분 학부모도 “무상급식을 줬다가 빼았는 게 어디있느냐”며 “도의회의 중재안은 결국 아이들이 차별을 받으며 학교급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거부했다. 이후 경남도가 지난해 10월 또다시 경남교육청·교육지원청·일선 학교를 상대로 무상급식 특정감사에 착수한다고 하자 박 교육감은 “홍 지사 임기동안 급식비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체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2016년 새학기 전 급식문제 해결 ‘불투명’

홍 지사와 박 교육감이 지난해 11월 첫 회동을 하면서 학교 무상 급식 중단 사태 해결을 위한 실무자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도와 교육청이 3개월 동안 4차례에 걸쳐 실무협의를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측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최근 홍 지사는 “박종훈 교육감이 천명한대로 도의 지원 없이 경남형 급식모델을 발표해 신학기 학교현장의 급식혼란을 예방하라”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있는 경남도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며 “다만 도교육청은 경남형급식 준비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 무상급식 중단의 책임을 전가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경남도가 먼저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왼쪽)와 박종훈 도교육감이 지난해 11월 도의회 의장실에서 첫 회동을 하고 무상급식 중단 사태 해결을 위한 실무자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양측 협의 최대 쟁점은 학교급식 지원 기준이다. 학교 급식비는 식품비와 운영비, 인건비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도는 급식비 지원 기준을 식품비만으로, 반면 도교육청은 식품비에다 운영비와 인건비를 모두 합친 전체 급식비로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들을 고수했다. 이에 경남도는 305억원을, 도교육청은 673억원을 각각 지원 기준으로 산출해놓고 있다. 두 기관의 주장에 368억원 차이가 나는 셈이다. 오는 29일 제5차 실무자협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홍 지사는 최근 “해법을 찾을 때까지 매일 실무자협의를 벌이라”고 지시를 했다.

■홍준표 주민소환 서명 36만명 넘어 ‘현실화’

진보단체로 구성된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와 보수단체로 구성된 ‘박종훈 교육감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올해 1월 중순까지 주민소환 청구인 서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광역자치단체장 주민소환 투표는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청구인대표자 증명서가 나온 날로부터 120일 이내에 해당 지역 유권자 10%(26만7416명) 이상이 서명해야 유효하다. 경남은 유권자 26만7416명 이상 서명해야 하고 6개 시군지역 이상 각 10% 이상 참여해야 주민소환 투표가 성사된다.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지난해 11월 경남도청 앞에서 36만6000여명의 주민소환 청구서명을 받고 선관위에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 운동본부는 지난해 11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18개 시·군에서 36만6964명의 주민소환을 위한 청구 서명을 받아 선관위에 제출했다. 운동본부는 군수 재선거와 기초의원 재선거 때문에 60일간 서명 작업이 중지됐던 고성군과 사천시 라선거구에서 추가로 서명을 받아 이달말 선관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선관위는 서명부 검수작업 등 심사를 거쳐 6월쯤 주민소환 투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선관위가 주민소환서명부가 법적요건에 맞다고 판단하면 7월말이나 8월초쯤 투표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 소환 허위서명 무더기 적발…보수단체, 돌연 중단 선언

‘박종훈 교육감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지난 11일 서명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교육감 주민소환 중단을 돌연 선언했다. 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 14일부터 지난 12일까지 서명을 받은 후 검수과정을 거쳐 22일까지 경남도선거관리위원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운동본부는 경남교육감 소환 중단과 관련해 “최근까지 51만4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면서도 “그러나 1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한 주민소환 투표를 위해 또다른 갈등 분열이 초래한다”며 중단 선언 이유를 밝혔다. 운동본부의 교육감 주민소환 중단은 교육감 허위서명 무더기 적발과 연관성이 커다는 시각이 많았다.

경남교육감 주민소환 운동본부가 지난 11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주민소환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앞서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2일 박치근 경남 FC대표이사가 공동 소유한 창원시 북면의 한 공장 가건물 사무실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주소록에 기재된 개인정보(성명·생년월일·주소)를 주민소환 청구인 서명부에 돌려쓴 혐의로 여성 5명을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선관위는 현장에서 2500여명의 허위 서명이 들어 있는 청구인 서명부 600여권과 경남도민 2만4000여명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주소록 및 필기구 22통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허위 서명에 홍 지사 외곽세력인 ‘대호산학회’ 관계자가 추가로 연루된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이후 이들 6명과 박치근 대표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해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검·경, 더딘 허위서명 수사…핵심 증거 파기 ‘방치’

대검찰청 지휘를 받아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 허위서명 사건을 수사하는 경남지방경찰청·창원서부경찰서가 한 달이 넘도록 수사하고 있지만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몸통을 밝힐 수 있는 서명부마저 확보하지 못하고 모두 폐기돼 증거인멸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경남 각계 원로·대표들로 구성된 ‘경남교육감 주민소환 불법 허위조사서명 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는 26일 회견을 하고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가 직무유기로 보수단체들이 받은 51만여명의 서명부가 폐기됐다”며 “이들의 직무유기에 법적 검토를 거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위는 그동안 여러곳에서 남해군·경남개발공사 등 공무원 및 관권이 개입하는 불법 서명이 이뤄진 만큼, 보수단체가 받은 서명부가 전반적인 불법 서명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남교육감 주민소환 불법 허위조사서명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24일 경남도청에서 회견을 하고 “경찰과 선관위의 직무유기로 경남교육감 주민소환 서명부가 폐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상위는 “특히 보수단체들이 지난 11일 교육감 주민소환 중단을 선언하면서 필요하면 서명부를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했는데도 경찰과 선관위가 서명부를 요청하지 않아 열흘 후 파기돼 경찰 등이 방조했다”고 지적했다.

‘박종훈 교육감 주민소환 운동본부’는 도민 51만 4000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부를 지난 21일 파기했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도선관위가 서명부를 파기해도 된다고 했고 경찰에 언제든지 서명부를 제출하려고 준비 중이었지만 경찰도 이를 요구하지 않아 파기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수단체가 서명부를 제출한다고 언론에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에 직접 제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감 소환 서명부 전체가 명백하게 위조됐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압수수색 등의 강제수사를 할 수 없다”며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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