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언론인들 "명함 없는 삶 정말 괴롭더라.."

정철운 기자 2016. 1. 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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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진흥재단 ‘퇴직언론인 실태조사’, 퇴직 후 개인 소득 ‘100만원 미만’ 17.3%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금전적인 문제보다도 뭐 하나에 기여할 수 있다, 아직 쓸모가 남아있다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쓸모가 끝났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 박탈감, 이런 것이 크다….” (한국일보·중앙일보 출신 퇴직 언론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퇴직 언론인의 삶을 심층 분석한 '퇴직 언론인 실태조사'를 펴냈다. 이번 조사는 13개 언론사(경향 국민 동아 서울 조선 중앙 한국 한국경제 헤럴드경제 KBS MBC CBS 연합뉴스) 사우회 목록을 바탕으로 10년 이상 언론사 기자 경력을 갖춘 600명의 퇴직언론인을 대상으로 2015년 8월부터 2개월간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p다. 

이번 조사에 응한 퇴직언론인은 평균 72.5세로 70대가 50.7%로 가장 많았다. 퇴직 언론인은 평생 평균 3.2곳의 직장에서 33.4년 간 직장생활을 했으며, 평균 2.3개의 언론사에서 27.8년간 언론인으로 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근속연수는 11.8년이었다. 이들이 현업에서 가장 많이 퇴직한 시기는 IMF구제 금융으로 언론사 구조조정이 활발했던 1996~2000년 사이였다. 

퇴직이후 월평균 개인소득은 100~200만원 미만 24.3%, 50~100만원 미만 17.3% 순이었다. 주요 소득원은 연금(30.7%), 개인저축(17.8%), 임대수입(16.8%)이었다. KBS출신 퇴직언론인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 보니까 연금의 중요성과 보배스러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퇴직 언론인의 월 평균 개인 용돈은 84만4000원이었다.

조선일보 출신 한 퇴직 언론인은 “경제적인 측면과 자기만족도 측면에서 언론인들의 퇴직 후 삶은 다른 직종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퇴직 이후 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자 326명이 밝힌 감소액은 월평균 401만6000원이었다. 퇴직 이후 소득이 증가한 경우 증가액은 월평균 566만7000원으로 높았으나 소득이 증가했다는 응답자가 30명으로 표본의 5%에 불과했다. 

 
 
▲ @픽사베이
 

직장 이동경로 분석에 따르면 언론사만 거쳐 퇴직한 비율은 응답자의 61.5%였으며 언론사에서 시작했으나 비 언론사에서 퇴직한 비율은 26.2%로 나타났다. 퇴직사유의 47.5%는 정년퇴직이었으며, 명예퇴직·구조조정 등 회사의 퇴직압력이 27.8%로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35.5%는 현재도 임금노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 중 38%는 전문직 종사로 나타났다. 

퇴직 언론인 3명 중 2명은 퇴직 이후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후 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응답자 63%가 ‘적당한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일은 하고 싶지만 자신의 경력을 활용할만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포기한 것이다. 동아일보 출신 퇴직 언론인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언론인 출신들이 가던 자리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 자리에 교수들이 간다”고 전했다.

퇴직 언론인들은 ‘삶의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조선일보 출신 한 퇴직 언론인은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퇴직 후의 삶이 종전 직장 또는 업종과 연계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언론인들은 그것이 쉽지 않은 데다, 퇴직 전후의 입장과 위치의 편차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크다. 한마디로 급전직하”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출신 한 퇴직 언론인은 “명함 없는 시절을 8개월 정도 지냈는데, 명함 없는 게 정말 괴롭더라”고 전했다. 평생을 출입처에서 ‘갑’의 지위로 보내다가 명함도 없는 무소속 ‘을’의 위치로 전락하며 얻는 박탈감이 퇴직 언론인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한국일보·한겨레 출신 힌 퇴직 언론인은 “언론계에서 KBS, MBC 등 일부 지상파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퇴직 후 계열사나 협력업체로 이직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신문사의 경우 정년을 채우기도 힘든 상황에서 퇴직을 준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날로그 세대인 50대 이상 언론인들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적응력이 떨어져 기회를 찾기가 더욱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KBS·YTN 출신 한 퇴직  언론인은 “주변에 대학 강의를 나가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애들을 가르치는 보람이 없다고 한다. 보람도 없는데다가 돈까지 적게 준다”며 “대학 강의는 안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퇴직 언론인들은 대체로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설문 결과 다시 한 번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언론인이란 직업을 ‘선택 하겠다’는 응답은 68%로 나타났다. 

퇴직 언론인들의 화두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회적 활동과 안정적 노후다. 조선일보 출신 한 퇴직 언론인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퇴직 언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일보·한겨레 출신 퇴직언론인은 “퇴직 언론인들만을 위한 정책 지원은 공정하지 않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퇴직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출신 한 퇴직언론인은 “현직 언론인들에게 신분이 안정되고 퇴직 후에도 크게 별로 걱정을 안 하는 장치가 있어야 저널리즘의 기본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견 언론인들이 기업 홍보팀으로, 정계로 진출하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이들이 퇴직 이후에도 경력을 효과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데 유용한 일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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