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1980년대 정의하는 새 소설 집필 이문열

김유태 2016. 1. 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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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한 音으로 부를 수 있나..이제 산업화·민주화 화음 이룰때
연이은 인터뷰 요청에도 즉답을 피하던 그였다. 폭설이 내린 지난달 3일.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연단에서 내려오는 그의 팔을 낚아챘다. 얼굴을 맞대 청하자 열흘쯤 더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자락에 위치한 부악문원에서 소설가 이문열(68)은 침묵을 깼다. 창간 50주년을 맞아 매일경제신문이 만난 이문열은 '시대와 이념의 화음'을 사회 각계에 주문했다. 이제는 '작가 나이'로 불혹을 1년 앞둔 노작가는 서늘한 날씨에도 뜨거운 열변을 털어놨다. 지난해 신장암 발병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건재했다. 1980년대를 정의하는 소설을 구상 중인 이문열은 "오랜 기간 산업화와 민주화가 따로 불렀던 단선적 성부(聲部)를 청산하고, 이제 다성음악의 대위법으로 화음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시간여 동안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압축해 싣는다.

―지난해 암 수술로 고초가 컸겠다.

▷작년 6월에 한쪽 신장 일부를 잘랐다. 대단한 건 아니다. 사람 몸에 신장은 두 개다(웃음).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난 삶의 대부분을 전(前) 시대에 살았다. 남은 내 삶과 전 시대의 삶, 새로운 현대와 나를 맞추는 게 늘 개인적 화두다. 새로운 현대는 언제부터 시작됐고,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시대정신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낸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이합집산 중이다.

▷그건(정치는) 내가 약하다. 통 신경을 안 써서.

―정치권에 각성을 준다면.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로마시대 시저 황제를 살해한 반(反)시저파는 포퓰리즘 때문에 단죄됐다. 죽기 전의 시저가 "모든 걸 시민에게 나눠주겠다"고 남긴 유언 내용을 알게 된 시민들은 시저를 죽인 이들에게 분노했다. 시저의 죽음이 정당화되면 시저의 재산을 자신들이 받지 못할까 걱정한 것이다. 시저의 죽음 자체보다 시저의 재산을 염두에 둔 포퓰리즘이 시저의 죽음을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 정치권도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1980년대를 정의할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들었다.

▷열두 권짜리 소설 '변경'은 1960~1970년대를 정의했다. '변경'의 후속편을 생각한 지 10년쯤 된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쓰기 전에 방금 읽은 소설이나 영화를 본 것처럼 얘기할 수 있을 때 쓰는데 작년에 집필을 시작하려다 자꾸만 미뤄진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를 말하려면 초기에 광주를 만나야 하고, 삼당합당으로 끝이 난다. 새 소설의 배경은 1979년부터 시작될 것이다. 구상이 거의 다 끝났다.

―1980년대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나.

▷나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정신이 민주화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산업화도 있었고, 세계화도 있었을 것이다. 여러 가치의 멜로디가 동시에 불렸던 시대가 1980년대라고 본다. 민주화의 노래만 부르거나 산업화의 노래만 부르는 건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단선음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단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멜로디라면.

▷당시는 근대적인 권위주의와 미국을 통해 들어온 민주주의가 동시에 존재했던 시대다. 같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함께 존재했다. 한국에서 1980년대에 나란히 불린 근대화와 민주화의 노래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몇십 년 차이를 두고 불렸는데, 한국에서는 한 시대에 불렸다.

―제5공화국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줄거리만 듣고 "전두환 봐주려는 거 아니냐"며 만류하는 이들도 사실 있었다. 그러나 난 시대의 해석가가 아니다. 소설가다. 지금 내가 쓰려는 건 무엇보다도 소설이다.

―민주화·산업화를 동시에 담아내는 소설이 가능할지.

▷나는 우리 속에 있는 여러 노래들이 화음을 이루기 바라는 마음이다. 음악에는 대위법이라는 작법이 있다. 다성음악을 만들 때 쓰이는 대위법은 여러 성부가 모임으로써 화음을 이룬다. 우리 한국 사회도 여러 가치를 통합하는 화음을 만들기를 바라고, 각 성부만 남은 단성음악의 반대가 되기를 바란다.

