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진박놀이' 볼썽사납다
최근 만난 대구에 사는 한 지인은 “대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쯤 된다”고 했다. 과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실수를 해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욕하면 참지 못하고, 흉탄에 맞아 숨진 부모 대신 자신들이 대통령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구에서 4·13총선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근혜 마케팅’에 열중이다. 과거의 실낱같은 끈이라도 찾아내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과 정치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며 승부하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이상하고 묘한 선거판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진박’ 책임이 크다. ‘진박’ 논란은 지난해 11월부터 제기됐다. ‘배신의 정치’에 이어 나온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들’ 언급이 계기였다. 그 이후 ‘진박’을 자처하는 이들이 대구에 몰려들었고, 가박(가짜 친박) 원박(원조 친박) 신박(새로운 친박) 곁박(곁불 쬐는 친박) 용박(대통령을 이용하는 친박) 누박(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친박) 등의 용어가 횡행하면서 분위기가 혼탁해졌다. 여당 후보끼리의 공천 경쟁이 심화되면서 요즘은 누가 ‘진박’이고 ‘가박’인지 헷갈리는 국면까지 다다랐다. ‘진박’ 예비후보들의 지지율은 부진한 상태다.
현 정부에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을 지낸 예비후보 6명이 지난 20일 소위 ‘진박연대’를 결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당 후보 모두가 진박을 자처하는 만큼 자신들이 ‘진진박(진짜 진박)’이라는 걸 유권자들에게 홍보하려 모인 것이다. 한 참석자는 “친(親)유승민계 현역의원들의 대항마로 낙점된 친박 6인”이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본인들 스스로도 확언하기 어려울 듯하다. ‘진박연대’에 끼지 못한 후보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물론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은 탓이다.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위해 일했던 후보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여권 관계자와 통화한 결과라면서 “6명 가운데 진박은 2명뿐이고, 그 이외는 얘기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다른 후보는 친박 마케팅에 염증이 난다고 했다. 더욱이 유권자들 사이에 피로감과 거부감이 번져가는 중이다. 대통령을 사랑하는 건 맞지만, 대통령 수하들이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찾아가는 사람들처럼 방자하게 행세하는 데 대한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셀프 감별’을 통해 ‘박근혜 마케팅’을 계속하겠다는 후보, 박심(朴心)에만 기대 금배지를 달려는 후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행태는 사라져야 할 패거리 정치다. 또 ‘내가 대통령과 더 가까우니까’ ‘대통령이 나를 더 신뢰하니까’ 표를 달라는 건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정치를 후퇴시키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누를 끼치는 소행이기도 하다. 그들이 국회의원이 된들 대통령 눈치 살피는 일 외에 뭘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박’을 자처하는 이들부터 자중해야 한다. 유권자들 앞에서 대통령 좀 그만 팔란 얘기다. 유권자들이 보기엔 ‘용박’과 ‘짐박(대통령에게 짐이 되는 친박)’뿐이다.
민망한 ‘진박놀이’를 중단하지 못하면 대구를 넘어 수도권 민심까지 악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벌써 경고등은 켜졌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청와대가 선을 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진실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박 터지는 그들만의 경쟁’을 당분간 계속 봐야 할 것 같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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