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있는 퇴장' 수순이 필요했다
ㆍ문재인 대표의 사퇴 막전막후, 혁신토대는 다졌지만 야권연대는 먹구름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거의 드물게 탈당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호남 지역 민심 때문에 지역에서 한 달 동안 고전했다. 3선 연임하면서 나름대로 지역구를 다져 왔지만 문재인 대표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면서 탈당하지 않는 데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우 의원은 이를 ‘쓰나미’라고 표현했다. 우 의원은 “어떤 사람은 문 대표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면서 나를 보고 얼른 탈당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우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후 자연스럽게 친노 인사로 분류돼 왔다. 우 의원은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을 흔든 탈당파동에도 탈당하지 않을 호남 의원으로 손꼽혀 왔다.
상황은 급반전됐다. 1월 19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표가 사퇴를 선언하자 김종인 선대위원장 영입으로 바닥을 친 더민주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호남에서도 민심은 급변했다. 우 의원은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탈당하라고 하던 민심이 한 달 만에 탈당하지 않길 잘했다고 박수를 보내더라”면서 “세상 민심이 이렇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꾸린 16명의 선대위에 명단을 올렸다.
호남의 반전은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1월 19~21일 전국의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더민주는 19%, 국민의당은 13%의 지지율(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을 나타냈다. 여기에서 호남 지지율을 보면 그 전주 갤럽 조사에 비해 더민주는 유지, 국민의당은 하락으로 나타나 더민주의 우세가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퇴 의사 밝히자 ‘호남의 반전’ 나타나
반전의 시작은 1월 14일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영입발표였으나 반전의 정점은 1월 19일 문재인 대표의 신년기자회견이었다. 문 대표는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로써 1년 동안 끌었던 문 대표의 사퇴론은 1월 19일 막을 내렸다.
지난해 2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직에 취임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표는 취임 두 달 뒤 치른 4월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4개 지역 모두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이때부터 문 대표에 대한 사퇴론이 비주류를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참패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난 안철수 의원의 예가 거론됐다. 이를 두고 주류 측 인사들은 “당 대표에 당선되자마자 사퇴론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2015년 봄부터 시작한 사퇴론은 연말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을 둘러싼 주요 이슈가 됐다. 당 내부의 혁신위원회 활동 같은 뉴스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주류 측 한 핵심 관계자는 “문 대표 자신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측근들에게 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그만두고 나면 당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우려 때문에 그동안 사퇴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주류 측에서 문 대표 보고 물러나라고 하지만 덜컥 물러나면 당이 더 어렵게 됐을 것”이라면서 “명예롭지 않은 사퇴는 문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들이 총선에서 투표장에 나가지 않겠다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야당 자체의 지지율을 빼고 순전히 문 대표의 개인적인 지지율을 15~20% 정도로 보고 있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48%의 득표를 한 바 있다. 절반에 가까운 야당 지지 투표 중 문 대표의 절대적인 지지도(15~20% 정도)를 뺀다면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주류 측 핵심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는 김부겸 전 의원의 발언에서도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은 문 대표의 사퇴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표만으로도 총선 승리가 불가능하지만 문재인 대표를 배제한 총선 승리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 측 인사는 “더민주의 지지율이 20%로 바닥을 쳤는데, 이 지지율마저도 문 대표가 사퇴해버리면 없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문 대표 사퇴론의 클라이맥스는 탈당이었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12월 중순 탈당을 결행한 후 비주류와 호남 지역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다. 탈당이 있을 때마다 기자들은 문 의원에게 탈당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에 대해 문 대표는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주류 측 핵심 관계자는 “탈당의 패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말하는 탈당의 패턴은 ‘탈당 결심’→‘탈당을 둘러싼 자리 제안이 언론에 보도’→‘탈당’→‘더민주 비난’→‘모든 책임은 문 대표에게 있다는 발언’이다. 당의 공식 라인인 대변인조차 개별 의원의 탈당에 대한 논평을 내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야당끼리의 싸움이라고 표현하지만, 이건 싸움이 아니라 더민주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문 대표는 사퇴할 생각”
