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또 다른 덕선이가 데이비드 보위를 보내며

김중기 2016. 1. 2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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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정은주]
영화 라비란스에 출연한 데이비드 보위(오른쪽)
정은주 작가가 수집한 데이비드 보위 관련 자료들.[사진 정은주]
데이비드 보위가 등장한 김은희 작가의 순정만화 `M&M`(마고와 마리아). [사진 정은주]
정은주 작가가 학창 시절 만든 데이비드 보위 다이어리. [사진 정은주]

10여 일 전 데이비드 보위의 부고를 듣고, 보위 음악과 함께 10대를 보낸 지인을 만났다. 그래픽 아티스트 정은주씨는 "이 소식이 더 슬픈 것은 정말 나의 청춘을 보내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램록의 대부’ ‘록의 혁신가이자 실험가’라는 추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여전히 보위를 사랑하는 조금 특별한 '덕선이'들에게 보위는 어떤 의미였을까.

-보위를 어떻게 알게 됐나.
"중2 (1989년) 때 친구를 통해 처음 접했다. 나를 포함해 나보다 조금 젊은 팬들은 80년대 보위가 주인공이었던 영화를 많이 기억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1983)나 판타지 영화 라비린스(Labyrinth, 1986) 등이다. 미스터 로렌스에는 보위가 영군군 소령으로 나왔다. 라비린스는 제니퍼 코넬리, 지금의 수지를 닮은 여자 아이가 마왕을 만나러 가는 내용인데 보위가 마왕으로 나온다. 이상한 B급 영화랄까. 근데 그 마왕 캐릭터가 영화 '가위손'의 조니 뎁같이 매력적이다. 80년대 보위는 상업적인 영화도 찍고 팝 음악 활동도 많이 했다. 뉴웨이브, 댄스 장르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Let's Dance)를 기록했다. 뉴웨이브 밴드 ‘듀란듀란’이나 ‘아하’를 통해 보위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위를 좋아하다가 뉴웨이브나 다른 장르로 관심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80년대 나는 보위의 60,70년대 음반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일)을 시작했다."
-‘덕질’을 어떻게 했나.
"당시 방송·잡지에서는 보위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순정만화에 보위가 자주 등장했다. 보위를 향유하던 사람들 중에 만화가가 많았다. 순정만화는 양성애자로 알려진 보위에게서 게이 코드를 빌려 오기도 했다. 나는 헌책방에서 『롤링스톤』 같은 외국 잡지를 사 모았다. 막 창간한 음악잡지 『핫뮤직』에 무작정 전화를 걸 거나 팝송 대사전 밑줄을 그어가며 '이 앨범은 꼭 사야지' 하며 읽었다. 하지만 보위 앨범을 사고 싶어도 파는 곳을 몰랐다. 보위의 80년대 앨범들은 국내 음반사를 통해 라이센스 음반으로 발매됐지만 70년대 수입 음반은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잡지 독자란을 통해 음악 펜팔을 시작했다. 펜팔을 통해 수입 음반을 파는, 지금은 다 사라진 광화문 LP 가게들을 알게 됐다. 교복 입고 두근대며 광화문에 갔더니 LP 가게 사장님이 '보위는 몇 개 없는데…’라면서 몇 장 찾아 주시더라. 그분이 나중에 홍대 라이브클럽 ‘프리버드’를 열었다. 내가 프리버드 1호 알바생이다(웃음). 그때 돈으로 보위 수입 중고 LP 한 장에 1만5000원이었다.”

- 꽤 비싼 가격이었던 것 같다.
"아니다. 오히려 다른 아티스트의 수입 음반보다 저렴한 거였다. 보통 수입 음반은 중고가 3만, 5만, 10만원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밥 굶어가며 모은 용돈으로 한 장 한 장 살 수 있었다. 80년대 내가 광화문 LP 가게에서 산 음반은 전위적인 ‘베를린 시리즈’나 ‘헝키 도리’(Hunky Dory, 1971) 등이다. 60, 70년대 그의 음반을 들으면서 내 이상형은 보위가 됐다. 아이돌로서 이상형이 아니라 이 사람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이 사람과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꿈꿨다. 보위의 음반 중에 보위가 노래한 영화 ‘캣 피플’(Cat People, 1982) 사운드트랙은 당시에도 호평을 받았다.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작곡한 조지오 모로더가 참여한 사운드트랙이다.) 보위의 ‘스페이스 오더티’(Space Oddity, 1969) 앨범도 90년대에 라이센스로 나왔는데 반응이 좋았다. ”

