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의 평가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누적된 ELS 평가손실 규모는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원금비보장 공모형 ELS 중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품의 발행액은 총 1조50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홍콩H지수 ELS 몰빵으로 위기 자초홍콩증시가 급락하면서 이른바 '홍콩 쏠림 현상'에 따른 피해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ELS 발행금액은 76조9499억원으로 이 중 60%에 달하는 46조3364억원의 물량이 홍콩H지수를 기초했다.
문제는 시장에서 홍콩H지수가 지금보다 더 빠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H지수는 지난해 5월 26일 최고치인 1만4801포인트를 기록한 후 중국 증시불안 등으로 크게 하락해 지난 21일에는 7000선까지 밀려났다.
H지수가 8000선 밑으로 내려가면 H지수 연계 ELS 손실 규모는 2조원 규모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더 악화돼 H지수가 7000포인트마저 붕괴되면 평가 손실은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불거지는 불완전판매 논란정부는 작년 8월 '파생결합증권 대응 방안'을 발표하면서 불완전 판매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적발될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큰 H지수를 기초로 담은 ELS 상품이 손실 리스크는 크지만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후죽순 가입에 나섰고, 증권사들도 투자자의 수요가 몰리자 관련 ELS를 찍어내기에 바빴다.
은행들도 판매 수수료 수익이 큰 ELS판매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4대 은행 중에선 국민은행이 가장 많은 15조원어치를 팔았고,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도 각각 6조6700원, 6조원어치의 상품을 판매했다. 우리은행은 상대적으로 적은 3000억원어치를 팔았다.
특히 은행권이 창구에 예금을 들러 온 보수적 투자 성향의 고객에게까지 ELS를 대거 판 것을 두고 불완전 판매 시비가 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금융투자성향은 '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으로 분류되는데 보수 성향의 '안정형'이나 '안정추구형' 고객에게는 원칙적으로 ELS 같은 '고위험 상품'을 팔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사실상 면죄부 역할을 하는 '부적합 금융상품 거래 확인서'와 '투자 권유 불원 확인서'에 고객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보수 성향 고객에게 ELS를 대거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의 작년 8월 검사 결과 은행권 ELS 가입 고객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가 이런 '부적합 금융상품 거래 확인서'를 쓴 것으로 파악됐는데, 대부분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고령층이었다.
◇금융당국 책임론…뒤늦은 ELS 판매 규제최근 H지수 폭락으로 대규모 ELS 원금 손실 사태 우려가 다시 불거지자 금융당국은 불완전 판매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원금 보장을 원하는 투자자의 ELS 가입을 억제하는 등의 판매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부적합 금융상품 거래 확인서'와 '투자 권유 불원 확인서'가 고위험 상품 판매에 대한 면죄부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운영 지침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뒷북규제 행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금융당국이 파생결합증권 상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문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해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다 화근을 키웠다는 것이다.
금감원이 작년 ELS 불완전 판매를 적발해 제재를 한 금융기관은 증권사 2곳뿐이었으며 제재 수준도 비교적 경미했다. 최근 투자자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은행권 ELS 불완전 판매 적발 건수는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사태가 이토록 심각해지기 전에 ELS와 관련된 불완전판매 여부를 보다 면밀히 조사하고 ELS의 '홍콩 쏠림 현상'을 통제했어야 했다는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