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타타라타] 사재혁 폭행과 '프로복서의 주먹'

2016. 1. 23.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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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폭행 혐의로 자격정지 10년의 중징계를 받은 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

#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품에는 잔혹한 폭력이 넘실댄다. 묘사 자체가 피해자의 시점에서 이뤄지는 까닭에 그 강도가 훨씬 세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자동차사고(1969년)를 모티프로 한 <블랙워터>에서는 한 젊은 여자의 죽어가는 과정이 처절하게 그려진다. 늦은 밤 승용차가 강으로 추락하고, 핸들을 잡았던 남자는 불과 몇 시간 전 사랑을 나눴던 젊은 여자를 밟고 혼자 탈출한다. 젊은 여자는 강바닥으로 가라앉는 차 안에서 충격과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남자의 ‘폭력’에 의해 혼자 죽음 속으로 버려졌다는 사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한다. 오츠는 한 인터뷰에서 “내 소설에 폭력성이 너무 많다고 하는 것은, 우리 삶에 현실성이 너무 많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부인하고 싶지만 폭력은 현실일 게다.

# 아버지가 가족 모두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젊은 부부는 초등학생 자녀를 학대하다가 그만 살해하고, 그 시신마저도 훼손했다.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크고 작은 일상의 폭력은 얼마나 많은가? 스포츠로 눈을 돌려보자. 베이징올림픽의 역도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이 연말연초 ‘폭력’으로 포털의 검색어 랭킹에 올랐다. 두 말이 필요없다. 언론에 보도된 후배(피해자)의 두들겨 맞은 얼굴 사진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함께 운동하는 선배에게 이 지경으로 맞았으니 합의를 거부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겠는가?

# 본디 스포츠는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투기종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신체 접촉이 없다 해도 승부를 가리는 행위 자체가 폭력적이다. 그러면 두뇌스포츠인 바둑이나 체스도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이는 철학자 슬라예보 지젝의 폭력에 대한 고찰이 잘 웅변한다(사실 지젝의 글은 노엄 촘스키도 난해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폭력을 (1)직접적 폭력 (2)간접적 폭력(구조적 폭력) (3)문화적 폭력으로 세분했다. 첫 번째는 물리적 폭력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뚜렷하니 설명이 필요없다. 간접적 폭력은 빈곤, 환경오염, 착취 등 사회구조에 내재된 폭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화적 폭력은 앞의 두 폭력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는 폭력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2)와 (3)의 성격을 띠고 있고, 투기종목이나 격렬한 신체접촉이 있는 경우 (1)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젝은 언어도 우열을 가린다면 폭력적이라고 분석했다.

슬라예보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

# 그래서일까? 한국의 대표적 좌파지식인으로 꼽혔던 고 리영희 교수는 마지막 저술(?)인 <대화>에서 아주 짧지만 스포츠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스포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복싱과 같은 격투기 종목은 아예 채널을 돌린다. TV프로그램도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즐겨 본다’였다.

# 이 대목에서 좀 좋게 보자. 세상 사람들이 다 리영희 교수 같다면 전쟁, 분쟁도 없겠지만 스포츠도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은 진행형이다. 가능한 줄이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리고 스포츠는 인간의 폭력성을 다른 방식으로, 즉 엄격한 룰을 통해 대리충족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에게서 폭력성 자체를 거세할 수 없다면, 스포츠의 이 정도 순기능은 인정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가 태생적으로 폭력성에 가깝게 위치하다 보니, 스포츠 세계에서는 다른 사회분야보다 더 엄격하게 폭력성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프로복서가 링밖에서 주먹을 휘둘러는 안 되고, 그럴 경우 더 심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아쉽게도 우리네 현실에서 스포츠계의 폭력은 잘 통제되지 않는다. 직접적 폭력은 사재혁처럼 선배는 물론, 지도자, 심지어 ‘학자’ 타이틀 가진 체육인도 저지른다. 지도자에게 맞아 청력을 잃은 경우도 있고, 심지어 운동을 잘하라고 때리다가 운동을 못할 정도로 맞은 선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간접적 폭력, 문화적 폭력, 언어 폭력이다. 정말이지 이는 스포츠계에서 일상화돼 있고, 심지어 피해층의 문화적 내성이 강해져 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재혁 사건처럼 직접적 폭력은 고발이라도 쉽지, 나머지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직업적으로 신체를 단련하고,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보다 폭력성 통제에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전문성이 더 끔찍한 비극을 나을 우려가 크다. 프로복서의 주먹처럼 말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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