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의원을 '무소속'으로 둔갑시킨 여론조사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the300]선관위 공심위 '불공정' 14건 심의·조치…추후 늘어날 듯]
#.지난 20일 전북 순창에 사는 더불어민주당원 박모씨(68)는 황당한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지지하는 강동원 의원이 '무소속'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지역에서 4선을 지낸 장영달 전 의원이 더민주 소속으로 가장 먼저 소개됐다.
박씨는 "현역의원을 졸지에 무소속으로 만들고 8년이나 국회를 떠난 인물이 당 후보로 소개되는 여론조사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20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일부 편향적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곳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런 조사를 일부 언론이 여과없이 보도하고 있어 유권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대 총선과 관련해 중앙선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신고된 불공정여론조사 심의·조치 사건은 14건이다.
표본의 대표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실시한 여론조사가 9건으로 가장 많고, 공표나 보도 준수사항을 위반한 사례가 4건, 여론조사 준수사항을 어긴 사례가 1건이다. 요건 불충분으로 기각됐거나 심의대기 중인 사례까지 포함하면 20건으로 늘어난다. 중앙에서 집계하지 못한 신고사례가 제외돼 있어 이보다 훨씬 많은 유권자와 후보자가 지역 여론조사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사례를 보면 구조개편이 이뤄지고 있는 야권에서 주로 여론조사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다. 유권자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항을 만들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해석된 여론조사가 대표적이다.
현역을 무소속으로 소개해 탈당을 기정사실화한 전북 남원·순창의 여론조사는 '만약'이라는 단서를 달아 선거관리위원회의 여론조사 신고 허가를 얻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선관위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강 의원은 전북지역에서 유성엽, 김관영 의원이 탈당하면서 당초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력과 함께 탈당 후보군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강 의원은 18일 나머지 전북의원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당을 지키겠다"며 탈당 불가 방침을 공식화했다. 탈당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음에도 이튿날 탈당할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는 것이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전북도 선관위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최초 의뢰자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선관위에 신고한 여론조사 신고서를 분석한 뒤 음해 및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 예비후보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지역 선관위와 경찰서에 방문해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조치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진안·무주·장수·임실 지역에서는 안호영 예비후보가 타 선거구 예비후보를 대상에 넣어 여론조사를 진행한 현역 박민수 의원 측에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국민의당으로 자리를 옮긴 임내현 의원도 2일 여론조사업체와 지역 시민단체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임의원 지역구인 광주 북구을 국회의원의 교체를 희망하는 응답률이 70.9%로 나왔기 때문이다. 임 의원은 앞서 발표된 3번의 여론조사에서 교체율이 50%대 초중반에 그친 것과 비교할 때 조사 대상의 편향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이른바 '진박 마케팅'을 펼치며, 대구 동을 현역의원인 유승민 의원과 한판 대결을 펼치고 있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이 특정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편파 여론조사'를 주장해 논란이 있었다. 이 예비후보는 여론조사가 북핵문제와 사드배치 등 유 의원을 연상케하는 질문을 하는 등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며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6조 선거여론조사기준에 따르면 '피조사자의 응답이 특정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편향될 수 있는 질문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여론조사를 이유로 처벌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선관위는 불법선거여론조사 등을 20대 총선의 '5대 중대선거범죄'로 규정하고 집중 단속 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특히 선관위는 당내 경선이나 지지도 조사 등과 관련해 착신전환을 이용해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이뤄지면 불공정여론조사 신고건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며 "전화여론조사시 거짓 응답이나 착신전환을 통해 민의를 왜곡하는 행위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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