-보위를 록의 혁신가, 글램록의 대부라고 하던데 왜 그런가.
"글램록의 시대는 너무 짧고 아티스트가 몇 명 없었다. 현대 미술의 다다이즘 선언처럼 보위는 '나는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다'(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로 글램록 선언을 한 셈이다. 80년대를 장악한 뉴웨이브의 패셔너블하고 유니크하고 게이적인 요소도 글램록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는 한 장르에 가둘 수 없는 사람이다. 글램록 외에도 70년대 전위 음악 ‘베를린 시리즈’, 80년대 뉴웨이브, 90년대 일렉트로닉, 2016년 '블랙스타' 앨범의 재즈같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 혁신하고, 록 음악계에 영향을 끼쳤다. "

-그런 부분이 시대에 따라 장르를 바꾸는 기회주의자로 보이기도 한다. 동성애자에서 양성애자, 또 이성애자로 성 정체성도 여러 번 번복했다.
"보위는 실험을 계속했다. 자기의 가치관이 항상 일정해서 그걸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 실행해보고 그게 아닌 것 같으면 변화했다. 편견 없이 스스로 그 길을 걸은 뒤에 판단했다. 자기 잘못에 대한 인정도 빨랐다.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주저하지 않았다. 보위는 “나와 함께하면 지루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인기가 많든 적든, 장르가 뭐든, 그에게는 문제 되지 않았다. 스펀지같이 흡수했다. 여러 사람과 사귀었던 그지만 희한하게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니컬한 태도로 유명한, 영국 모던록 밴드 ‘오아시스’의 리더였던 노엘 갤러거조차 보위의 죽음에 대해 ‘왕이 떠났다’고 추모했다. 그는 누구를 만나도 인간적인 선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보위와 만난 사람들 모두가 그를 칭찬한 게 아닐까. 내가 본 보위는 오픈 마인드다.”

- 보위의 오픈 마인드란.
"자신이 자유로운 만큼 차별을 철저하게 견제했다. 92년부터 평생을 함께한 두 번째 부인 이만은 소말리아 출신의 흑인 모델이다. 또 항상 자기 밴드에 여성이나 흑인 멤버를 기용했다. 피부색이나 출신, 성 정체성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 여왕이 기사 작위를 내렸지만 거절했다. 권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보위의 한국 팬은 어떤 사람들인가.
“80년대에도 보위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지만 90년대 들어오면서 보위에 대한 인식이 점점 좋아졌다. 우리 다음 세대가 너바나 세대다. 너바나가 MTV 언플러그드에서 보위 노래를 부르면서 관심이 커지고, 94년부터 시작된 홍대 인디신, 그러니까 펑크, 모던록이 인기를 끌면서 보위 팬이 늘었다. (글램록-펑크-뉴웨이브-모던록은 거의 같은 팬층을 거느린다.) 80년대 뉴웨이브에서 모던록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 보위 팬도 유지되고 있다.”

내게 데이비드 보위는 큰 물음표였다. 70년대 짙은 화장을 한 '지기 스타더스트'(화성인) 시절과 2000년대 댄디한 중년 남성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어 보였다. 정은주씨는 "그게 보위다, 그를 한 장르로 가둘 수 없다"고 했다. 보위는 1993년 음악잡지 ‘핫뮤직’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신은 어떤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록, 댄스, 게다가 랩은 더더욱 아니고(웃음). 그냥 'Bowie's Music'이라 생각하는데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음악을 끝없는 조사와 탐구라고 생각한다. 어느 원점이 있으면 그 주위를 맴돌며 점점 그 원점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본다." 마지막 'Bowie's Music'을 유작 앨범 ‘블랙스타’에서 들을 수 있다.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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