문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던 의원들이 탈당하고 난 뒤에도 당내 중진이나 운동권 출신 인사, 심지어 주류 측 의원들 사이에서도 문 대표 사퇴에 대한 요구가 삐져 나오면서 더민주는 그야말로 큰 위기에 봉착했다. 문 대표 측 인사는 “그런 요구가 직접적으로 제기된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다만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문 대표가 사퇴하면 이 소나기를 비켜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당내에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선대위원장 카드는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대위원장 영입 당시 이미 문 대표의 사퇴가 전제돼 있었다는 것이 주류 측의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측근들은 말릴 수 없었다고 한다. 주류 측은 이를 ‘큰 흐름’으로 표현했다. 핵심 관계자는 “문 대표가 배수의 진을 치고 사퇴하겠다는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인데, 누가 반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 대표 측 인사는 “대표직 사퇴는 큰 흐름이었다”며 “문 대표의 결정에 반대하는 인사는 없었고, 이를 결정하는 최고위원들도 문 대표가 설득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 측 인사는 대표직 사퇴에 대해 ‘혁신’과 ‘통합’을 이야기했다. 일관되게 주장한 혁신이 일단락됐기 때문에 문 대표가 아무 미련 없이 대표직에서 사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정의당과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와는 통합이라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이마저도 김종인 선대위원장에게 맡기고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문 대표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당 내부에서는 문 대표의 사퇴가 기정사실화되고 난 뒤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한 의원은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됐다”면서 “하지만 이런 결정이 좀 더 빨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일찍 사퇴를 했더라면 탈당 행렬은 없었을 것이고, 추후 통합과정도 한결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비주류 측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 같은 가정에 대해 문 대표 측 입장은 확고하다. 문 대표 측 인사는 “오래전부터 문 대표는 사퇴를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때 문 대표가 사퇴했더라면 혁신의 원칙이 많이 훼손됐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주류 측 핵심 관계자는 “(사퇴 결심을) 빨리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결정에는 상대 당사자가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늦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혁신을 담보할 수 있는 영입인사의 설득에도 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우윤근 의원은 “문 대표가 수차례 대표직을 던지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주변 인사들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우 의원은 “문 대표로서는 물러나라고 할 때 쫓겨나는 식은 곤란하다는 것이었고,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 전당대회 같은 것이 명분이 없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주류 측에서는 혁신과 통합 중 혁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일단 혁신이 우선이라는 것이 주류 측의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때문에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탈당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오히려 더민주의 혁신이 더 굳건하게 됐다는 역설적인 추측을 낳게 한다. 주류 측에서는 이를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좋아진 셈’이라고 보고 있다. 더민주 내부에서 호남권 물갈이와 혁신 등을 이루는 여건이 훨씬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다만 남은 것은 야권연대의 어려움이다. 문 대표 측 인사는 야권연대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이 인사는 “호남은 어쩔 수 없이 경쟁한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은 야권이 맞붙으면 공멸”이라면서 “이를 잘 알고 있는 국민의당 수도권 현역 의원들이 각 지역에 표적공천을 하는 악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뉴파티위원회 출범, 탈친노·탈운동권 바람
문 대표는 1월 27일 당 중앙위에서 최고위원회의 권한을 비대위에 넘기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당 대표직을 정식 사퇴하게 된다. 문 대표의 사퇴 이후에도 ‘친노 패권’ 논란이 완전히 불식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대위에는 문 대표의 최측근으로, 당초 대선 기획단장에 거론되던 최재성 의원이 들어갔다. 여기에다 범친노로 분류되는 인사가 여러 명 있다. 선대위 위원인 우윤근 의원은 “모든 의원이 선대위에서 N분의 1이지 않나”라면서 “박영선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 선대위는 탕평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성 의원은 총선 불출마-총선 기획단장 사양 등으로 반전의 물꼬를 튼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주류 측 내부에서는 문 대표가 명분 있는 사퇴에 사실상 성공한 데 대해 최 의원이 많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표의 과감한 사퇴 결정이 오히려 친노세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도 보고 있다. ‘친노패권’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 측 핵심 관계자는 “이제부터는 제발 친노패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당이 한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해당 의원들도 지역구의 일부 유권자들이 친노라고 비난하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의 사퇴가 이들 의원에게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친노패권 우려 때문에 지난 12월 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문 대표의 최측근 인사들 가운데 일부도 홀가분하게 출마할 기회를 잡았다. 그동안 문 대표를 보좌한 윤건영 특보는 서울 성북을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운동권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당내 움직임은 뉴파티위원회의 출범이다. 1월 21일 출범한 뉴파티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당내에서 사실상 금기어에 해당했던 ‘호남’ ‘친노’ ‘운동권’을 꺼냈다. 뉴파티윈원회는 “호남은 새 인물로 바뀌어야 하고, 친노는 계파가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를 일구는 가치로 재편되어야 하며, 운동의 경력에 안주하여 기득권화된 인사들은 퇴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뉴파티위원회는 최근 더민주에 영입된 인사와 기동민·권오중·금태섭·강희용 등 더민주의 젊은 정치인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선대위에도 포진해 있어 더민주에 있어 탈친노·탈운동권 바람이 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뉴파티위원회는 이날 출범행사에서 “주도세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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