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 변경 통한 '임금피크제' 도입..노사 모두 '불만'

김지은 2016. 1. 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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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김지은 기자 = 정부가 마련한 취업규칙 변경 지침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규칙 변경을 위해 사용자와 근로자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경우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 취업규칙 악용 vs 근로조건 개선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근로조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고용조건을 사측 입맛대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맞서고 있다.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처우, 해고 등과 관련된 근로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임금피크제처럼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 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노동자 과반 동의를 받지 않고도 취업규칙 변경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노동계가 취업규칙 변경을 '개악'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여부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고 주장하지만, 노동계는 추상적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한다.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여부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을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사용자측의 변경 필요성 ▲변경된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노동조합 등과의 충분한 협의 노력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 6가지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러한 기준과 절차를 토대로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이루어지는 경우 불이익과 이익을 총체적으로 비교하고 사용자의 개편 필요성 인정 여부, 주변 기업의 도입 여부, 노동조합, 근로자대표와의 충분한 협의가 진행됐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한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으로 인정하면서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경우 예외적으로 근로자 동의 없이 변경 효력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정부, 청년실업 해소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 불가피

정부는 올해 정년 60세 연장으로 청년 고용절벽 심화 우려가 있어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일정한 연령이 지나면 임금을 동결하거나 감축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덜 수 있고, 그만큼 절감된 비용으로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임금피크제를 미래세대(청년)와 기성세대(중·장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세대간 상생고용 방안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임금피크제는 지난해 313개 공공기관에 도입이 완료됐지만, 민간기업은 확산이 더딘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30대 민간기업 주요 계열사 중에서도 66% 정도가 도입했다.

이에 따라 정부 입장에선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민간기업 전체로 확대하는 게 목표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때 적용 가능한 개념을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으로 제시했다.

◇취업규칙 지침…노사 입장차 뚜렷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놓고 노사는 모두 불만을 제기한다.

노동계는 6가지 판단 기준에 주관적인 판단요소가 많다며 변경 승인을 관할하는 노동관서의 재량에 따라 그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년 보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돼 임금만 깎일 수 있다는 논리도 편다. 2014년 기준 한국인의 퇴직연령은 평균 53세다. 특히 정년까지 일한 비율은 전체 근로자의 7.6%로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이 지침 시행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뿐 아니라 향후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임금체계 개편 등 각종 근로조건을 정할 때 사측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경영계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불이익으로 인정한데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

경영자총연합회는 "정년 60세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은 고령자고용촉진법상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으로 전제한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정년 60세 의무화 도입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은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해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의무'를 법률로 명시했다"며 "지침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으로 전제한 것은 정년 60세 의무화의 입법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지침 적용 한계…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듯

행정지침은 정부가 행정집행과 근로감독을 하는 데 기준이 되기 때문에 실제 각 사업장의 노동현실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노사에 대한 직접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노사 양측이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한 협의를 할 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논의를 촉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침은 구체적인 사건에 따라 법원이 내린 판결들을 정형화해 제시한 것이어서 일반 원칙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장 적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특정 사안에 대해 예외적인 성격을 갖는 판결을 보편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빗발칠 수 있다. 법적 소송으로 비화되면 기업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피크제를 강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통상임금이나 연장근로 수당 논란 때도 고용부의 '지침'이 있었지만 노동계가 이에 불복, 상위법인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소송을 낸 결과 고용부의 지침을 뒤엎는 판결이 잇따랐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법원은 1970년대부터 일관되게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판단했다"며 "지침은 동의권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된다.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노사가 성실히 협의하고 동의를 받아 임금체계 개편을 진행할 것이다"고 말했다.

kje13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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