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 마지막까지 평화롭게]사람답게 죽는 건, 권리다

런던 | 최희진 기자 2016. 1. 2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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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호스피스의 나라 ‘영국’. 그곳에서 죽음은 가족 곁에서 평온하게 떠나는 것이었다.‘웰다잉법’이 막 통과한 한국에선 ‘사람다운 죽음’은 아직 먼 이야기.국민 절반 이상이 마지막 장소가 집이길 원하지만 80%가 병원에서 생을 마친다.대한민국이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이다.

영국에 사는 케리 에머턴은 4년 전 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활동적이던 항공사 승무원에게 암 진단은 청천벽력이었다. 한동안 사람들을 멀리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37세, 아들 조슈아는 고작 16세였다. 그는 암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에머턴은 취미였던 승마를 계속했고 마장·마술대회에서 트로피를 거머쥐기도 했다. 몸 상태가 악화된 것은 방사선치료가 시작된 즈음이다. 병원에 입원했다. 암이 다른 장기들로 전이된 사실을 알게 됐고 회복은 불가능했다. 에머턴은 병원이 싫었다. 의료진에게 몸을 내맡기고 신체 이곳저곳에 튜브를 꽂은 채 의식도 없이 죽어가고 싶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영국은 2010·2015년 국제적인 ‘죽음의 질’ 평가에서 1위에 오를 만큼 호스피스가 발달한 나라였다. 그는 베드포드셔에 있는 ‘키치 호스피스 케어’에 입원했다. 에머턴은 여기서 8일을 더 살았다. 사망하기 며칠 전, 호스피스 의사가 소원을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이 기르던 말에게 마지막으로 먹이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날 그는 말을 실은 트럭이 호스피스 건물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에머턴은 잔뜩 들떴고 가족과 친구들도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에머턴의 언니 케이트는 “키치 호스피스는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고, 병원에 남았다면 꿈도 못 꿨을 따뜻한 기억을 가족에게 남겨준 곳”이라고 회상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국내에서도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도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했다. 명절이나 가족·친지·이웃 어른에게 큰 병이 생겼을 때 나누던 ‘웰다잉(Well-Dying)’ 얘기가 생활 속으로 한발 더 들어온 것이다.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고 있지만 아직 현실은 괴리를 보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병원’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는 사람은 16.3%에 불과했다. 57.2%는 ‘가정’, 19.5%는 ‘호스피스·완화의료 기관’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2010년 통계청 통계를 보면 질병으로 사망한 65세 이상 노인의 81.1%는 병원에서 숨졌고, 15.1%만 집에서 숨을 거뒀다. 그해 말기 암환자가 사망 전 3개월간 지출한 건강보험 의료비(7012억원)도 사망 전 1년간 쓴 의료비(1조3922억원)의 50.4%에 달한다. 불편하고 비싼 연명치료 속에서 세상을 이별한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라정란 호스피스완화의료팀장은 “호스피스의 목적은 ‘고통 없이 삶을 끝내자’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시설이나 집에서 평화롭게 삶을 살아내도록 돕는 데 있다”며 암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을 40~5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말기 암환자 중 호스피스를 이용한 사람은 2014년 기준 13.8%에 그치고 있다. 영국에서 110년 전 정착된 무료 호스피스에 한국은 지난해 7월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웰다잉을 준비하는 생각과 질의 차이였다.

<런던 |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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