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의 시시각각] 모든 남성이 성매매를 끊을 수 있을까

양선희 입력 2016. 1. 27. 00:51 수정 2016. 1. 2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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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K걸(girl)’. 코리안 걸의 약자다. K팝 이전부터 코리안(Korean)의 명성을 세계에 떨친 이름이다.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25년 전쯤 미국 출장길의 한 도시에서 만난 지역 신문기자에게서였다. 그곳에서 코리안 걸은 성매매 여성을 뜻하는 속어라고 했다. 이후에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 말이 같은 뜻으로 통용되는 걸 봤다. 몇 년 전 몽골 울란바토르에 들렀을 때도 몽골 당국이 코리안 걸 단속을 벌이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최근 미국 시애틀시 경찰은 2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성매매를 알선하던 일당 14명을 체포했는데 이들 사이트 주소에는 모두 ‘Kgirl’이 포함돼 있었다. 이곳의 성매매 여성들은 한국인이었다. 시애틀 경찰 당국은 이번 수사는 ‘더 리그’란 성매매 조직을 적발하는 게 목적이라며 여성들은 석방했다. 국제적으로 본 한국 성매매 산업의 명성은 이렇다.

 ‘성매매 리스트’. 지난주엔 성매수 의심자 명단 6만여 명의 존재가 알려지며 시끄러웠다. 한 컨설팅 전문회사가 강남의 성매매 조직으로부터 입수했다는 엑셀 파일이다. 이 명단엔 의사·변호사·교수 등이 다수 포함돼 있는 걸로 알려졌고, 경찰은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한데 이후 세간의 여론은 속된 말로 ‘메차쿠차’하게 흘러갔다. 대략 이랬다. “알 만한 사람들이 성매수를….” “명단이 유출되면 명예 훼손 등 인권 피해가 우려된다.” “명단만으로 성매수를 입증할 수 없어 처벌을 이끌어 내긴 어려울 것.” 항간의 관심은 리스트의 6만여 명, 그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숫자에 집중됐다.

 ‘성매매 조직’.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6만여 명이나 되는 고객의 기록을 관리하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세계로 뻗어 나가는 우리 성매매 산업에 조직적 네트워크가 존재할 거라는 의심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그럼에도 ‘조직’은 늘 담론 밖에 머물렀다. 과연 경찰은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수사의지가 있는 걸까. 경찰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들은 지금 엑셀 파일을 분석 중이라고 했다. 조직을 수사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 사건을 취재한 현장기자는 “경찰이 리스트 공개자를 불러 조사했지만 조직의 연락처를 모른다고 하더라. 조직에 대한 수사의지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말 대구지검은 공무원 2명이 포함된 성매매 업소 운영조직을 적발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을 도피시키려 했던 경찰관도 구속 기소됐다. 여수 유흥업소 여성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해당 업소에서 성매매를 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정말 조직을 몰라서 못 잡는 것일까.

 ‘성매매 금지국’. 한국은 가장 강력하게 성매매를 금지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 한 조직의 장부에서 6만여 명의 고객 명단이 나오고, 성매매 사건이 터지면 공무원과 경찰관이 얽혀드는 일이 다반사다. 왜 그럴까. 우리 성매매 정책의 은밀함과 위선의 필연적 결과는 아닐까. 인간의 삶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한다. 한데 추함을 인정하지 않고 위선으로 포장하려 들면 삶은 왜곡된다. 성매매는 인간의 가장 추한 삶의 한 단면이다. 추한 삶이 세상을 더 혼탁하게 만들지 않도록 단속하는 방식은 없는 척 덮어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나라하고 치열하게 대면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매매 정책과 관련해선 먼저 ‘모든 남성이 성매매를 끊게 할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면 반드시 그 이면에선 거짓과 범죄가 싹트고 음지의 산업이 발달한다. 음지에선 언제나 약자들이 유린당한다.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의 비범죄화를 권고한 것도 이 산업의 최약자인 성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관련 범죄가 음지에서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우리는 음성적 성매매 조직은 뿌리 뽑고, 여성 인권은 보호하고, 국제적인 K걸의 오명을 벗는 성매매 정책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고민해야 한다. 위선의 탈을 벗고서 말이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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