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한국정치 두 원로의 전쟁

강태화 2016. 1. 2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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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김종인, 오른쪽 윤여준

1940년생 김종인과 1939년생 윤여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사령탑'을 맡은 두 주인공이다. 만 나이로 76세와 77세다. 한국 정치사의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원로의 싸움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 정당 지도가 바뀐다.

먼저 김종인 더민주 선거대책위원장은 22일 제1야당의 당권까지 손에 쥐었다. 27일 중앙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확정되면 비대위원장을 겸직하면서 4월 총선 지휘권은 물론 당무까지 책임지게 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본격 선거 체제를 가동하겠다. 일요일(24일) 첫 선대위 회의를 소집해 구체적 선대위의 윤곽을 밝히겠다”고 했다. 선거구 협상, 쟁점법안 처리 등에 대해서도 “실질적 당무를 관장하는 사람으로서 해야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통 야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김 위원장은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다. 그는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이던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재무분과위원으로 참여했다. 1981년 4월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민정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든 정당이다. 이 때문에 신군부의 임시 행정 기구인 국보위 참여 전력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이날 “국보위가 ‘부가가치세를 폐지하려고 하니 협조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이것만큼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국보위 (참여)요청을 받아들였다”며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경제민주화’다. 1987년 헌법 개정 때는 헌법개정특위 경제분과위원장으로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었다. 이때 신설된 헌법 제119조2항은 ‘김종인 조항’으로 불린다. 노태우 정부에선 보건사회부 장관과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며 대기업의 과다한 부동산 소유를 제한하는 내용의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런 개혁성향 때문에 김 위원장은 보수정당에서 3선을 한뒤 17대 총선에선 민주당 비례대표를 지내는 등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4선을 했다. 그러다 2012년 박근혜 대선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주도했다.

하지만 2013년 정부 출범 이후 박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며 비판해왔다. 그러다 문재인 대표의 '삼고초려'로 더민주의 20대 총선을 지휘하게 됐다.

국민의당의 ‘조타수’인 윤여준 공동창준위원장도 고열로 입원한 지 2주 만에 퇴원해 22일 마포당사로 첫 출근했다. 윤 위원장은 “창준위원장을 맡기로 한 당일 새벽 뜻밖에 입원해 2주만인 어제(21일) 퇴원했다”며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겨 극심한 빈혈로 새벽 2시에 입원해 두 차례 긴급 수혈을 했다. 아직 기력이 돌아오지 못했지만 최대한 버텨보겠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건강이 이런 상태라 2월 2일 창당대회 이후 창준위가 없어 진 뒤엔 (선대위 역할을) 안 맡는 게 아니라 못 맡는다. 몸이 이런 상태인데 염치가 있어야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기다리면 (당의) 역동성이 분명히 생길 것”이라며 “역동성은 세력의 확장이나 이슈 파이팅을 통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당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서도 “(회복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고 일시적으로 올라가는 것도 중요치 않지만 추세는 중요하다”고 했다.

동아일보 기자출신인 윤 위원장은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공직에 몸담은 뒤 주일공보관, 국회의장 공보비서관, 대통령 정무비서관, 정무차관, 안기부장 제3특보, 청와대 공보수석, 환경부 장관 등을 두루 거쳤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엔 정계에 진출해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와 여의도연구소장 등을 지낸뒤, 2000년 16대 총선에선 총선기획단장을 맡은 대표적 보수진영의 전략가다. 2002년 대선때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16대)으로 당 기획위원장을 맡아 당시 이회창 후보의 '제갈공명'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안 의원의 초기 '멘토'로 불렸다. 2014년 1월 안 의원이 신당 창당 준비기구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를 만들었을 때 의장을 맡았지만, 안 의원이 김한길 의원과 통합에 합의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든 뒤부터 거리를 둬왔다.

2012년 대선에서 김종인·윤여준 두 원로는 각각 박근혜 대통령과 당시 문재인 후보 측에서 대결했다. 윤 위원장은 문 후보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이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제1야당과 제3 중도정당의 운명을 건 싸움을 지휘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1987년 헌법개정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끈질기게 설득해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어 경제민주화 가치를 확산시킨 것은 상당한 공로”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현 시점만 봐도 더민주에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것도 국민의당 효과”라며 “김 위원장이 (더민주를) 좋은 정당으로 바꾸면 한국정치 발전에도 좋다. 국민의당도 선의의 경쟁자니까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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