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FOCUS] 검찰 전문가 "계좌추적, 100% 수작업"

서태욱 2016. 1. 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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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내내 야근하기도"
"첨단 기법을 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차명계좌를 타고 이동한 검은돈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쫓는 겁니다.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100% 수작업'이죠."

매일경제와 만난 금융수사 전문 검찰 관계자는 '계좌추적'이라는 말만 나와도 이처럼 손사래를 치며 기겁을 했다. 한 달 내내 퇴근도 못하고 계좌추적에만 매달리는 시련의 기간이 연중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 그는 세부 계좌추적 기법에 대해서는 "수사 기밀이라 절대 이야기해줄 수 없다"면서도 "솔직히 특별한 기법이 있다기보다는 수사 인력들의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좌추적을 "금융수사에서 빠질 수 없는 '시작'이자 '종착점'"이라고 표현했다. 한 사건이 깔끔하게 해결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계좌추적 작업이 적절히 잘 됐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뇌물수수로 뒷돈을 받은 정치인(또는 공직자), 회사 돈을 횡령하고 빼돌린 기업인, 주가조작으로 거액의 차액을 챙긴 증권사범들의 부정한 돈 거래의 종착지를 밝혀내는 모든 수사에서 '화룡점정'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계좌추적이 '퍼즐 맞추기' 게임에 비유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돈이 어떤 명의의 계좌로 흘러들어 가는지를 계속 맞추다 보면,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 종착지가 확인되는 과정에서 수사의 '큰 그림'이 잡히게 된다"고 귀띔했다.

비록 고된 작업이지만 일에 집중하다보면 보람과 성과도 크다고 한다. 다만 맞춰야 할 퍼즐이 수백, 수천 개에 이른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과거 서울서부지검의 한화그룹 차명계좌 사건에서는 300개가 넘는 차명계좌를 추적하는 데 수사팀이 꼬박 한 달간 야근을 해야 했다.

그만큼 한 계좌에서 여러 개의 차명계좌로 다시 쪼개지고, 수표와 현금을 반복해서 오간 돈의 출처와 종착지를 파악하기란 결코 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다.

심지어 계좌추적 과정에서 돈의 흐름을 더는 따라갈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1억원짜리 수표를 1000만원, 100만원, 10만원짜리 수표로 쪼개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하다가 도중에 위조한 신분증이나 서명하지 않고 금융회사가 아닌 곳으로 유통시키면 추적이 어려워진다. 오래전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당시에 있던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이 사라져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은돈으로 의심되는 돈이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쪼개져 흘러나간 계좌를 다시 연결하다 보면, 추적해야 하는 계좌 수는 기하급수적"이라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계좌의 흐름을 정리하가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계좌와 계좌를 이어나가고, 이를 연결하는 작업은 사람의 몫"이라고 전했다.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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