―구상한 새 소설의 내용은.

▷쇳물을 뽑아내려 달궈진 도가니. 쇠를 두드려서 뭔가를 만드는 모루. 은유적으로 1980년대를 정의할 소설의 제목으로 '도가니와 모루'를 생각했다가 최근 제목을 바꾸기로 했다. 제목이 너무 직설적인 게 아닌가 싶다. 소설에는 예술가 주인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분량은 5000장쯤 예상한다. 두꺼운 책으로 세 권이 될 것이다. '변경'처럼 열두 권짜리 소설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건 요즘 시대에 미친 짓이지(웃음). 분량이 주는 부담은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10년의 세월을 담아내기가 어렵다. 만 70세 전에 책을 내겠다.

―한국 문학 위기가 심상찮다.

▷자업자득이다. 문학 시장은 1990년대 포화기를 만났는데 새 작가를 자극해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수입해 썼다. 당시만 해도 문학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 외국 작가 책이 들어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대부분 외국 번역 소설이다. 문학생산자들은 획일화됐고, 문학 시장은 대중과 호흡하는 시장과 진지한 시장이 구분됐으며 대중 시장이 승리자가 됐다. 다수의 '고만고만한' 것을 만들어내고 가작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지만 대형물은 만들지 못하게 됐다. 대중물로서도 실패했고 진지한 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업자득이지.

―한국 사회를 달군 '신경숙 표절 논란'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죄하려면 고의성을 밝혀야 하고, 법률적으로도 죄를 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때 '상당성'은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표절 논란은 상당성을 해쳤다고 본다. 장발장 재판이 비난받는 이유는 빵 한 개의 절도와 18년의 징역 간에 상당성이 없어서다. 그래서 대부분 장발장을 동정한다. 나는 작가로서, 어떤 경우에도 누군가의 표절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고 표절의 범죄성도 부인하지 않겠다. 다만 '영원히 글을 쓰지 말라'는 건 상당성을 해치지 않나 싶다.

―작년은 불평등과 양극화, '흙수저'와 '헬조선' 논란이 달군 한 해였다.

▷젊은 세대들에게 헬조선식 사고는 널리 퍼진 현상인 것 같다. 하지만 남겨진 과제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TV의 인문학 강좌를 가끔 보면 부의 불평등을 앞세우고, 젊은이들이 왜 취직을 못하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내가 본 TV 강연에서 한 강연자는 '재벌의 죄악'으로 결론지었다. 기업이 잉여 축적한 돈(사내유보금)을 잡아야 '삼포(三抛) 세대' 현상을 막는다는 건데 젊은이들에게 이게 당장의 해결책이 되나 싶었다. 아픔은 달래야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감정을 과잉으로 자극시키기만 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분노가 결론이어서는 곤란하다.

―이 시대 최대 병폐는 뭘까.

▷피암시성(被暗示性)에 함몰된 집단지성이랄까. 자신이 판단하기보다 암시에 편승하거나, 스스로 사고하기보다는 암시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피암시성이 대중화된 사회는 위험한 환경을 만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피암시성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목소리를 내는 보수 작가로는 유일한데. 사명감인지.

▷사명감이랄 건 없고, 호랑이 등에 탄 기분이다. 호랑이 등에서 내리질 못한다. 나까지 내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요즘 눈여겨보는 책은.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과 임혁백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보고 있다(그의 원탁 책상에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놓여 있었다).

―매경이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우리의 특수한 사정에서 국방 못지않게 경제가 중요하다. 매경이 그 역할을 했고, 시대적 요구에도 맞아떨어져서 지금의 매경이 있다고 본다.

■ 이문열 소설가는…

△1948년 출생 △1970년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중퇴 △1978~1980년 대구매일신문 기자 △1979년 오늘의 작가상 △1982년 동인문학상 △1987년 이상문학상 △1992년 현대문학상 △199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수훈장 △1993~1996년 세종대 교수 △1998년~ 부악문원 대표 △1998년 21세기문학상 △1999년 호암상 예술상 △2009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200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12년 동리문학상 △2015년 은관문화훈장

[김유태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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