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P]'원조 친노'에서 '진실한 사람'이 된 부산의 野 3선

박승철 2016. 1. 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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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새누리당 입당, 빨간색 입고 총선출마

야당 누구도 못한 부산 3선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 ‘편애'에 친노 불만
19대 총선때 친노지도부 조경태 컷오프
지난 대선 경선출마때도 외톨이 신세

"김대중 깃발 들고 부산에서 2번 낙선한 뒤 3선에 성공했습니다."

다른 화려하고 장황한 유세문이 필요 없었다. 2013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경태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데는 이 한마디 말이면 충분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당원들의 심금을 울렸고 당시 전당대회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던 당원 중 상당수가 그를 찍어줬다.

조경태는 그만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서 독보적인 이력을 쌓은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 '부산 국회의원'을 그는 세 번이나 해냈다. 두 번 낙선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도 보여줬다.

야당의 불모지 부산을 개척한 선구자로 '원조친노'를 자임했던 그가 이제 '진실한 사람'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야당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금자탑을 쌓아올린 조 의원이 결국 새누리당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허남식 전 부산시장의 사하을 출마 가능성 ▲현기환 정무수석 등 청와대의 물밑 작업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부산 친노'들과 조경태 의원의 관계에 있다. '제2의 노무현'으로 불리던 조경태 의원의 이 같은 변화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조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부산 사하갑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2000년 16대때는 사하을로 나섰지만 역시 떨어졌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풍이 불 때 가장 먼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한 사람 중 하나였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는 '송곳' 질문으로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코너에 몰아세우며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조 의원에게 '제2의 노무현'이라는 칭송까지 나올 정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자신이 못 이룬 부산 당선을 이룬 조 의원을 특별히 아꼈다는 후문이다. "조경태 학습관을 지어야 한다", "조경태가 당선됐으니 편히 잘 수 있겠다" 등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했던 발언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애정의 백미는 바로 '부산지하철'이었다. 부산지하철 최초 계획안에는 조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을 지역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에 조 의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 부탁했고 결국 사하을 지역에도 지하철이 들어오게 됐다. '부산지하철 연장'은 그가 부산에서 3선을 달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 번 낙선했다고는 하지만 부산에서 36세의 나이에 당선된 조 의원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 같은 애정을 독차지하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부산 친노들이 좋아할 리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2년 한명숙 대표의 친노 지도부가 공천을 했는데 그가 1차 공천자 명단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그가 1차 공천자 명단에서 탈락한 것은 그가 '친노'와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이 같은 난관을 뚫고 3선에 성공한 뒤 2012년 대선 출마를 준비했다. 2012년 6월 그는 민주당에서는 최초로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후보를 5명으로 압축하는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하고 김두관 전 경남지사 지지를 선언했다.

부산 친노들이 대부분 문재인 후보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김 전 지사와 조경태 의원은 자연스럽게 비노의 길을 가게 된다. 이때 문재인 후보에게 비판의 포문을 열면서 친노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2013년 최고위원에 당선된 뒤로는 친노패권주의 해소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새정치민주연합 당원들을 '종북'이라며 비판하면서 결정적으로 당내 반대파들에게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해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하는 과정에서 "친노 종북세력은 신당에 따라오지 말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애정을 독차지한 원조 친노 조경태 의원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을 따르는 무리로부터 배척받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그의 종착지는 새누리당이 됐다. 21일 그는 입당원서를 제출하면서 “이렇게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실한 사람'으로 거듭난 그가 보여줄 정치에 관심이 쏠린다.

[박승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야당 누구도 못한 부산 3선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 ‘편애'에 친노 불만
19대 총선때 친노지도부 조경태 컷오프
지난 대선 경선출마때도 외톨이 신세

"김대중 깃발 들고 부산에서 2번 낙선한 뒤 3선에 성공했습니다."

다른 화려하고 장황한 유세문이 필요 없었다. 2013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경태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데는 이 한마디 말이면 충분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당원들의 심금을 울렸고 당시 전당대회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던 당원 중 상당수가 그를 찍어줬다.

조경태는 그만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서 독보적인 이력을 쌓은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 '부산 국회의원'을 그는 세 번이나 해냈다. 두 번 낙선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도 보여줬다.

야당의 불모지 부산을 개척한 선구자로 '원조친노'를 자임했던 그가 이제 '진실한 사람'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야당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금자탑을 쌓아올린 조 의원이 결국 새누리당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허남식 전 부산시장의 사하을 출마 가능성 ▲현기환 정무수석 등 청와대의 물밑 작업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부산 친노'들과 조경태 의원의 관계에 있다. '제2의 노무현'으로 불리던 조경태 의원의 이 같은 변화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조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부산 사하갑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2000년 16대때는 사하을로 나섰지만 역시 떨어졌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풍이 불 때 가장 먼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한 사람 중 하나였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는 '송곳' 질문으로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코너에 몰아세우며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조 의원에게 '제2의 노무현'이라는 칭송까지 나올 정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자신이 못 이룬 부산 당선을 이룬 조 의원을 특별히 아꼈다는 후문이다. "조경태 학습관을 지어야 한다", "조경태가 당선됐으니 편히 잘 수 있겠다" 등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했던 발언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애정의 백미는 바로 '부산지하철'이었다. 부산지하철 최초 계획안에는 조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을 지역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에 조 의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 부탁했고 결국 사하을 지역에도 지하철이 들어오게 됐다. '부산지하철 연장'은 그가 부산에서 3선을 달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 번 낙선했다고는 하지만 부산에서 36세의 나이에 당선된 조 의원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 같은 애정을 독차지하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부산 친노들이 좋아할 리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2년 한명숙 대표의 친노 지도부가 공천을 했는데 그가 1차 공천자 명단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그가 1차 공천자 명단에서 탈락한 것은 그가 '친노'와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이 같은 난관을 뚫고 3선에 성공한 뒤 2012년 대선 출마를 준비했다. 2012년 6월 그는 민주당에서는 최초로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후보를 5명으로 압축하는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하고 김두관 전 경남지사 지지를 선언했다.

부산 친노들이 대부분 문재인 후보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김 전 지사와 조경태 의원은 자연스럽게 비노의 길을 가게 된다. 이때 문재인 후보에게 비판의 포문을 열면서 친노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2013년 최고위원에 당선된 뒤로는 친노패권주의 해소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새정치민주연합 당원들을 '종북'이라며 비판하면서 결정적으로 당내 반대파들에게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해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하는 과정에서 "친노 종북세력은 신당에 따라오지 말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애정을 독차지한 원조 친노 조경태 의원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을 따르는 무리로부터 배척받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그의 종착지는 새누리당이 됐다. 21일 그는 입당원서를 제출하면서 “이렇게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실한 사람'으로 거듭난 그가 보여줄 정치에 관심이 쏠린다.

[박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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